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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공유사무실 공유공간 힘나2주간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 629일 다시 문을 열었다. 화상회의에 적합하도록 방음시설이 된 회의실 공간 등 더 실용적이고 쾌적해진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올해 3월부터 공유공간 힘나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는 새내기 입주자다.

 

주부인 나는 늘 글 쓰는 공간이 아쉬웠다. 나만의 방이 없기 때문에 주로 식탁에서 글을 썼다. 밥을 먹을 때마다 노트북을 치우고 책을 한옆으로 밀어 놓아야 했다. 책을 보기에는 식탁 조명이 어두워서 책상용 스탠드를 두어 나름의 공간을 꾸며보았지만, 식탁 위에 글 쓰는 살림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식사 때마다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도 늘어났다.

 

샬롯, 에밀리, 앤 브론테 세자매도 식탁에서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같은 명작을 썼다곤 하지만, 나는 읽고 쓰는 나만의 공간을 간절히 원했다. 큰 결심으로 오래된 거실 소파를 버리고, 이사하며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거실 테이블을 꺼내와 내 책상으로 삼았다. 내 책을 쌓아두어도 되고 번거롭게 매번 노트북을 옮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내 공간이 있다는 게 이렇게 좋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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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안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거실에서 앉아있으니 오히려 집중이 힘들었다. 가족 아침 식사를 챙기고 일단 살림은 미뤄두고 글부터 써야지!’하고 책상에 앉지만 밤새 마루 위 가라앉은 반려견의 털이 눈에 보인다. 눈을 질끈 감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부스스 일어나 청소기를 돌린다. 그러고 나면 바닥에 얼룩이 보여 물걸레를 돌린다. 그러고 나면 주방 개수대에 쌓여있는 아침 식사 설거지가 보인다. 그러고 나면 저녁거리가 걱정돼 장을 보러 간다. 그러고 나면······.

 

깨끗하게 정리정돈 된 집, 맛있고 따뜻한 집밥, 빳빳하게 다림질된 옷. 내 무의식 속 주부의 역할에 대한 주문이 끝없이 밀려온다. 다 마른 빨래는 바로 걷어야지. 개킨 빨래는 왜 빨리 제자리에 넣지 않니. , 지난 계절 옷 정리는 다 한 거야? 거실장 먼지 좀 봐!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가족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말이다.

 

마치 그렇게 끊임없이 청소를 하지 않으면 주부의 자격이 없어진다는 듯이,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조건하에서만 집에 있을 권리가 생긴다는 듯이 (291)”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를 읽다가 내 마음을 들킨 듯했다. ‘장소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문장에 가슴이 뛰었다. 나는 아내, 엄마, , 며느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글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그러니까 라는 정체성도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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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마침 서울시청 소식지를 통해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공유사무실 공유공간 힘나입주자 신규 모집 소식을 들었다. 나는 당시 출판 준비 중인 책으로 활동 계획서를 만들었고,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해 개인 자격으로 입주자 모집에 합격했다.

 

단체는 지정된 사무공간이 있지만, 개인은 비지정석으로 개방 사무실 형태이다. 집이 아닌 곳에 방해받지 않는 내 공간을 가질 수 있어 기뻤다. 입주 초기에는 몸은 사무실에 있으나 마음은 여전히 집안일 걱정이었다. 애들은(이라고 하기엔 모두 대학생이지만) 밥을 잘 챙겨 먹었나? 청소기는 한번 돌리고 나올 걸 그랬나? 빨래가 밀리진 않았던가?

 

그러나 가족 모두 사무실 출근을 응원해주니 점점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무실에서 책 원고 마지막 수정작업을 무사히 마치고, 예정대로 4월에 첫 책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를 출간했다.

 

50세 이후의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며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도전하는 다른 입주자들을 보며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나는 혼자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기분이 들어 외롭지 않은 것도 공유사무실의 장점이다. 매월 월례회를 통해 입주자들의 사업 진척 소식을 들으면서 함께 힘을 내고 축하하는 기쁨도 크다.

 

매일 나는 노트북 하나만 들고 공유공간 힘나에 출근한다. 오롯이 에 집중해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그 공간으로.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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