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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캠퍼스 모두의 극장은 8월 상영작으로 <목화솜 피는 날>을 스크린에 올렸다. 영화가 상영되는 중부캠퍼스 4층 <모두의 강당>에 사전 신청한 관람객들이 출석 서명을 하고 있다. ⓒ 홍보서포터즈 장승철  

 

 

불볕더위와 독립영화

 

2024년 8월 19일, 서울은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긴 폭염에 사람들은 한 달째 열대야에 시달렸고, 몸도 마음도 지쳤으며, 온열 질환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이런 날씨 속에 영화 한 편을 보려고 오후 두 시 상영시간에 맞추어 혹독한 태양을 걸머지고 헐떡이며 언덕을 올랐다. 마치 끝없을 것 같던 길이 멈춘 곳에서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를 만났을 때는 모든 기억과 생각이 땀과 함께 다 흘러나간 것처럼 머릿속이 하얬다. 영화 상영장인 중부캠퍼스 4층 ‘모두의 강당’에서 인디 서울 강물결 상영 매니저를 만났을 때는 그 이름만으로 구원받은 듯했고, 영화 관람을 마쳤을 때는 차라리 그렇게 시작한 영화 관람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선입견이나 사전 지식을 떠올리지 않고 독립영화 <목화솜 피는 날>을 오롯이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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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영에 앞서 강물결 상영 매니저가 영화 <목화솜 피는 날>을 소개하고 있다. ⓒ 홍보서포터즈 장승철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오후 두 시가 되자 강물결 매니저가 나와 상영관을 찾아준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날 상영작 <목화솜 피는 날>이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제작한 작품이고, 세월호 유가족의 삶을 다룬 영화라고 간략하게 소개한 뒤 상영을 시작했다.

 

영화는 푸른색 버스가 학생들을 태우고 학교를 향해 달리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활기차고 떠들썩한 버스 안 풍경에 이어 10년이라는 시간 뒤에도 여전히 그날에 갇혀있는 한 유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생생하게 그려나간다. 주인공 병호(박원상)는 10년 전 세월호 사건으로 둘째 딸 경은이를 잃고 나서 점차 기억을 잃어간다. 그리고 이명 증상을 겪으며 괴로워한다. 어느 날부턴가 자신의 딸 경은이 살아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고, 경은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점점 더 깊은 절망에 빠져 방황한다. 세월호 비극의 현장인 팽목항과 세월호 잔해를 건져 둔 목포항을 오가며 헤매고 다투고 쓰러진다. 그의 아내 수현(우미화)은 자신의 고통을 견디느라 남편 병호의 상황에 짐짓 무심한 듯 지내고, 병호가 다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첫째 딸 채은(이지원)은 10년간 참아온 한 마디를 터뜨린다.

“아빠마저 잃을까 봐 두려워….”

여기서 영화는 시간을 돌려 10년 전 4월 16일을 회고한다. 그날의 사고 현장과 유류품을 건져내어 닦는 장면, 이윽고 건져 올린 세월호 속의 처참한 모습을 비추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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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속 장면들. (출처 : 제작사 제공 스틸 컷)

 

 

화면에 작은 제목으로 <목화솜 피는 날>을 적어 올린 뒤로 영화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세월호 낡은 잔해 속에 쓰러져 통곡하는 병호를 찾아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병호와 수현은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그때 방송진행자의 입을 빌려서 연출자는 영화의 중심 메시지를 실어낸다.

“여러분,

목화솜이 꽃일까요? 열매일까요?

목화 나무에 꽃 피고 나면 열매가 맺히는데

그게 팍 터지면 목화솜이라고 합니다.

꽃 지고 열리는 열매지만 너무 고우니까,

두 번째 꽃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아기들 면 기저귀부터

장례에 쓰이는 광목천까지

어쩌면 목화에는 삶과 죽음,

행복과 슬픔이 모두 들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이 둘이 이어가는 대화는 이들이 10년 동안 헤매던 시간의 미로를 벗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준다.

“우리 경은이도 ‘팡’ 하고 다시 필 거야. 목화솜처럼

눈물 나면 눈물 나는 대로 살아.

울어, 소리 내서 그냥 울어.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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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속 장면들. (출처 : 제작사 제공 스틸 컷)

 

 

영화가 끝부분에 이르면 영화 첫 장면에 나오던 버스 기사와 병호의 버스 속 대화가 그려진다. 회차 지점에 이르러 둘만 남자 병호는 기사에게 세월호 유족도 아니면서 왜 진도로 왔느냐고 묻는다. 기사는 아침마다 단원고 앞에서 내리던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는 안 내리더라고, 그래서 오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다시 버스가 돌아갈 시간이 되자 기사가 병호가 묻는다.

“계속 가실 거죠? 경은이 아버님?”

이윽고 병호가 대답한다.

“예, 계속 가야죠.”

이어서 엔딩 크레딧이 오르고 화면 한쪽으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병호가 세월호 잔해 안에서 방문자를 안내하며 해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가 서 있는 곳은

단원고 남학생들이 있던 객실입니다.

이 방에 열여섯 명이 있었어요.

다 엉켜서.

잠수사들이 풀어지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 보러 가야지’

아이들의 핸드폰에 가장 많이 남아있던 영상이

당시 갑판 위 불꽃놀이 영상이었어요.

이곳에서, 마지막 밤이었죠.

시간이 지나더라도, 꼭 기억해주세요”

 

모두의 강당에 불이 켜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아픔과 상처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지금도 그들은 눈물 나면 눈물 나는 대로 서로 의지하며 극복해 나가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일과 그들을 기억하는 것임음.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이날 본 영화가 슬픔과 고통뿐 아니라 치유와 극복과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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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목화솜 피는 날> 포스터 1

 

 

영화가 끝나고

 

넓고 여유로운 ‘모두의 강당’에서 하필 뒤편 구석 자리에 홀로 앉아 영화를 관람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50대의 여성 관람객은 영화 감상 소감을 묻는 말에 간간이 눈가를 훔치며 답했다.

“영화를 보니 그동안 제가 몰랐던 것들이 너무 많았네요.

세월호 사건 이후 저는 배를 타지 못해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네요.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지독한 아픔을 그대로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어떻게든 아픈 것을 피하려는 본능이야말로 생명을 지켜 주는 방어 작용의 일부이다. 영화 속 병호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그것으로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가족과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의지로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다. 이 영화는 세월호의 아픈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 극본과 영상으로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동안 주요 작품을 많이 다뤄온 감독의 연출 솜씨와 오랜 관록을 지닌 베테랑 연기자의 열연 덕분에 관객은 영화 속 주인공과 공감하고 감동하며 함께 치유를 경험한다. 더불어 세상 속 온갖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낼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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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목화솜 피는 날> 포스터 2

 

 

중장년과 독립영화

 

지독히도 덥고 힘든 날 시리도록 슬프고 아픈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젊은 세대는 영화 보기를 일러 곧잘 “영화 한 편 때린다.”라고도 하더라. 그러나 이날은 관객이 영화를 한 편 때린 것이 아니라 영화가 관객의 가슴을 오지게 때렸다. <목화솜 피는 날>은 독립영화답게 자본과 힘 가진 자들로부터 자유로웠고 그래서 생생하고 진솔하게 영상 문법을 풀어갈 수 있었다. 그 덕에 관객은 다큐멘터리를 본 듯 왜곡 없이 사실을 직시하고, 극영화로 빚어낸 공감과 감동을 한껏 누렸다.

인디 서울의 강물결 상영 매니저는 바로 이런 점이 독립영화의 장점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독립영화가 민감하고 버거운 사회 이슈를 많이 다루다 보니 중장년에게 적합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상영을 거듭하다 보니 중장년 관객들이 그런 이슈에도 관심을 가지고 열린 자세로 대해주어서 많은 것들을 깨달으며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영화 문법에도 불구하고 낯섦을 해소하며 고정 관객이 되는 중장년이 늘어가는 것이야말로 독립영화 상영의 성과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목화솜 피는 날>은 최초로 세월호 선체 안에서 촬영한 영화인데, 비극적인 일을 극영화로 만들기 위해 유가족들과 깊이 소통하며, 그들이 직접 참여하여 함께 만든 뜻깊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부디 오래도록 세월호를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억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행동을 부른다. 오늘 아픔을 기억하는 까닭은 괴로움에 멈추어 서지 않고 아픔 없는 내일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다.

이날 상영한 영화 <목화솜 피는 날>은 여전히 안전 불감증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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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캠퍼스 전경.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서울시 중장년의 소중한 삶터이자 문화 공간으로 남아주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 홍보서포터즈 장승철 

 

 

서울시 중장년의 소중한 삶터요 문화 공간인 서울시50플러스재단

 

영화 상영 뒤에 중부캠퍼스 <모두의 극장> 담당자 이민지 선임을 만났다. 이 선임은 독립영화 무료상영회인 <모두의 극장>이 지난 2018년부터 꾸준하게 다양한 독립영화를 상영하며 중장년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굳게 자리매김해 왔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50플러스가 온통 일자리에 역량을 모으기 시작한 뒤로는 캠퍼스 안에 유일하게 남은 문화 공간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근래 전심으로 일자리에만 매달리기는 모든 캠퍼스나 센터도 마찬가지일 테니 그곳 모두에서도 독립영화 상영회만이 중장년과 문화를 잇는 유일한 통로가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미술사가 오주석은 ‘문화는 꽃’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상의 뿌리, 정치·제도의 줄기, 경제·사회의 건강한 수액이 가지 끝까지 고루 펼쳐진 다음에야 비로소 문화라는 귀한 꽃이 핀다고 했다. 정치와 가시적 사업성과에 치중해서는 문화를 꽃피울 수 없다. 오히려 그동안 애써 가꾸고 피워온 문화의 꽃들마저 떨구고 만다. 그 자리에 다시 문화의 꽃을 피우기란 참으로 요원할 것이다. 애초부터 나이 쉰을 넘긴 서울시민의 삶터요 소중한 문화 공간이었던 50플러스재단이 수액 마른 나무를 닮아가는 모습이란 참으로 보기 민망하고 안타깝다. 그리고 문화에 다가설 자리를 잃고 퍽퍽하게 살아내는 중장년의 일상을 마냥 지켜보기도 힘겹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다시 넉넉하고 폭넓게 삶과 문화 공간의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속절없이 50플러스를 떠난 중장년들이 돌아와 그들 삶에 생기와 윤기와 찰기를 더할 수 있길 소망한다. 




홍보서포터즈 장승철 (cbcsann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