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레퍼토리 ‘체홉과 이오네스코의 산책’
연극이나 문학을 조금만 공부해도 쉽게 알 수 있는 이름,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1904)와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1909∼1994). 이들은 사실주의극과 부조리극의 대가이다.
생몰연도를 보아 일치하는 부분이 없는데 산책을 하다니. 연극 제목이 희한하다. 체호프와 이오네스코가 배역으로 등장하는 창작극? 각자 다른 시대를 살다 간 작가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연극의 제목이 궁금해 공연장 문을 두드렸다.
물과 기름 같은 연극, 해설로 만나다
한국 연극의 메카 대학로. 매일 밤 150여 개의 극장에서는 뮤지컬을 비롯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그 화려한 틈새에서 연극 ‘체홉과 이오네스코의 산책’이 공연됐다. 체호프와 이오네스코라니. 고리타분한 교과서 속 인물을 누가 소환했을까. 원로 배우 권성덕이 고문으로 있는 동양레퍼토리다. 신구세대 연극인이 조화를 이룬 극단으로 노경식 작가의 ‘반민특위’와 ‘두 영웅’ 등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는 묵직한 연극으로 관객을 만나왔다.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해설을 통해 고전 연극을 만나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무대를 준비했다. 체호프의 각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해설자가 무대에 나와 이야기를 해주는 방식이다. ‘청혼’과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를 중견 연극인의 해설을 곁들여 무대에 올렸다. 고전의 딱딱함과 무게를 살짝 걷어내고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연극으로 말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이 연극을 관객들은 보고 웃어댄다. 관객의 마음으로 풀어준 해설이 친밀하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주었다.
‘청혼’, 고집불통 노처녀 시집은 갈 수 있을까?
안톤 체호프의 연극은 매년 크고 작은 무대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연극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의 4대 장막인 ‘갈매기’나 ‘벚꽃동산’, ‘세자매’와 ‘바냐아저씨’는 풍월로라도 듣지 않았을까? 러시아 사실주의 연극을 대표하는 안톤 체호프. 그의 직업은 사실 의사였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탓에 의과대학 시절 문학잡지에 단편과 수필을 기고해 돈을 벌어 가족들을 보살폈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신인작가로 이미 이름을 알렸다. 러시아의 파란만장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장막을 쓰기 전 체호프는 단편 희극을 쓰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청혼’(1889)이다.
‘청혼’은 지병이 있는 데다 뚱뚱하고 소심하기까지 한 젊은 지주 로모프가 이웃의 지주 추푸코프의 노처녀 딸인 나탈리아에게 청혼을 하러 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추푸코프는 로모프가 혹시나 돈을 꾸러 온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경계하지만 딸에게 청혼을 하러 왔다는 말에 기뻐한다. 나탈리아 또한 결혼할 생각에 기뻐서 로모프를 만나지만 토지사유권 주장을 하면서 언쟁을 한다. 이 와중에 지병이 있던 로모프는 쓰러졌다 극적으로 되살아나지만 또 다른 언쟁에 부딪히며 해피엔딩인지 아닌지 모를 결말로 끝을 맺는다.
‘청혼’은 동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젊은 배우들과 중견 연극배우의 조합이 극의 재미를 끌어올려줬다. 특히 25세 노처녀를 연기한 60대 연기자 장연익의 소녀 같은 연기가 압권. 영화나 드라마가 해결할 수 없는 연극 최고의 판타지는 ‘배역’은 있어도 배우 나이의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말대잔치 흠뻑 즐겨라 ‘대머리 여가수’
안톤 체호프의 연극이 사실적인 상황과 이야기 전개로 이어졌다면, 뒤이어 공연된 이오네스코의 초기작 ‘대머리 여가수’(1950)는 배우의 등장부터 파격적이다. 남녀 배역 모두 남자 배우가 연기했다. 여자 배역의 남자 배우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붙이고 진하게 화장을 했다. 남자 배역은 수염 없이 깔끔하게 등장해 소극적인 자세로 사건에 개입한다. ‘대머리 여가수
여가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 전개와 인물 구성, 역할 파괴로 왜 이런 연극을 만들었나 하는 의문을 갖도록 한다. ‘대머리 여가수’를 번역한 순천향대학교의 오세곤 교수는 극의 이해를 도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오네스코가 처음 극작을 하면서 집착했던 문제는 인간 언어의 부조리함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언어를 합리적이라 믿고 문화의 축적과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지만 실제는 달랐다. 대단히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해 원초적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오해의 연속일 뿐이며, 거기서 비롯된 언어의 횡포가 인간들을 핍박하고 있다.”
부조리극의 태동과 의미를 알면 쉽게 이해된다. 부조리극은 1차,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공연된 극의 한 형태다. 다시 말하면 전쟁을 겪은 이들이 표출해낸 예술이다. 전쟁 이후 세상은 부조리 그 자체. 극 속에서도 이야기는 물처럼 흐르지 않고 아무 말이 튀어나와도 이해가 강요된다. 논리의 허무 속에서 부조리극이라는 결과물을 얻어낸 것. 부조리극의 대표작인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또한 여전히 매력적인 희곡으로 손꼽히며 다양한 방식으로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제공 동양레퍼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