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의 중심지 맨해튼에서 인사이더가 된 이민자 예술가들

 

일찍이 현대 음악의 거장 조지 거쉰(George Gershwin, 1898~1937)은 뉴욕의 맨하튼 스카이라인을 표현하기 위해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으로 완성해 무대 위로 올렸다. 심포닉 재즈의 시초로 미국문화를 상징하는 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가 이런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할 수 있도록 모티브를 준 맨해튼의 스카이라인도 시대에 따라 수년 전부터 예전의 옷을 벗어 던지고 하나씩 새 옷으로 환복 중이다.

 

 

1930년 대 그의 눈앞에 펼쳐진 맨해튼은 온통 블루였다. 블루가 맨하튼의 푸른 하늘과 허드슨강과 이스트강을 유유히 흐르는 물결의 색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블루는 우울함이었다. 이민자의 도시 뉴욕은 모든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자들의 최종 목적지였다. 특히 뉴욕의 중심 맨해튼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다양한 계층의 이민자들이 뉴욕의 인사이더로 거듭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펼치는 필드(field)인 것이다.

 

그보다 앞서 칸딘스티와 더불어 추상미술운동을 대표하는 네덜란드의 몬드리안(1872-1944)도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3년 作)’라는 작품으로 맨해튼을 묘사하였다. 1938년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자 불안을 느낀 몬드리안은 파리를 떠나 런던에서 체류하다 1940년 68세의 나이에 뉴욕에 도착했다. 당시의 뉴욕의 거리는 생동적인 재즈음악이 흐르고 화려한 네온사인아래 노란 택시(옐로 캡)가 반듯한 직각으로 구획된 거리를 활보했다. 높이 치솟은 빌딩사이사이 박혀있는 교차로의 삼색 신호등도 도시의 경관에 한몫했다. 그는 이에 영감을 얻어 그가 꿈꾸던 네오플라티시즘(신조형주의)의 도시의 모습을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란 작품에 담아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년 作)

 

그런가하면 한국현대 추상회화의 원조 ‘론도’라는 작품을 그린 김환기(1913~1974)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년 作)’라는 작품에서 맨해튼의 전경을 표현한 바 있다. 이 시기에 완성된 작품에서는 미니멀적(minimal)인 기법으로 아득한 옛 서정을 담아냈다고 한다. 한없이 찍어낸 무수한 점하나하나에 고향에서의 추억과 그리운 모습과 그리운 사람들을 미국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초기엔 구상작가로 주로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항아리, 홍매화, 산, 달, 매화, 사슴, 여인, 새, 항아리를 작품 소재로 특히 이조백자에 애착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신안군 기좌도의 지주계층 출신으로 일찍이 일본유학을 시작한 그에게 고향이나 고향의 바다는 동경이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력으로 승부가 가려지는 더 넓은 예술세계에서의 자신의 예술적 재능과 기량을 맘껏 펼치기를  꿈꾸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민자나 이방인들이 미래의 꿈과 함께 고국에 대한 동경과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곳이 맨해튼이다. 맨해튼은 그들에게 도피처이며, 안정을 찾아 자신의 예술적 경지를 마무리하게 하는 케렌시아(Querencia)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