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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이 좀 더 필요하신 친정엄마가 실버타운으로 이사를 하는 날이다. 지열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것 같은 뜨거운 열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혼자 사시던 엄마의 짐이라 거의 큰 물건들을 버리고 가기로 했기에 용달 한 대면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안 입으시는 옷은 버리자 싶어 백 리터 쓰레기봉투를 몇 개를 사 갔지만 고스란히 남았다. 엄마의 짐을 싸드리면서

 

"엄마, 이거 버리지?"

"아니야, 가면 입지."

 

반복된 대화로 대부분의 옷들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 옷들 속에는 40년이 된 옷들도 있다. 친정 오빠가 교복 입은 중학교 입학식 날 입고 함께 찍은 보라색 투피스까지 가지고 계셨다. 투피스를 보니 사진으로만 보았던 내 나이 때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나마 보라색 투피스는 챙겨 가는 것을 이해하지만, 충분히 버려도 되는 옷들을 엄마는 부득부득 가지고 갈 짐에 넣으셨다.

 

용달차 위에 고목처럼 서있는 병풍은 가족들 모두가 간곡하게 가져가지 않기를 바랐다. 40년이나 된 병풍의 뒤는 닳아 찢어지고, 병풍의 앞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묵은 세월이 누렇게 내려앉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가 애지중지하시던 자개 화장대며 그릇장, 옷장 옆에서 수십 년을 함께 했던 병풍이라 마음이 가시는 것은 안다. 그래도 이사하시는 곳에는 가져가지 않기를 바랐는데 괜찮다며 살살 닦으면 된다는 엄마를 말릴 수가 없었다. 자개장들을 버리고 가셔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깝고 속상하실까 싶으면서도, 우선은 건강을 위해 쾌적한 곳에서 기분 좋게 지내시기를 원했지만 엄마는 엄마의 물건들이 함께해야 좋으신 거였다. 우리의 생각과 엄마의 마음은 방향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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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옆에 세숫대야도 보인다. 저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야. 저걸 챙겨 달라는 엄마의 부탁에 처음으로 정말 만지기 싫다고 두고 가자고 했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야는 입원하시는 일 년여 동안 마당 구석에 있었다. 벌레를 무서워하고 나는 거미줄을 헤치고 그쪽으로 가서 그걸 닦아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엄마, 저걸 가져가서 뭐해? 필요하면 내가 새로 사줄게."

"안 돼, 꼭 가져가야 해. 저건 너 아기 때 목욕시키던 거야."

 

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거미줄을 헤치고 구석에 있던 스테인리스 대야를 기어이 닦아야 했다. 진짜 무섭고 싫었지만 엄마의 마음이 너무 강해서 숨을 참고 꺼내서 닦았다. 그 순간은 내가 그렇게 닦기 힘들다는데 고집을 피우시나 야속한 마음도 있었다. 그 스테인리스 대야가 트럭 안에 미동도 없이 엄마를 따라가겠다는 듯 찰싹 붙어 있다. 한숨을 돌리고 무심히 병풍과 대야를 바라보는데 무언가 엄마의 마음이 무엇이었을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실랑이를 할 때는 엄마가 먼지 나는 물건들없이 쾌적하게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만 들었었다. 하지만 실버타운도 엄마에게는 이사해서 살집이고 그동안 이사 때마다 가지고 다니셨을 물건들을 가져가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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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집보다 작은 곳으로 가시면서 버리고 가는 가구들은 차치하고라도, 정이 깃든 물건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50년 전 나를 앉혀 씻기시던 젊고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이 아련하게 상상이 되어 문득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에게는 가장 좋았던 시절, 자식들에게 손이 가장 많이 가던 엄마의 화양연화가 오래된 병풍에, 닦아도 빛이 나지 않는 세숫대야에 켜켜이 남아 있다. 그 마음이 느껴질 때마다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것은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들의 물건에 엄마처럼 마음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아들들이 처음 입었던 배냇저고리며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는 내 마음이 이러한데 수십 년 엄마를 잡고 있는 자식들과의 추억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일 테지. 소중한 추억은 쓸쓸한 뒤안길에서 외롭지 않은 세월이었다는 힘을 주기도 하고, 울적한 하루에 다시 살아낼 용기를 주기도 할 테니 말이다. 도대체 엄마들에게 자식이란 어떤 존재일까.

 

50+에세이작가단 리시안(ssmam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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