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이후 여행의 의미
힌두교도들은 인생에는 네 단계가 있다고 믿는다. 젊음은 가장 재미없는 첫 단계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을 얻는 대로 빨리 지나가야 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는 아이를 낳고 돈을 벌며 성공을 거두는 단계인데, 수명이 길어지면서 점점 늘리고 싶어하는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는 초연함의 단계로 세상과 생존 경쟁으로부터 물러나 진리를 탐구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시기이다. 네 번째가 가장 중요한데, 도인과 비슷한 존재가 되는 단계다. 인도에서는 노인들이 재를 뒤집어 쓰고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종종 내세에 도달한 듯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종교철학에서 나온다.
작가이자 헨리밀러의 애인이기도 했던 아나이스 닌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안전한 세계에서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다. 그러다가 어느날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다가 문득 자신이 그동안 살아있었던 게 아니라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라고.
고정관념을 깨줄 곳으로의 여행
내가 아는한 우리네 삶을 옭아매는 온갖 선입견들과 편견을 물리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여행이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은 바로 이러한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깨부수어 주었던 나라들이었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첨단의 대도시보다는 이름조차 낯선 오지를 선택했던 이유도 세상의 모든 대도시는 똑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똑같은 빌딩속에 똑같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똑같은 브랜드의 상점 사이를 활보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를 다니며 이런 생각들이 들었었다. “난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 먼 곳을 오지 않았어. 이곳이 아니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장면들, 사건들, 사람들을 만나고자 이 먼 곳을 날아온 거란 말이야. 그러니 세상이여, 다른 것을 보여줘”라고.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시작하는 시기. 새로운 시작과 리셋을 원한다면 여행도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 동양의 고전 <대학>에서는 학문을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출세를 위한 학문이고, 하나는 자신을 세우기 위한 학문이다. 50 이후, 자신을 세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인 것이다.
50 이후 리셋하기 좋은 여행지
여행 전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여행이라는걸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혼자 떠났던 네팔여행에서 스위스여인 로잘린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인도에서 봉사중이었는데 큰 결심을 위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왔다고 했다. 그 결심이란 고국에 남겨놓은 마지막 재산인 집을 인도의 아이들을 위해 처분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언젠가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영원히 인도에서 봉사로 생을 마치느냐의 결정, 즉 일생을 건 결정같은 것이었다. 내려오는 길 환하게 웃으며 로잘린은 말했다. 집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고. 모두가 노후를 위해 축적하는 삶을 살 때 자신의 전재산을 던져 타인을 위한 삶을 택하는 그녀를 보며 이런 선택도 있구나 싶었었다.
<히말라야에서 로잘린과의 만남>
라오스와 미얀마 여행에서는 복잡한 일상에서는 좀체로 만나기 힘든 사람들. 오직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장을 볼때면 당장 자기의 입에 들어갈 밥보다 부처님 전에 바칠 꽃을 먼저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소득이 낮지만 비교 없는 행복 속에서 환하게 웃던 수박 팔던 아낙의 미소를 잊지 못한다. 세계행복지수(GHP)를 창조해낸 부탄에서는 국가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날마다 무자비한 자연 훼손과 자본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서는 생명과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통과 노인의 지혜를 존중하는데서 다같이 평화롭게 지내는 삶을 만날 수 있었다. 구호단체 광고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나 마다가스카르같은 나라도 실제로 가보면 그저 가난하기만한 곳이 아니라 찬란한 고대유적과 커피향 가득한 나라이며, 바오밥 나무와 어린 왕자들의 꿈이 자라는 나라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나라들을 가는 동안 자연히 생긴 습관은 책상위에 넘쳐나는 연필과 볼펜, 노트들을 챙겨넣고, 티셔츠와 옷가지들을 챙겨가 나누는 일이었고, 돌아올때면 배낭은 비우고 그 자리에 여행의 기쁨과 행복을 담아오게 되었다.
<풍선 하나에 즐거워하던 마다가스카르 아이들> <미얀마에서 만난 수박 파는 여인의 밝은 웃음>
<사원에서 만난 이방인에게 꽃을 선물하던 소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는 부탄의 한 소녀>
최고의 배움터, 여행
여행이라 하면 사람들은 혼자 가느냐, 아니냐, 어떤 에피소드가 있느냐 없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사실 여행에서 중요한건 그런 것들이 아니다. 처음 하는 여행에서 차를 놓치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하는 일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나라를 여행한 전문가라 할지라도 처음 가는 나라에서는 서툰 여행자일 뿐이다. 그건 당시엔 당황스럽고 힘들지만 지나고나면 두고두고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혼자 가는 것,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혼자 가든, 함께 가든, 에피소드가 있든 없든간에 여행에서 얻어야할 소중한 것들을 느끼는 사람은 느끼며,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이의 눈에 여행은 그저 배회이거나 방황일 뿐이지만 어떤 이에겐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할 값지고 소중한 배움이 된다.
여행에 대한 수많은 명언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명언은 이것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건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 오마에겐이치, <난문쾌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