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화이자사(社)는 미국 뉴욕 코로나 본사 외벽에 ‘과학이 이긴다(Science will win)’라고 쓴 큼직한 문구를 내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출시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 선언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백신이 전 세계에 속속 보급되며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초기 방역에 실패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다수 나왔지만 빠른 백신 보급 덕분에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반면 ‘모범 방역 국가’였던 대만을 비롯해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은 고통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한국도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보급을 시작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이어 미국으로부터 받아온 100만회분의 얀센 백신이 30대 이상 예비군·민방위 대원들에게 성공적으로 접종되면서다. 정부는 백신 보급을 장려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국민들이 예방접종의 효과를 체감하고 백신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예방접종 완료자 일상회복 지원 방안’을 알아보고 접종자는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정리했다.
글. 성수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가족모임 제한 완화 비롯해 ‘백신 혜택’ 쏟아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은 지난 5월 26일 ‘코로나 예방접종 완료자 일상회복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방역 수칙을 단계적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백신을 한 번이라도 맞으면 6월부터 직계가족 모임 ‘8인까지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핵심이다. 예컨대 조부모 2인이 접종을 받았다면 올 추석에는 8인이었던 직계가족 모임 제한 인원에 2명이 추가돼 10명까지 가족 모임이 가능해진다.
방역수칙 조정은 6월(1단계)·7월(2단계)·10월 이후(3단계) 등 3차례에 걸쳐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6월 1일부터는 요양시설 면회객과 입소자 중 한 쪽이라도 예방접종을 완료한 경우 대면 면회를 허용키로 했다. 1차 접종을 받은 65세 이상 노인들이 노인복지관·경로당을 다시 이용하고, 예방접종 완료 어르신으로만 구성된 소모임은 노래 교실 및 관악기 강습 등도 할 수 있게 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기본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해진 어르신들의 정신건강을 보살필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방접종 참여자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박물관과 미술관, 국립공원 등 주요 공공시설의 이용요금 할인·면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국립공연장과 국립예술단체의 공연 관람권도 20%를 할인받을 수 있다. 템플스테이 이용 할인, 고궁 등 문화재 특별관람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정부 대책과 별개로 각종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들도 많다. 백신 보급을 장려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홍보 및 이용객 증가 효과도 누리겠다는 복안이다. 주로 식당이나 영화관, 공연 등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업종이 많다. 밀레니엄 힐튼이 6월 30일까지 백신 접종자와 그 일행에 호텔 뷔페 가격을 절반 할인해주는 행사를 한시적으로 진행한 게 대표적이다.
서울 예술의전당은 백신 접종자와 동반자 1명에게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티켓 20%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기획공연으로는 11시 콘서트, 토요 콘서트, 평화콘서트, 마음을 담은 클래식 등이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백신 접종자에게 기획 공연·전시 관람료를 최대 30% 할인해준다.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모두 1차 접종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영화관들도 동참했다. 국내 대표 멀티플렉스 3사인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에게 영화 관람료 할인 등의 인센티브를 6월 말까지 제공한다. 1·2차 접종자 모두 동반자 1인까지 티켓 한 장당 5000~6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7월 ‘야외 노마스크’, 연말 ‘마스크 완전 해방’
7월부터는 백신 접종자들이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7월부터 1차 접종자에 대해 ‘야외 노마스크’를 허용하고, 2차 접종을 끝낸 사람은 5인 이상 사적 모임 제한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예컨대 3명의 백신 미접종자와 3명의 접종자가 저녁식사를 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종교 활동도 자유로워진다. 1차 접종자와 예방접종 완료자는 정규 예배, 미사, 법회 등 대면 종교 활동의 참여 인원 기준에서 제외된다. 또 예방접종 완료자로만 구성된 성가대 및 소모임 운영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접종 계획대로 9월까지 전 국민의 70% 이상 1차 접종이 마무리되면 실내에서도 마스크 의무 착용 조치 완화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병원이나 요양시설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코로나19 이전 일상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은 예방접종 완료자에 예외를 적용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예방접종 계획 상 연령대별 순서에 따라 접종하는 상황에서, 접종 완료자들에게만 시간제한을 풀면 접종기회가 없었던 국민들에게 차별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외국도 “백신 맞읍시다”
외국도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갖가지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독립기념일인 7월 4일까지 한 달을 ‘국민 행동의 달’로 명명하고 코로나 백신 접종 총력전에 나섰다. 백신 접종자에겐 공짜 맥주와 야구 티켓 등을 주고, 자녀를 돌보느라 접종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무료 보육 서비스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민간 기업들도 여기 동참하고 있다. 버드와이저 등을 생산하는 미국 맥주·음료 업체 안호이저 부시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70% 접종률’ 공약이 달성될 경우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모든 21세 이상에게 5달러 상당의 공짜 맥주 한 잔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연설에서 “백신을 맞고 (공짜) 맥주 한 잔 마시라”고 했다. 약국 체인인 CVS는 백신을 맞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짜 크루즈 여행과 프로미식축구 챔피언결정전 ‘수퍼볼’ 티켓 등을 경품으로 내걸었다.
프랑스는 이달 15일부터 백신 접종 대상을 12~18세로 확대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50% 가량이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진정한 전환점을 지났다”고 말했다.
*이 원고는 6월 20일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코로나19 확산 상황 및 정부 정책 변동에 따라 일부 세부사항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