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 앓아 눕는 일 없이 무탈하게 몇 달 지냈구나, 싶었는데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합니다.
날씨가 변덕스럽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서 살짝 감기가 지나가려나 싶었는데, 웬걸요, 시간이 흐르면서 물 한 모금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목이 아프고 열이 나기 시작해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료실을 나오는 등 뒤로 의사선생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이 생각해서 무리하지 마세요.”
아무리 마음은 청춘이고, 겉보기에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고 슬쩍 위로해 봐도 나이 듦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몸입니다.
역시 나이 듦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확인하는 데 몸만 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중년의 몸에는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이제 더는 가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이 비록 몸에 매여 있는 것으로 끝이 아닌, 한 차원 높은 수준을 향해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몸 없이는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과 영혼을 담는 그릇인 육신 없이는 이 세상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릇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깨지고 금가고 찌그러지고 물이 새는 것처럼, 몸 역시 나이와 함께 여기 저기 삐거덕거리기 시작합니다. 요즘 들어 친구나 선후배들이 모이면 어디 어디가 아프다는 말로 시작해 다양한 건강 상식과 병원 정보, 몸에 좋다는 약 소개 주고받기까지 몸이 화제의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앉으나 서나 아프다는 소리를 달고 사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슬그머니 돌아서서 흉을 보던 우리들도 어김없이 그 길에 들어선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 다른 속도로 늙어갑니다. 몸도 마찬가지여서 개인차는 물론이고 몸의 각 부분도 조금씩 다르게 나이 들어갑니다. 무릎이 아파 고생이지만 심장은 튼튼해 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난히 눈의 노화가 빨라서 친구들보다 훨씬 일찍 돋보기를 쓰거나 시력 저하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노화는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몸 전체에 오는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 쌓인 세월의 결과입니다.
시간의 축적,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몸, 이 세상 끝날 까지 나와 함께할 몸, 그렇다면 과연 이 몸을 어떻게 살피고 보듬으면 좋을까요.
하나, 몸의 변화 받아들이기
중년이후부터는 몸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몸이 이제 잠시 한숨 돌리고 가자는데, 마냥 넘치는 열정으로 높이 날아오르려 하면 탈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젊어서는 과식이나 과로로 인한 후유증을 별로 못 느꼈다 해도 이제는 한 끼의 과식과 한 번의 밤샘이 일상의 리듬을 크게 흔들 수 있습니다. 지레 위축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물론 답답한 일이지만, 나이 앞에 장사(壯士) 없다는 어른들 말씀을 명심하면서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긴 인생길 호흡 맞춰 걸어갈 방법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둘, 빛나는 몸을 위하여!
거울 볼 때마다 나이 듦을 실감한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내 몸이지만 주름지고 여기저기 삐져나온 살들을 도무지 예쁘게 봐줄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 몸에 불만이 좀 있더라도 미워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이 모두가 내 삶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그동안의 모든 활동과 행동의 결과이니까요. 그러니 내가 먼저 나를 아끼고 사랑의 마음으로 돌봐야 합니다. 온몸을 바쳐 일하고 돈 벌어서 먹고 살고 자녀들 공부시키며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를 칭찬하며 틈날 때마다 쓰다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쓰담쓰담!’ 몸과 더할 나위 없이 가까운 친구가 되어야 가꿔도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셋, 몸과 사이좋게 지내기
행복한 후반생(後半生)은 몸과 마음을 다 챙겨야 가능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를 병상에 누워 보내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러려면 나이 들면서 변해가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몸과 사이좋게 지낼 길을 찾아야 합니다.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정성을 다해 돌봤다 해도, 병이 나만 피해가라는 법은 없으니 혹시 병이 나더라도 억울하다며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병을 발견한 것을 고맙게 여기며 나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는 것이 현명합니다. 병이란 인생의 복병(伏兵) 같아서 불시에 공격을 해오기도 하지만, 병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계단 한 칸을 또 올라가게 됩니다. 몸을 가진 한, ‘생로병사’ 어느 것 하나도 건너뛸 수는 없으니까요.
넷, ‘자기결정권’에 대하여
몸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남은 인생 역시 그렇게 살기로 결심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지막 때가 오겠지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소중한 내 몸이 어떻게 다루어졌으면 좋을지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의 도움과 돌봄을 받고, 누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미리 말해 두거나 글로 써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평생 수고한 나의 몸에게 표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