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의 저 백합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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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 고랑 사이를 빠져나온 바람은 어느 이름 없는 사립문 앞에 머물고한 낮 여름을 달구는 불볕더위는 온 하루 절정으로 뜨겁게 장식할 때 뭉게구름보다 순수하게 하늘을 인 새하얀 꽃잎, 차라리 땅을 핥는다!” 애초에 뿌리 깊은 탄탄한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 또한 충실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기에, 흘러서 내가 되어 바다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큰 나무도 아닌데도 세차고 억센 장마철 비바람에 끄떡없이 교교하게 핀 백합참으로 귀하고 이쁘게 저리도 자태를 뽐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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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은 우선 줄기를 틔우고 새싹을 내고도 꽃을 피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햇빛 좋을 따뜻한 때 무턱대고 피는 벚꽃이나 개나리보다 백합은 봄기운 내내 자양분을 키우고 살을 찌워 실로 오랜만에 꽃을 피운다

 

대기만성(大器晩成), First deserve then desire! 화려한 꽃을 위해 그만큼 준비하고 내실을 다졌다. 일찍이 철학자 칸트도 말했다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e sind blind.)” 명실상부(名實相符), 알려진 것과 실제 내용이 일치했을 때의 기쁨, 백합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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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의 또 다른 아름다움은 단지 꽃만 피운다. 이것저것 주저리주저리 달고 다니지 않는다한때 자동차 광고 선전에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다. 자신을 알리는데 명함에 웬 직함들이 그렇게 많냐고고난의 때나 불경기 때는 단순하고 단촐한 것이 최적의 생존 방법이다.

호더(hoarder),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일종의 강박적 축적(compulsive hoarding)을 겪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낡고 필요 없는 물건이나 쓰레기 혹은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 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은 불필요한 짐만 될 뿐이다장대비 같은 세찬 비에도 고요히 그리고 또 하나의 꽃을 피우는 백합이 고맙고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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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의 미는 옴팍 고개를 수그리는 다 내어 줌이 멋이다장대비나 소나기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바둑 고수 왕적신(王積薪)이 만든 위기십결(圍棋十訣)’이 있다1300여 년 동안 바둑의 묘수를 대변해왔고 경영이나 인간 처세에도 손색이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기는 것을 탐하면 얻지 못한다.”(부득탐승, 不得貪勝)를 필두로 열 가지 전술을 담았다.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가 강할 때는 나를 지키고, 세력이 약할 때는 현실과 타협(세고취화, 勢孤取和하는 것이 일종의 지혜다.

 

한신의 과하지욕 (袴下之辱)의 고사처럼 순간의 쪽과 분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에서 쓰이는 용어로 키 큰 양귀비 증후군(Tall poppy syndrome)”이란 게 있다정원사가 정원을 가꿀 때 키가 커서 돋보이는 양귀비나 키 큰 나무를 우선 쳐내는 것처럼, 남보다 빨리 출세하거나 앞서 나갈 경우 빨리 꺾일 수 있다는 경고의 뜻으로 쓰이는 표현이다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50, 지천명(知天命)부터는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내밀어 주지 못한 손길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것도 멋진 삶의 방식이다.

 

순결한 백합, 청순한 나리꽃! 그래서 순백의 백합은 나의 나으리 꽃이다.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s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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