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이 80세가 넘고 90대가 되어도 정정하게 사는 사람이 늘어난 시대다. 55세에서 60세 전후의 나이에 직장을 떠난다고 가정하면 은퇴 후에도 20년 이상의 긴 시간이 주어진다. 이제 당신 앞에 놓인 이 시간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평생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은퇴와 함께 주어진 이 자유 시간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글. 안경숙(국민연금공단 지사장)

 

 

‘나’에게 맞는 은퇴 후 시간표를 만들자 

노후생활 가이드를 보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라고 조언을 한다. 그러나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인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하고 식구들이 싫어해서 일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새롭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반납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또다시 어딘가에 구속되는 삶을 선택한다면 남는 것은 후회뿐일 것이다.

 

은퇴를 전후해서 노후생활 설계를 할 때 가장 먼저 거쳐야 할 과정은 자기 자신을 연구하는 일이다. 60여 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궤적을 더듬어 보며 자신이 선택한 것들, 종사한 분야, 좋았던 일, 싫었던 일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그 기록들에서 자신이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살펴본다.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이나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이 과정을 반드시 거쳐서 은퇴 후 시간표를 만든다면 행복한 노후생활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인스타그램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본과 폰 부부(@bonpon511)와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있는 일본의 60대 노부부가 있다. 본폰부부라 불리는 이들은 부부의 일상 커플룩을 입고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팔로워가 무려 8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인터뷰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물었을 때 부부의 대답은 이랬다. 

 

“아침 7시에 눈을 떠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놀아준 후 8시가 되면 둘이 함께 드라마를 봅니다. 그다음엔 청소를 하고 아침밥을 먹어요. 밥을 먹고 나서는 둘이서 오늘은 뭘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외출을 합니다. 경치를 보러 산에 가거나 예쁜 꽃이 핀 곳이 있다는데 가볼까? 하는 식으로 정하죠. 가서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 와서 저녁을 해 먹어요.” 

 

아주 훌륭한 은퇴시간표가 만들어졌다. 이 부부는 직장생활을 하며 연금을 준비하였고 그 수준에 맞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주거지를 옮겼다. 이들은 은퇴생활의 성공비결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를 꼽았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재미있게 보내는 것이 이들의 은퇴시간표 기준이다. 

 

“60여 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궤적을 더듬어 보며 자신이 선택한 것들, 종사한 분야, 좋았던 일, 싫었던 일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그 기록들에서 자신이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살펴본다.” 

 

 

열정은 내려놓고 건강부터 지켜라

은퇴를 하면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더 튼실한 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모색해야 한다.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며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저것에 과도한 열정을 쏟아붓느라 재직 시절보다 더 바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나친 에너지를 투입하다 꿈을 이루기는커녕 건강만 상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노년의 시간에는 과도한 욕심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나이를 핑계 삼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도 몸에 좋지 않다. 열정은 조금 내려놓고 지나친 게으름도 피우지 않는 것이 노후의 시간관리 원칙이다.

 

어떤 삶의 패턴을 선택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것은 건강이다'. 돈이 있고 가족이 있어도 몸이 건강하지 않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100세가 넘은 김형석 교수는 건강 비결을 “매일 하루 50분 정도 걷고, 일주일에 세 번쯤 수영장에 간다. 그리고 운동을 위해 내 방을 2층에 만들고 하루에도 수차례씩 오르내린다”라며 일상에서 실천하는 건강비법을 말한다. <고수의 몸 이야기>를 쓴 한근태 씨는 “인생을 바꾸기 전에 몸부터 바꿔라”라고 주장하며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여 근력운동을 하며 몸을 관리하라고 조언한다.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은 100인 100색이다. 자기가 실천하기 쉽고 재미있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노년의 시간에는 과도한 욕심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나이를 핑계 삼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도 몸에 좋지 않다. 열정은 조금 내려놓고 지나친 게으름도 피우지 않는 것이 노후의 시간관리 원칙이다.”

 

 

균형을 맞추며 나다운 인생을 채워가길

직장 생활을 마친 후 줄어든 존재감과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관계에 집착해서 즐겁지도 않은 형식적 만남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와기타 요시노리는 그의 책 <중년수업>에서 노후에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고독한 순간을 대비해서 하루에 단 30분이나 한 시간이라도 혼자가 되어보는 연습을 미리부터 하라고 권한다. 혼자 쇼핑이나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남자의 경우에는 그동안 아내에게 맡겼던 3대 가사활동(요리, 청소, 세탁)을 익숙해질 때까지 배워서 해본다. 사소한 일상의 행복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진짜 혼자가 되었을 때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단단해질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은퇴 후에는 신체의 조건과 사회적 환경에 나를 맞추어가며 무리하지 않고 약간은 느리게 살기를 권한다. 느린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철학자 피에르 쌍소(Poerre Sansot)는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은퇴 후의 시간표는 노화된 몸과 균형을 맞추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가는 느린 시간으로 채우는 것이 좋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신한 미래설계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