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과 마음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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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동 서울식물원에 있는 주제원을 보러 갔다. 주제원은 주제를 중심으로 한 정원이다. 추억의 정원, 사색의 정원, 초대의 정원, 치유의 정원, 정원사 정원, 숲정원, 바람의 정원, 오늘의 정원, 댄싱 가든, 수국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천히 둘러 보았다. 바람의 정원부터 차례로 찾았다.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생각하며 천천히 배회했다. 바람과 그라스가 만들어내는 이국적 정서라는 부제가 적혀 있다. 우리말 ‘풀’이라는 단어가 주는 푸릇함, 싱그러움이 있기에 굳이 그라스라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대신 풀이라고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참억새, 실새풀 등 다양한 풀에 바람에 불어 내는 소리가 신선하다. 도시 생활에 지친 심신에 쉼과 여유를 받는다.
▲ 오늘의 정원
느리게 발길을 옮겨 오늘의 정원으로 향했다. 식물의 감각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정원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오늘은 다시 올 수 없으니 오늘만 있는 것처럼 즐겼다. 널찍해서 벤치에 앉아 쉬며 나무와 풀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요와 평안을 느꼈다.
어릴 때 보던 식물을 통해 과거로 여행을 떠나 본다. 지내온 시간이 남은 시간보다 많다고 여겨지니 아쉽다. 추억은 아름답다. 더 잘하지 못하고 더 잘 대해 주지 못한 사실이 아련한 아픔으로 남는 것은 웬일일까. 자연의 소리와 함께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치유의 정원
약용식물을 관찰하며 약초로 꾸며진 치유의 정원에서 휴식과 치유를 경험했다. 다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는 사색의 정원, 초대의 정원, 숲 정원, 정원사 정원, 장미 정원, 댄싱 정원은 아쉽지만 분량상 생략한다. 시간 내어 가서 즐겨 보기를 권한다. 대체로 주제에 어울리게 아기자기하게 구성한 것이 느껴졌다.
정원은 언제 생겼을까. 유목민들은 정원을 만들지 않았으니 농경이 시작되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동서양 모두 채소밭이 정원의 시작이라고 본다. 처음에는 정원에서 생산활동이 이루어졌다. 실용 공간이자 생산공간이었다. 정원은 자연과 인공의 결합물이다. 정원은 울타리 안에 흙과 물, 여러 식물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정원을 중국에서는 원림, 서양에서는 garden이라 부른다.
궁중 정원, 별서 정원, 별장 정원, 주택 정원, 별당 정원, 나라마다 시대마다 정원의 형태가 다르다. 순천 국가 정원에 가면 각국의 정원을 볼 수 있다. 일본 정원, 중국 정원, 영국 정원, 프랑스 정원, 미국 정원, 바로크 정원, 이탈리아 정원, 석탑 정원, 석물 정원, 공중정원 등 다양하다.
중국 정원은 인공으로 자연을 만들고, 일본 정원은 집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이고, 한국 정원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고 평가한다. 일본 정원은 첫눈에 반하나 금세 질리게 되고, 한국 정원은 처음엔 서먹하나 점점 은은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중국 정원은 첫인상은 서글서글한데 왠지 마음을 두기 쉽지 않다고 한다.
정원을 감상하는 법을 소개한다. 오감을 열어젖힐 것, 풍경 바깥을 살필 것, 그 속을 거닐 것, 나직이 읊조릴 것, 가만히 응시할 것, 깊이 침잠할 것...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를 것이니라 평소에 좋아하는 말씀이 떠오른다.
자연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 전쟁에서 돌아온 미국 군인들이 전쟁의 상처로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어려웠다. 여러 방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효력이 없었는데 농사를 몇 년 지으면서 복귀가 가능했다고 한다. 프랜시스 호넷의 『비밀의 화원』은 자연의 치유력을 그린 작품이다. 상처받고 버려진 고아 소녀 메리와 병든 사촌 콜린이 방치된 화원에서 꽃과 나무를 돌봄으로써 자연에 의해 치유 받아 다시 소생하는 과정을 감명 깊게 그리고 있다.
심리학자 융이 이야기하는 집단적 무의식에 에덴동산이 있다. 에덴동산에서 쫒겨나 그리워하는 심정에서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정원은 즐거움을 누리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유가 있어 별장을 만들어 인생을 즐기는 지인이 초청해서 방문했다. 주중에 시간을 내어 가꾸고 있었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 작은 규모로 만들거나 마음속에 정원을 가지는 것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사는 방법이다.
50+시민기자단 최원국 기자 (hev5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