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연휴 기간, 인천 국제공항을 이용한 여객이 개항 이후 최다치 기록!’
5일 동안 이어진 이번 추석 연휴에도 이런 뉴스는 볼 수 없었다. 코로나 19로 여전히 하늘길이 막혀있어, 해외여행은 아주 오래전에 꾸었던 꿈만 같다. 하릴없이 스마트 폰 사진 앨범을 열었더니, 인공지능은 내 생각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 ‘여행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자동 생성한 ‘괌 여행 사진’을 보여준다.
재작년, 괌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부부와 두 딸, 친정어머니와 막내 이모까지 6명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구나’.
남편은 다리가 불편하신 친정어머니를 위해 넓은 비행기 좌석과 호텔 방을 예약했다. 큰 자동차를 빌리고, 맛있는 식당을 고르고, 편안한 여행 일정을 짰다. 경비지출이 높아져서 나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남편은 가족들이 만족해할 때마다 즐거워했다. 그는 ‘가장 좋은 것 주기’로 사랑을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어머니의 사랑 표현은 '당신에게 신경 쓰지 않게 하기'였다. 현지 별미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호텔 음식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밤에도 피곤하니, 너희 가족끼리 편하게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더 권하지 않은 것은 우리 가족끼리도 오붓하게 보내고 싶은 얄팍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지만, 한편 그것이 어머니의 애정 표현 방식이란 걸 알았으니까.
간호사로 정년퇴직한 막내 이모는 반대로 '적극적인 돌보기'로 사랑을 표현했다. 당신의 언니(이자 나의 친정어머니)를 대신해 여행 가방을 풀고, 식사할 때 언니 접시에 끊임없이 음식을 가져다 놓고 먹기 좋게 잘라 놓았다. 때때로 친정어머니는 ‘내가 아무것도 못 하는 양로원 노인이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모의 삶에 배인 관심과 사랑의 표현 방식이었다.
어찌 보면 가족들의 평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편은 늘 돈 버는 목적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돈을 잘 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친정어머니는 한집에 살면서 사위가 불편해할까 봐 신경 쓰고, 대개 방에서 책이나 TV를 본다. 한동네에 살면서 우리 집 반려견을 산책시키던 막내 이모는 인천으로 이사 간 지금도 마포까지 거의 매일 온다.
나 역시 ‘가족의 평화를 위해 관계 살피기’는 집에서나 여행에서나 똑같았다. 여행 내내 남편이 처가 어른들이 부담스럽지 않을지 살폈다. 친정어머니와 이모가 우리 때문에 서운하지는 않을지, 연년생인 딸 둘이 꼭 붙어 다니다가도 티격태격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신경 썼다. 조금이라도 삐걱거리는 낌새가 보이면 어떻게든 윤활유 역할을 해서 잘 돌아가도록 했다. 상대방이 칭찬했다고 말을 전하거나, 다독이거나 화를 풀어주면서.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는 “여행이란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여행은 가족이란 익숙한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한 발짝 떨어져 ‘낯설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 가족이 각자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서툴러도, 그 마음만은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사랑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무심히 지나칠 때도 많아 서운함이 쌓이기도 한다. 때로는 관심과 간섭이 지나쳐 부담될 때도 있다. 어찌 가족뿐 일까. 친구나 사회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테다. 어쩌면 사람마다 각자 마음을 표현하는 악기가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활로 긋는 현악기, 입으로 부는 관악기, 두드리는 타악기처럼 마음의 소리를 내는 방법도 모두 다를 수 있다. 때때로 어떤 한 소리가 튀기도 하고 불협화음을 낸다. 하지만 눈짓 교환만으로도 호흡이 맞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처럼 우리는 또 서로의 마음을 눈치채고 함께 사는 삶을 조화롭게 연주하고 있다.
앞으로 나부터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해야겠다.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할 때, 오해 없이 받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니까. 반대로 누구든 내게 사랑을 내보일 때는 예민하게 알아채고, 적극적으로 화답하리라. 여행 사진 속 가족들의 얼굴이 살짝 더 사랑스럽게 보였다.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