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시험

 

삶이 지속되는 한 시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실로 다양한 시험을 겪으며 낙방에 좌절도 하고 게으름에 후회도 많았으리라. 또한 값진 노력의 결실을 맺어 한동안 안락함과 함께 자존감을 세워준 시험도 있었을 것이다.

 

1958년에 태어난 사람들에겐 따라붙는 미사여구가 많다. 58년 개띠, 베이비부머 세대, 뺑뺑이 1세대, 고교평준화 세대. 그 이름도 유명한 58년 개띠들이 환갑을 맞이하는 2018년은 황금개띠의 해이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황금개띠의 해이니 돈 많이 벌라고 덕담을 나누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완벽한 은퇴시기를 맞이하는 서럽고 쓸쓸한 해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사유가 한 가지 있다. 자녀들 중 유일하게 과외 공부도, 단과 학원 등록도, 재수도 한 적 없어 조금이나마 가계의 경제 부담을 더는데 기여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부모 입장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자라 준 자녀였다. 누군가는 겪었을 시험의 굴레와 면접의 두려움이 내게는 없었다. 내가 졸업한 1981년은 급증한 해외건설 취업이 포화 상태로 하향 곡선을 긋기 시작했고, 제2차 석유 파동의 여파와 국내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등으로 인해 경제 침체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교적 순탄하게 직장을 잡았고, 이후 이직할 때도 큰 어려움 없이 마지막 관문인 시험과 면접을 통과하곤 했다.

 

 

이런 내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은 어이없게도 운전 면허 시험이었다.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 직장 상사로부터 특급 정보를 얻었다. 회사에서 지정한 운전 면허 학원에서 운전교습을 받고, 1년 내에 운전 면허를 취득하면 운전 교습비 전액을 회사에서 보상 지원해 주는 직원 연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운전 학원 교습비가 내 한 달 월급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하기 힘든 자동차의 구조에 관한 이론과 용어와 교통 법규가 가득한 필기 시험은 무난히 합격했지만, 실기 시험은 긴장한 탓인지 불합격을 거듭하는 수모를 겪었다. 필기 시험 합격 후, 신청해 놓은 실기 시험은 마가 낀 듯 번번이 미끄러졌다. 심지어 실기 시험을 앞두고 다른 일로 아예 시험장에 가보지도 못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필기 시험의 유효기간인 1년을 넘긴 탓에 필기 시험을 두 번 더 치루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끝에 마침내 실기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운전 면허 시험을 제외하고 또 다시 좀처럼 실패를 경험해 본적이 없던 나에게 본격적인 시험의 시련이 찾아온 것은 40대 중반 이후였다. 너무 자극이 없던 탓이었는지, 정년 만 60세가 보장되는 탄탄한 직장을 주제넘게 박차고 나온 시점이었다. 누가 창의력의 반대 개념이 게으름이라고 했던가? 한 직장에서 13년째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다보니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가족과 주변의 만류와 우려를 뒤로한 채 때맞춰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부여잡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단번에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새로운 환경은 나의 예상과 빗나갔다.

 

난생처음 몇 달 치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이후에도 철새처럼 여기저기 머무는 짧고 반복적인 재취업과 퇴직을 거듭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 관련분야 경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경력에 맞는 월급을 책정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번번이 거절당하고 불합격 처리가 되었다. 이런 초라한 나의 모습이 어이없고 스스로도 낯설었다. 시험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만을 그리워하며 주저앉을 수 없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수많은 시험에 기꺼이 도전해야만 했다. 

 

에드워드 카(영국 정치학자, 사학자)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 대화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내 개인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가야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멈춘다면 내 인생의 역사는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지금까지 시도해 본적이 없는 분야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주변인의 권유로 KTV 국민방송 기자단 모집에 지원해보았다. 이 나이에 생소한 취재 기사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무려 언론 고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는 분야였다. 그만큼 전문 과정을 이수하고 글쓰기 훈련과 함께 순발력, 냉철한 분석력, 관찰력, 판단력 등을 고루 갖춰야 하는 직종이다.

 

큰 기대감을 가질 수 없는 도전이었지만, 막상 면접안내를 받고 나니 마음이 들떴다. 과연 나의 인생시험 중 시련이 다시 재개될 것인지 결과가 궁금했다. 최종 합격자 발표일 틈틈이 휴대폰 문자를 확인했지만, 오후 7시가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역시~"하는 쓸쓸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아침, 지인으로부터 '딩동!'하는 문자 알림소리가 울렸다. KTV 국민방송 웹사이트 알림 창에 게재된 면접합격자 명단이었다.

 

나에게 미래를 향한 새로운 희망이 하나 추가되었다. 때늦게 마주한 내 인생의 여러 시험과 시련이 보상을 받기 시작한 듯, 바닥을 친 후에야 진정한 오뚝이로 다시 일어서는 나를 바라본다. 이후로도 몇 차례 이력서를 다듬어 50+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이런 저런 자리에 지원서를 내고 서류심사, 면접 등 수차례의 시험들을 경험하면서 이런 시험의 굴레는 내가 살아있는 한 지속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다. 50+가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듯, 앞으로 도전해야할 시험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자신들이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나를 기다리는 시험들을 외면하지 말고, 그것들을 극복하며 분주히 앞으로 한 발짝씩 내딛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