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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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MBS TV에서 20회에 걸쳐 방영한 드라마 킬미, 힐미를 재미있게 보았다. 다중인격장애로 차도현, 신세기, 페리박, 나나, 얀요셉, 얀요나, 의문의 인격 X의 일곱 개 인격을 가진 재벌 3세와 그의 비밀주치의가 된 1년 차 레지던트 여의사와의 로맨스를 그린 힐링 드라마이다.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7개의 인격이 독특하고 매력을 지녔다. 재벌 3세 차도현과 레지던트 오리진이 잔혹했던 어린 시절의 아픈 트라우마를 이겨내면서 평범한 연인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 킬미, 힐미 드라마 소개 포스터
조 해리의 창에 자신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미지의 창이 있다. 자신을 완전히 아는 사람은 없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지닌 잠재력의 5%도 발휘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다중인격이 생기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킬미, 힐미의 주인공 차도현은 어린 시절 받은 트라우마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7개의 인격이 생겼다고 한다. 자기 잠재력을 찾는 가운데 다른 자기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조하리의 창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낮과 밤에 전혀 다른 인물로 바뀌는 이야기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빌리 밀리건, 24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가 소개되었다. 1977년 자기 몸에 24개의 인격이 산다고 주장해 무죄 판결받은 연쇄 강간범 「빌리 밀리건(본명 윌리엄 빌리 스탠리 밀리건)」 이야기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빌리의 모습과 이를 이유로 면죄부를 줬던 재판부의 판결은 당시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다중인격으로 인해 사회에 피해를 준 사례이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빌리 밀리건, 24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2020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10대 소비 키워드로 「멀티 페르소나(다중 자아)」를 선정했다. 요즘 10대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학교와 가정 등 다양한 상황에 맞는 자신만의「부캐」를 설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여러 가면(페르소나)처럼 바꿔 쓴다.최근 10대 청소년 사이에는「부캐(부캐릭터) 전성시대」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부캐는 온라인 게임에서「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라는 의미이다. 연예인들이 부캐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국민 MC 유재석은 가수 유산슬·유드래곤·유야호, 개그우먼 김신영은 트로트 가수 김다비, 박나래는 조지나, 추대엽은 카타추로 변신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평소의 자기 모습이 아닌 여러 개의 캐릭터로 변화한다. 다중 자아를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사례이다.
현실에서 부캐를 만들기 힘들면 메타버스에서 부캐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의 세계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이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을 뜻하는 메타와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가 합쳐진 말로 현실과 똑같이 만들어진 3차원의 가상 세계를 가리킨다.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루어진다. 자기를 대변할 아바타가 생산활동을 영위한다. 아바타를 사용하면 인종, 외모와 같은 현실적인 장벽이 없어 사람들과 더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자기 계발과 경제활동의 수단이 된다. 이를 통해 부업을 하거나 제2, 제3의 직업을 모색한다. 메타버스에 탑승한 부캐를 광고모델로 이용하기도 한다.
물, 불, 칼이 좋은 용도와 나쁜 용도 사용되는 것처럼 다중 자아를 좋은 방향이나 나쁜 방향으로 모두 활용할 수 있다. 부캐는 일반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경우라고 여겨진다. 몇 개의 부캐를 만들 것인가는 자신에 맞게 정하면 될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대접받는 시대에는 한 가지 캐릭터만 잘하면 충분했기 때문에 부캐라는 것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융합, 통섭의 시대로 변화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부캐 만들기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어떤 부캐를 만들지는 자유다. 존 스튜어트 밀은『자유론』에서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거나 방해하지 않을 한도까지는 지켜주어야 한다고 했다. 개인이 자유를 최대한 허용함으로써 개인의 다양성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부캐 만들기도 자유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허용되어야 할 것 같다. 부캐 만들기를 자기실현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