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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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이나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열망과 향수를 잠재워 줄 영원한 고국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여행자(homo viator)이다.” - 까를로 마짜 「순례영성」
건강하고 활기찬 삶의 하나로 코로나 시대에도 걷기의 열풍은 여전하다. 가장 원시적인 이동 수단에서 건강, 마케팅, 최근에는 힐링과 구도 영성의 차원에서 걷기가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속성의 하나이기도 하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이는 “길 가는 사람” 혹은 “명령전달자”, “사자(使者)”를 뜻하는 “Viator”에서 유래한 것으로 걷는 인간을 뜻하는 또 하나의 인류 속성이다. 네 발을 땅에 딛고 땅속을 킁킁거리는 유인원이나 다른 동물들에 비해, 두 발을 땅에 내딛는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들은 훨씬 다양한 볼거리와 여러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자유로워진 손은 새로운 도구를 발명할 수 있게 했고, 그에 따라 인간의 삶은 전례 없이 발전하게 되었다.
훨씬 다양하고 촘촘하게 작동하는 두뇌 덕분에 과학은 발전하였고 각종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로 인해 인간은 형태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걸어야 하는 자”와 “걷지 않아도 되는 자”이다.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걷기”는 가장 원시적이고 때로는 궁색함의 표상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도되는, 이른바 유한계급이 걷기를 택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여유로운 낭만 가객이거나 혹은 자동차 무게만큼 무거운 삶의 고뇌와 씨름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먼 곳으로 순례를 떠나 이상스럽고 특이한 이야기, 에로틱한 모험담, 위험했던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득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행자를 기억해 보라. 걷기가 태만하게 도시를 누비고 관조하면서 군중 속에서 익명으로 존재하는 플라뇌르(flaneur)였다면 사색의 공유방식, 나아가 순례의 여정으로 확장하는 데는 철학적 몽상가(philosopher)들과 구도자(seeker of truth)들의 공헌이 컸다. 루소를 비롯한 칸트, 니체, 워즈워스 등은 더는 사교계와 비평가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종일 걸으면서 문화와 교육, 예술 속의 자연인 “호모 비아토르”가 되려고 애썼다. 오늘날 호모 비아토르는 더 많은 시간적 여유로 더 많은 사색을 할 수 있음에도 실상은 정반대다. 그래서 걷기는 발걸음으로 하는 문명의 반항일지도 모른다.
▲ 스위스 출신의 현대 미술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청동 조각상 “걷는 사람 1”(L’Homme Qui Marche I) [출처: '서울신문]
순전히 걷기 차원에서 서울만큼 좋은 입지적 조건을 가진 곳도 드물다. 배산임수에다 녹지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며, 도심 한복판에 강폭이 넓은 한강을 본류로 하여 중랑천, 청계천, 홍제천, 양재천, 정릉천 등의 강줄기와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 산줄기와 연결되는 길들은 마치 도심의 허파와 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교통의 상징이 되었던 청계고가와 서울역고가도 생태환경의 걷기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도 걷지 않는 이유가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시골에서는 다들 적막하지만 외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도시는 모두 시끌벅적하지만 다들 외롭고 쓸쓸하다. 개별적 정체성을 갖는 도시 공간이 걷기를 통해 그 외로움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도시는 주거 공간을 넘어 품격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될 것이다.
▲ 걷기 공원으로의 탈바꿈
뇌 건강 전문가들은 나이 들면 가장 먼저 쇠퇴하는 영역은 WMN (Walking(걷기), Memory(기억), Network(사회활동 및 교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 걷기만 잘해도 “잠든 뇌”를 깨울 수 있고 밀실에서 광장으로의 출구 통로가 될 수 있다. 또한 Solvitur ambulando! 라틴어를 영어로 풀이하자면 It is solved by walking! 즉 걸으면 골치 아픈 문제들도 풀린다는 말이다. 50+ 성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움직일 수 있는 몸”, 걷기다.
지난 온 날들을 세어보아라. 어디에 있었던가? 인생의 여정을 걸어왔다. 남은 날들은 또한 세어보아라.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인생의 어느 길을 또한 걸을 것이다. 하늘의 뭇별같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과 수억의 시간 속의 일점에서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잘 걸어가면 된다. 때로는 우아하게 가끔은 총총대며! 어지러운 흔적도 말고 눈에 띄는 족적도 말고 그냥 사부작사부작 걸어갈 일이다.
▲ 바다의 모래알처럼 수억의 시간 속의 일점
그라디팀 페로키테르(Graditim Ferociter)! 편한 신발에 가벼운 행장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담대하게(Step by Step, Ferociously!)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