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세이] 남산, 그리고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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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유적에 관심이 있건 없건 간에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남산(270m)에 가면 영욕의 역사 현장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성벽, 봉수대, 와룡묘, 통감부 터, 경성신사. 기억의 터, 삼순이계단. N서울타워, 그리고 케이블카에 이르기까지 과거부터 현재의 이야기와 유적들이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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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남산유적전시관에서 N타워 가는 길에 있는 계단 (오른쪽에는 성벽이 보인다)

  

남산 회현자락에 자리잡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옆에는 하얀색 지붕이 덮인 한양도성 남산유적전시관’(이하 전시관)이 있다. 연면적 43000규모인 전시관은 외벽 없이 19개의 기둥과 반투명 지붕 등으로 구성되어 내부가 훤히 보이게 만들어졌다. 유적을 온전히 보호하면서도 관람객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한 의도일 것이다. 전시관의 내부를 관통하는 약 190m의 성벽 유구는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울려서 탐방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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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남산유적전시관 전경(입구) 

 

전시관은 2013~2016년 남산 회현자락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멸실된 줄로만 알았던 유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울러 성벽 뿐 아니라 도성 築城의 시대적 진행 과정, 일제 강점기의 수난, 해방 이후의 도시화, 최근의 발굴 및 정비 과정까지 한 자리에서 압축하여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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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성석 입구에서 바라본 전시관

 

관람객들은 전시관에 성벽과 평행으로 설치된 관람 데크를 따라 걸으며 한양도성과 함께 변화된 서울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전시관 중심엔 한양도성 성벽이, 중간에는 일제가 식민통치수단으로 건립한 조선神宮拜殿터와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분수대, 남산 정상 방향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방공호, 그리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축성과 관련된 글을 새긴 돌 '刻字城石'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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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성석에 대한 설명이 담긴 표지판

 

 

漢陽都城이란 무엇일까?

한양도성은 조선 왕조의 도읍지인 한성부(서울의 옛 명칭)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동서남북 4개의 산 능선과 그 사이 평지를 연결해 쌓은 총길이 18.6km, 성벽 높이 5~8m인 대규모 성곽이다.

한양도성은 축성 600년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도시 성곽으로 서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살아있는 역사이며 증거이다. 비록 일제강점기,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인구 1천만이 넘는 거대도시 서울에서 본연의 가치와 형태를 유지하면서 전체의 70%인 약 13km 구간이 현존하는 자랑스러운 대표적 역사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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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한양도성의 성돌변화 안내판

 

1392년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반도의 중앙에서 남쪽으로는 한강을, 주변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풍수의 명당이요, 천혜의 요새지인 한양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통치의 중심 공간인 궁궐을 主山인 백악산 아래에 남향으로 짓고 조상의 신주를 모신 종묘,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신 사직을 궁궐의 좌우에 완성한 이후, 도성을 건설했다. 도성은 한양의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주산인 백악산과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 案山에 해당하는 남산(목멱산)을 연결하며 건설되었는데 북한산성 · 남한산성과 짝을 이룬다. 도성에는 4대문(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4소문(혜화문 · 소의문 · 광희문 · 창의문)을 두었으며,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4대문의 이름은 조선의 국정철학인 성리학의 오행사상에 따라 인의예지신을 표현한 것이다. 도성 밖 10리는 城底十里라 하여 개인의 무덤을 쓰거나 벌채를 못하도록 규제하였으니 일종의 그린벨트였다. 도성은 조선초 전국 8도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구역별로 나누어 건설하였다. 처음 축성할 당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으나, 세종 때 개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바꾸었다. 이후 세월이 흐르고 전란을 겪으면서 무너진 성벽 일부를 지속적으로 보수 · 개축하였으며,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겨 두었다. 전시관에서는 태조, 세종, 숙종 그리고 순조 때 축성한 성벽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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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구조 설명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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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성돌 - 태조(아래), 세종(왼쪽), 숙종(오른쪽)

 

 

 

애국가 제2절 가사에서도 나오듯이 도성이 지나는 남산은 소나무가 우거진 신령스런 산으로 조선은 이를 목멱대왕으로 삼아 왕실의 번영을 비는 제사를 지냈으나 일제강점기 때는 식민지배의 중심지로 변해 조선신궁이 들어서는가 하면, 해방 후에는 그 자리에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졌다가 4·19 혁명으로 철거되었고, 이후 들어선 식물원도 2006년에 철거되고 이제 분수대만 전시관에 그 흔적이 남았다.

 

전시관은 작년 11월 임시개관 이후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해설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지만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6)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한양도성 탐방 프로그램을 비롯한 구체적인 정보는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면 된다.

 

 

 

 

 

[글/사진:50+시민기자단 4기 정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