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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인방송 라디오 [사람과 책]에 출연했다.(www.ifm.kr/article/34592). 진행자 엄윤상 변호사와 올봄 출간한 졸저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질문을 받았다. “책을 읽다 보니 작가님의 꿈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어요. ‘발레 연습실을 퐁퐁 뛰어다니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라고요?”

 

내가 서른 중반에 발레를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유치원생 딸들이 다니던 발레학원은 수업이 시작되면, 엄마들이 큰 유리창으로 아이들이 발레 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하루는 발레 선생님이 엄마들에게 보고만 있지 말고, 성인취미반에 들어와 직접 발레 하기를 권했다. 전깃줄 위의 참새처럼 나란히 앉아있던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발레리나의 분홍색 토슈즈를 동경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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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몸에 딱 붙는 레오타드와 분홍 타이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서기가 쑥스러웠다. 무용복은 몸을 다치지 않고 정확한 발레 동작을 배우기 위함을 알게 된 후, 내 몸도 다른 사람의 몸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나는 굳었던 몸을 풀기 위해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고, 발레 수업에 들어갔다. “플리에~ 그랑 플리에~” 프랑스어인 발레 용어는 낯설었지만, 선생님의 발음은 크루아상 빵처럼 달콤했다.

 

한동안 나는 나이 들어 발레를 배운다는 것이 겸연쩍어, 주위 사람에게 발레라기보다 스트레칭이야. 스트레칭~’이라고 말하곤 했다. 뻣뻣한 몸을 조금씩 부드럽게 늘려가고 우아한 동작을 익히면서 발레의 재미에 푹 빠졌고, 나중에는 발레 전도사가 되었다. 발레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구나’ ‘무엇을 시작하는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구나하는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다.

 

실제 발레 무대에도 섰다. [백조의 호수] 중 궁중 연회에 초대된 공주들의 춤을 발표회에 올렸다. 고난도의 동작은 쉽게 바꿔, 여섯 명이 한 명처럼 보이도록 열심히 연습했다. 인근 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발표회 날, 난생처음 무대화장도 하고 살구색 드레스를 입었다. 객석에서 무대를 지켜본 친정어머니는 말했다. “내 딸이 발레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것도 서른이 넘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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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나빌레라] 스틸컷_ 출처: 공식 홈페이지
 

 

 

발레를 삼십 대에 시작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칠순의 나이에 발레리노의 꿈을 이룬 이가 있다. 올봄 잔잔한 감동을 준 드라마 [나빌레라]의 주인공 심덕출 씨다. 집배원으로 은퇴한 덕출은 어릴 때 꿈을 이루기 위해 까칠한 23살의 발레리노 채록에게 발레를 배운다.

 

막상 덕출의 발목을 잡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가족의 고정관념이다. 삼남매는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듯 발레를 말리지만 사실은 주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은 남들처럼 평범한 취미생활을 하라며 등산복과 헬스클럽 회원권을 선물하고, 오랜 이웃은 그가 춤바람이 났다며 수군댄다. 근력과 유연성의 신체적 한계보다 사회적 편견이 그를 더 힘들게 한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날아오르고 싶은덕출의 진심과 열정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발레에 도전하게 한다. 치매 증상을 가져오는 알츠하이머병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평생 꿈이었던 발레에 쏟는다. 덕출은 [백조의 호수] 2인무로 채록과 함께 무대에 올라 마침내 날아오르는 꿈을 이룬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일흔의 덕출이 그랬듯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자막이 오래 여운을 남긴다. 일흔에 발레리노가 된 그에게서 모든 일에 늦은 때는 없다라고 다시금 깨닫는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슬쩍 물어보니 어렸을 때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남편의 꿈을 밀어주고 응원하고 싶다. 설렘과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슴 뛰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꿈에 도전하는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하늘을 날아오르는 나비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나도 당신도, 도전하는 우리 모두 나빌레라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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