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를 하니 고객이 찾아오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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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오십 고개를 넘으면서 인생의 내리막을 만난다. 심한 경우는 가파른 벼랑 앞에 서기도 한다. 그 무렵이면 다니던 직장에서 자의든 타의든 밀려나는 것이 이 시대 50플러스들의 숙명이다. 삼십 년 가까이 몸담았던 사회에서 밖으로 밀려 나올 때가 닥치면 그간 쌓아온 경력이나 직책 같은 것은 무용지물이기 십상이다.
백지 한 장의 이력이 되어 아직도 겹겹이 남은 가장의 책임을 다할 새로운 길을 찾지만, 형편은 결코 녹록지 않다.
홍 원장도 그랬다. 오래 해온 화학제품 유통업을 그만두게 될 처지였다. 늦둥이 막내가 겨우 중학생이라 아직 한참 더 일해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었다.
궁리 끝에 홍 원장은 우리 사회가 노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현상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 은퇴 후 어느 정도 소득을 유지하고 있는 실버 세대의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에서 길을 찾아보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금까지 성공을 위해 앞만 보지 않고 살아온 삶의 패턴을 바꾸자’,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인생의 의미를 더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누군가를 돕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찾자’는 다짐을 했다.
그때 누군가가 보청기 사업이 장기적으로 전망이 있고 안정적인 일이라 귀띔을 해주었다. 홍 원장은 무릎을 ‘탁’ 쳤다. 자기가 찾던 실버산업이고, 또 청력이 손상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찾아줄 수 있다면 또한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또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니 나이가 더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 보청기 한번 해보자.’ 마음을 굳히고 홍 원장은 저돌적으로 일을 진행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전문대학원에 진학해서 청능학 석사 학위와 전문 청능사 자격증을 따고, 지하철 사당역 인근에 지금의 ‘굿모닝 보청기 사당센터(원장 홍원택 청능사)’를 개업했다. 지금으로부터 육 년 전의 일이다.
상담 중인 홍원택 원장
사무실에서 만난 홍 원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응접실 벽면에 붙어 있는 각종 자격증과 인증서 중에서 유독 내 눈을 끈 건 국가 공인 자원봉사자 자격증이었다. “보청기 사업을 하는데 자원봉사 자격증이 왜 필요한가요?” 다소 의아해하는 내 질문에 홍 원장은 개구쟁이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봉사활동이 주업이고 봉사를 잘할 수단으로 보청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자원봉사 자격증이 청능사 자격증보다 더 소중하지요.” 그러고 보니 지역 자치단체나 노인복지 기관들과 맺은 봉사 협약서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홍 원장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보청기 사업을 시작한 처음부터 저는 사무실에 앉아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귀가 안 들려 불편한 분들이 계실만한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근처 지역 노인정이나 장애인 시설, 취약계층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무료로 청력검사를 해드렸지요. 상태가 많이 안 좋은데 형편이 어려워 도저히 보청기를 살 수 없는 어르신들에게는 기관 분들과 의논해서 무료로 해드리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 몇 년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더니 저희 센터로 손님들이 찾아오시더군요. 무료 검사를 해드린 분이나 기증을 받은 분들이 주변에 적극적으로 소개를 해 주셨다더군요.'
홍 원장은 이제 자리를 잡아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배경은 역시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는 봉사활동의 진심이 전달된 덕이라고 했다. 요즘도 형편이 어려운 난청 어르신들께 힘닿는 데까지 무료 제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홍 원장은, 앞으로는 중증 청각 장애가 있으나, 절차나 검사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보청기 국가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청각장애 등급을 받도록 돕고 국가보조금으로 부담 없이 보청기를 착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취재를 마칠 무렵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보청기 무료 체험을 받는 분이었다. ‘불편하지 않으신가? 소리는 잘 들리시는가?’ 할머니 코앞에 얼굴을 디밀고 막내아들처럼 살갑게 이야기를 하는 홍 원장을 보다 웃음이 지어졌다. 저런 모습이 행복이지.
‘50플러스의 인생을 사는 일, 분명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생각의 중심을 돈벌이에서 살짝 비켜서서 볼 수만 있다면 돈보다 더 소중한, 나와 내 이웃의 행복을 맘껏 누릴 수도 있답니다’ 하고 홍 원장의 뒷모습이 크게 웃으면서 말하는 것 같았다.
50+시민기자단 김재덕 기자(hamoone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