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 <자기 앞의 生>, 문학동네, 용경식 옮김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生(생)>에 나오는 말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열네 살 소년 모모. 부모 대신 로자 아줌마의 손에 자란 모모는 아줌마가 죽자 그 주검 옆에서 여러 날을 보내다 발견되고, 다른 아줌마의 집에서 새로운 사랑 속으로 들어가며 위와 같이 말합니다. 에밀 아자르(1914-1980)는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프랑스의 공쿠르 상을 두 개의 이름으로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입니다. 다른 이름은 로맹 가리. 본명은 로망 카시유. <자기 앞의 生>에는 생의 진실을 관통하는 수많은 문장이 있습니다.

 

“노인들은 겉으로는 보잘 것 없이 초라해 보여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자연은 노인들을 공격한다. 자연은 야비한 악당이라서 그들을 야금야금 파먹어간다.”

-- 위의 책

 

 

햇살과 대지가 달아오르는 여름은 뜨거운 사랑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사랑은 젊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모모의 말처럼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요. 젊은이들과 오십 너머의 사랑법은 다릅니다. 젊은이들의 사랑이 칠팔월 불타는 태양처럼 뜨겁고 한여름 피서지처럼 소란하다면, 오십 너머의 사랑은 가을 햇살이 낙엽을 간질이는 오솔길처럼 조용합니다. 젊은이의 사랑이 플래카드나 깃발 같다면 오십 너머의 사랑은 부치지 못하는 편지 같다고 할까요?

 

다시 그대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쓰는 행위는 나를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고 부치지 않음은 그대를 평안케 함이다. 
시간이 큰 강으로 흐른 후에도 그대는 여전히 내 기도의 주인으로 남아 
내 불면을 지배하는 변치 않는 꿈이니 나의 삶이 어찌 그대를 잊고 편해지겠는가.

 

다시 겨울이 월요일처럼 왔으나 그대를 못 보고 지난 주말 같은 한 해가 
마냥 계속될 것만 같다.
그래, 삶은 평안하며 날씨는 견딜 만한지.
무엇보다 그곳에도 가끔은 세상의 눈 벗어던지고 열중할 사랑이 있는지.

 

언제나, 그대여, 대답되지 않는 삶의 질문들로 목이 마를 때에는 오라!
그대를 위한 문은 여전히 열어둔 채 또 불면의 침낭에 나를 눕히니 
밤낮으로 내 부엌 한 켠에서 끓고 있는 찻물과 
그대를 위해 갈아 꽂는 가을꽃들이 아주 열반하기 전에 오라, 그대여.
그대의 이름을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다.     

---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 필자 저

 

사람들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좋아합니다. 매사에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랑의 으뜸은 짝사랑, 다만 염원하며 언젠가 찾아올 그를 위해 찻물을 끓이는 마음입니다. 그 사랑은 때로는 한 사람에게로 또 때로는 더 큰 대상에게로 흐릅니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한 시인 이육사(1904-1944)의 ‘靑葡萄(청포도)’에는 그 큰 사랑이 보입니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시인이 1904년에 태어나지 않고 한 백년 후에 태어났다면 평생 투쟁하며 옥고를 치르다 마흔 살에 이국의 감옥에서 숨지는 대신 연애나 아름다운 서정시에 탐닉했을지도 모릅니다. 시 ‘나의 뮤-즈’에 쓴 것처럼, ‘사랑커든 수염이 너무 주체스럽다’고 투덜대고 ‘백합꽃 밭에 옷깃이 젖도록’ 자기도 했겠지요. 열일곱에 결혼한 아내 안일양과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딸 하나를 얻었으니, 시인이 감옥 안팎에서 쓰고 또 썼으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평생 깨달음을 향해 정진했던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도 진리만큼 사랑을 갈구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시 ‘그대를 사랑하기에’엔 헤세식 사랑이 뜨겁습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나는 밤에,
그다지 설레며 그대에게 가서 속삭였습니다.
그대가 나를 못 잊도록 
그대 마음을 따왔습니다.

 

좋거나 싫거나 그대 마음은
나와 함께 있으니 오로지 내 것입니다.
설레고 타오르는 내 사랑에서
그 어느 천사도 그대를 구하지 못합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민음사, 정경석 옮김

 

이런 정열의 소유자이니 쉰 넷에 새 사랑을 만나 세 번째 결혼을 했겠지요.

헤세처럼은 아니어도, 살아있는 한 사랑해야겠습니다.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