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라는 생애전환기에 겪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관계’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어떤 변화는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지만, 원치 않는 변화에는 때때로 고통이 수반된다. 무엇이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변화에 저항하는 자기방어가 생기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행복 관련 조사에서 ‘좋은 관계’는 중요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지만, 실제로 ‘현재 맺고 있는 변화무쌍한 관계망’이 우리를 어느 정도 행복하게 하는 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과연 '좋은 관계'라는 게 무엇인지도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참 일하던 시기에 ‘사회관계’라는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시간과 돈을 들여 유지했던 '인맥' 관계들이 은퇴 이후에는 새삼 멋쩍게 다가오기도 한다. 흔한 얘기로 핸드폰에 수백 명의 연락처가 있지만, 마음 답답한 어느 저녁에 편안하게 불러내어 속 얘기 나눌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서글픈 호소도 많다. 딱히 이렇다 할 내실도 성취도 없이 모여서 허허실실 웃다보면 괜히 돈만 들고 마음만 공허해진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비로소 덧없다 느껴지는 관계들을 셀프 구조조정하게 되면서 관계의 선택과 집중을 도모하게 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나마도 피붙이 가족이 제일이다 싶고 소중해져서 갑자기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한참 일하느라 너무 신경을 못써준 아내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저녁을 만들어 깜짝 대접해보기도 하고, 외식 이벤트나 여행 스케줄을 잡아 함께하자고 제안도 해본다. 좋은 강좌를 신청해서 아내나 자녀들과 함께 듣고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족들은 감동하거나 좋아하기는커녕, 시큰둥하게 어색한 반발을 하며 모처럼 좋은 마음에 부응해주지 않는다. 아내는 자기 스케줄이 우선이고, 다 자라버린 자녀들은 서먹하고 냉랭하기만 하다. 내 나름대로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일하면서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건데, 뒤늦게 가족들에게서 소외당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몹시 언짢고 서글프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오로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자기만의 일이나 사회생활을 상대적으로 미뤄두었는데 지금은 자기만의 성취가 없이 나이만 들어버린 듯 공허하다. '빈둥지 증후군'에 갱년기 증세까지 겹쳐 심신 컨디션도 좋지 않아 서글프기만 하다. 우울증이라도 올까봐 열심히 스케쥴 만들어 사람들도 만나고 문화 프로그램에도 참석한다. 결혼한 자식들 몸에 좋은 반찬 만들어 대주거나, 손주를 돌봐주는 데도 힘써보지만 몸도 예전 같지 않아 고되기만 하다. 왠지 고마움보다 타박만 더 커져가는 느낌이 들어 자주 서운하다. 어디다 속마음 얘기했다가 괜히 자식들 흉만 잡히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서 모임이나 친구 만남도 점차 줄이게 된다.
재무코칭을 하다보면, 남들보다 오히려 가까운 가족과의 불신이 더욱 깊어져서 가족이 일차적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이 접하게 된다. 제일 가깝다는 부부 관계마저 ‘황혼 이혼’이나 ‘졸혼’으로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사실 관계의 변화에는 일정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내 마음의 변화에 따라 급작스런 관계 변화를 요구하게 되면 누구나 일단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마련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기대가 크다보니 실망도 비례해서 커지는 경우도 많다. 관계의 구조조정 및 선택과 집중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을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정리하다보면 내 곁에 사람이 남아날까. 스스로 정리한 관계라지만 느닷없이 단절되어 버린 관계 속에서 속절없이 홀로 된 사람은 삶이 황량하고 서글퍼진다. 그렇다고 외로워질 까봐 무서워서 계속 스트레스 받으며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일까.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관계 맺기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참고 인내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지만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생활경제의 관점에서 좋은 관계란 주고받음의 균형이 맞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진심의 문제라기보다 시간과 돈으로 표현되는 노력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마음씀'은 '몸씀'과 '시간씀' 그리고 '돈씀'을 동반해야 비로소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걸 뭐하러 일부러 챙기냐고 하기보다, 어색해도 일단 일부러 챙겨보면 어떨까. 어디 먼데 좋은데 여행가는 계획보다 인근 나들이라도 반나절 함께 다녀와 보면 어떨까. 배우자가 밥 챙겨주고 집안 청소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고맙다고 표현해보면 어떨까. 내가 아무리 표현해도 상대방은 묵묵부답일 때가 많다, 결혼생활 동안 내가 손해 본 기분이다, 매번 나만 하고 상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불만이 많다. 그 불만은 관계에 있어 주고받음의 균형추가 기울었다는 하소연이자 억울함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한번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모르게 상대방이 뭔가 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그 부분에 대해 나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나. 고맙다고 느끼면 고맙다고 표현하고 있나. 나의 행복은 타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부적 행복'이란 말인가.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적절히 주변에 있어야 평안하다. 결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고립되지 않는단 얘기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찾는 노인이 되는 일’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나를 찾으려면 어떤 노인이어야 할까. 자신이 잘하는 일로 남에게 재능봉사하면 좋다. 뭐든 잘하는 게 그 사람을 가장 빛나게 하고 사람들이 찾게 된다. 좋은 취지로 남에게 간섭하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조언하려 하기보다 상대의 고민을 일단 들어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소득이 큰 업종 중 하나는 '듣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내 하소연을 쏟아놓고 싶다면 돈이 필요하단 얘기다.
나이 들어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분들이 참 많다. 그러나 우린 서로서로 원하든 원치않든 간에 민폐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쇠락해가는 신체 기능으로 민폐를 더 많이 끼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부터라도 민폐 끼치기가 인간관계에서 일정 정도 불가피함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고 그에 대해 보상을 해 줄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미안하다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써 보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필요하다.
꼭 멋있고 근사하고 좋은 노인이 되어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이 들수록 멋진 모습을 갖는다는 것은 물론 근사한 일이고 또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속내를 나누는 관계가 되기란 쉽지 않다. 멋져서 모여든 사람은 또한 작은 부분에도 멋대로 쉽게 실망하기도 하는 게 사람 마음의 섭리다. 게다가 근사한 사람이고자 노력하는 것과 실제 자신과의 괴리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또한 지속가능한 관계 맺음이 어렵지 않겠나. 인격자 행세하다 한 번 화내면, 매번 화내는 사람일 때보다 더 큰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게다가 멋내려면 비용이 든다. 멋 부리는 자기 투자는 진화론적으로 짝짓기 시절의 전략이다. 좋은 짝을 '미혹'하기 위한 과시적 군비 경쟁의 본능이랄까. 나이 들수록 이런 군비 경쟁은 얻는 것이 없는 소모적인 낭비일 뿐이다. 자기가 편안한 사람 스타일이라면 다른 사람의 얘기를 판단 없이 들어주고 포용해줌으로써 사람들이 머물게 된다. 명쾌한 사람 스타일이라면 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선택과 판단에서 누적된 경험치와 혜안이 빛을 발할 것이다. 욕쟁이 할머니라도 어릴 때 야단맞는 기분이 들어 좋다며 따르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가장 자연스럽게 나다운 방식으로 타인에게 어떤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단 얘기다. 그냥 자기답기만 해선 곤란하고, 시간과 돈을 들여 노력해서 자기만의 특징이 잘 묻어난 어떤 분야를 찾고 갈고 닦는 것은 중요하다.
좋은 관계는 돈만 많으면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좋은 관계를 위한 정신적 물적 노력에는 비용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단 형성된 좋은 관계는 내가 가장 취약해졌을 때 사회적 안전망처럼 가장 돈을 덜 쓰게 한다는 점이다. 덜 외로운 사람이 덜 아프고 덜 사기 당한다. 나이들수록 관계를 정리하고 돈을 아껴야하는 건지, 관계를 위해 가진 돈을 잘 써야 하는 건지는 각자 선택에 달렸다. 적당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있는 그대로 자기다운 소통을 할 줄 안다면, 실체 없는 노후 불안을 조금은 구체적으로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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