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아들이 병장 만기로 21개월을 꽉 채우고 드디어 전역했다. 군인 아들 엄마 만세!!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경험하는 국방의 의무, 한창 나이인 스무 한살 뜨거운 여름에 입대하여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고 건강하게

집으로 복귀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아들이 군대 갔다는 이야기를 하면 내 주위 50+세대 남자들의 반응이 모두가 한결같다는 점이다.

 

‘에이.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야. 나 군대 다닐 때는 전방에서 혹한을 견디며---’

물론 요즘의 군대는 예전과 달리 폭력적인 문화도 개선되었고 내무반 시설도 좋아졌을 뿐 아니라 월급마저 올라 엄마들 사이에선 ‘군테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요즘 청년들에게 들려주면 참 기막히고 억울하다는 표정들을 짓는다.

획일화된 장소와 사람들, 고된 훈련, 국가를 위해 포기한 청춘의 시간 등 생각할수록 힘든 과정이었건만, 지금 청년들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와 비교해서 편하게

군대생활을 한다고 하니 역시 기성세대는 어쩔 수 없다 여겨진다고 말한다.

 

어찌 군대만 그럴까 싶다. 오플세대는 가장의 역할과 경제성장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으로 항상 직장 일을 우선했기에, ‘워라밸’이 중요한 요즘 신입직원들의

반응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야근이 길어서도 안 되고 상사가 사전 예고 없이 회식을 잡아도 안 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달라니 이게 직장인지 학교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업무 지시에서 무엇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중요했던 오플세대와 달리 이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니 상사 입장에선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조직의 결정이라는 것만으로 이견을 달 수 없던 오플세대에게 일의 의미와 자기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한 청년세대는 그야말로 신인류인

셈이다. 안타까운 맘에 ‘내가 군대 다닐때는..’ ‘내가 신입일때는..’ 몇 번 애정 어린 관심에서 조언했더니 아 글쎄 나더러 ‘꼰대’란다. 이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오플세대가 억울한 일이지 않을까.

 

그렇다. 이 모든 억울함은 모두 자기 경험이 비추어서 타인의 경험을 해석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서로가 처한 상황과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타인을 비교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이다. 과거의 군생활과 현재의 군생활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의

군대 전 생활과 입대 후 생활을 비교해야 당사자 입장에서 각각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기반 비교 오류는 경험이 많은 쪽이 비교할 수 있는 자원이 많기에 더 많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오플세대와 청년세대는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청년세대와의 소통은 바로 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뿐 아니라

이 다름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오플세대가 가진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고 전문성이 자원인 것은 맞지만,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지금 무조건 전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으면 정답이라고 여겨 상대방에게 내 경험을 강요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닐 수 있다고 인정하면 상대방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더 선택을 존중하게 된다. 내가 가진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긴 하지만 그 경험이 지금의 세상을 편집하고 왜곡할 수

있으므로 최고의 자산인 동시에 일정 부분 편견이라는 것 또한 받아들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경험이 정답이라는 편견을 깨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어느 세대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다른 세대의 다른 어떤 장점과도 찾지 못할 것이다. 오십플러스의 가능성은 내가 가졌던 지위와 역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를 얻기까지

내가 만들어낸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시행착오 과정에서도 잃지 않았던 ‘나’라는 존재의 가능성에 있는 것이다. 껍질을 깨지 못하면 그 안의 가능성이 자라지

못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누린 지위에 딸렸던 추억 혹은 해당 조직에서만 효용이 있어 과거에 남긴 경험과 온전히 내게 남은 나의 것이 무엇인가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의 나에 사로잡혀서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꼰대’가 될 것이다. 청년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과거의 언어를 사용하는 오플세대는 그저 왕년의 경험과 잔소리를 늘어놓는 꼰대이지 공감받고 조언을 청하고 싶은 어른이 아니다. 꼰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어른이 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선택의 결과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를 비교하지 말고 다른 세대의 경험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가요 중에 이런 가사가 있는 노래가 떠오른다. ‘너는 늙어봤니? 나는 젊어봤다!’ 나이듦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오플 세대의 경험을 이해하기 바라기보다

둘 다 경험한 우리세대가 한 번 더 그 시절을 생각하고, 먼저 청년세대에게 한발 더 다가가는 것이 어떨까?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 관장 고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