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적으로 이름을 얻은 친구들도 이제는 거의 다 직장에서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확실하게 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남다른 자부심을 느낍니다. 어려운 집안의 장남으로 혼자 애를 써서 식구들 먹이고 입히고 뒷바라지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이들도 일찌감치 제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었고 손주도 네 명이나 보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 육십 평생을 돌아보면 스스로가 대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외롭고, 주위를 둘러봐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다들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 걸까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들 이러는 걸까요….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입니다.
#2. 솔직히 말해 저는 여자지만 부드러운 사람은 못됩니다. 무뚝뚝하긴 해도 성실한 남편과 아들들 낳고 잘 살았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해 집안 살림을 책임지게 되자 강해지지 않으면 아이들 데리고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가게하면서 아들들 훤훤장부로 키워서 다 장가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게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무뚝뚝한 남편과는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나눌 일이 없고, 아들 며느리는 어머니가 너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라나 뭐라나 곁을 주려 하지 않습니다. 가정사 내 손으로 다 처리해왔고 식구들 그 누구도 내 말에 토를 다는 법이 없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내게 살갑게 말 걸지 않습니다. 자식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만 겨우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들 이러는 걸까요…. 서운해서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저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50+들을 포함해 노년세대를 만나 수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이런저런 사연에 때로는 가슴이 뭉클하고, 갈등의 깊은 골을 볼 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50+ 대부분이 나이에서 오는 오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이미 자기 안에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의 두 분 모두 집안 어른으로 존중받고 존경받으며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무언가 서걱거리며 잘 풀리지 않아 불편하고 혼자라는 생각에 힘이 빠지곤 합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다들 나한테 이러는 거야?”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해서, 애써서 이루어놓은 결과가 이만큼이라 해서, 모든 게 다 양해되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른의 자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옛 어른들이 ‘철 들자 노망난다!’고 해서 저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 나이 되고 보니 알겠어. 내가 이제야 철이 조금 드는 것 같아…” 91세 어르신께서 무심한 듯 제게 해주신 말씀이 귀에 박혀 좀처럼 떠나질 않습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곧 사리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뜻인데,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도 아깝지 않을 나이라고 누구나 속으로 생각할 구십 어른이 이제야 철이 좀 드는 것 같다고 하시니, 정말 제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른’이라는 단어에 노인이 아닌 50+를 대입해서 참 어른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무언가를 바꾸기 어려운 노년의 시기가 아닌, 나이 듦과 함께 변화를 생각하고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관계를 꿈꾸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나이가 바로 50+이기 때문입니다.
하나, 온화함
젊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잘 따르는 어른들은, 공적인 부분이라든가 업무 처리에는 엄격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대체로 너그럽고 온화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얼굴 표정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씨나 행동이 부드럽고 편안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 관계를 맺고 교류를 하며 만남을 이어가게 됩니다. 나이 들면서 내 얼굴에 책임을 지는 일과 통하는 것이지요. 나이 들면 몸은 물론 마음도 정신도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온화한 모습을 위한 노력은 굳은 것을 풀고 부드러워지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둘, 자기 관리
나이 들면서 기력이 떨어지고, 윗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눈을 덜 의식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흐트러지게 마련입니다. 생활리듬을 잘 유지해서 건강을 관리하고, 비싼 옷이 아니더라도 깔끔한 옷차림에 신경을 쓰다보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주하는 사람들도 좋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마음만은 청춘이라지만 마음 또한 어른에 맞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낄 때 못 낄 때를 가리는 눈마저 흐려져서, 전후좌우를 살펴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는 어른 역할을 놓치고 맙니다.
셋, 나이 유세 떨지 않기
나이는 자격증도 벼슬도 아닙니다. 누구나 해가 바뀌면 공평하게 한 살씩 늘어나는 게 나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이를 ‘잘’ 먹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나이를 앞세우며 목에 힘주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어른을 피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무례하기 때문인데, 어리다고 초면에 무조건 반말을 하거나 천둥벌거숭이 취급을 하며 무시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팔짱낀 채 무게 잡고 앉아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는 것도 나이 유세에 속합니다. 나이 들수록 솔선수범으로 본보기가 되어주는 일이 귀중합니다. 어른의 솔선수범은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생생한 가르침이 됩니다.
넷, 섣부른 충고보다는 묵묵한 응원을
나이와 함께 경험과 경륜이 늘어나다보니 후배들이나 자녀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공담도 실패담도 언제부턴가 거의 신화와 전설 수준이 되어 버립니다. 훈수와 잔소리 역시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이라는 겉옷을 입고 녹음기처럼 무한반복 재생됩니다. 세대 간 갈등과 불통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른이라서 무조건 충고하고 훈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생사가 달린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며 지켜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찾아내야 자부심도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집니다. 어른으로서 아랫세대를 도와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