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시인 홍일선 님이 1970년대 대표 작가 송영(1940~2016) 선생님께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봄… 봄이라고 가만히 써봅니다.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밭 넘어 밭둑에 탐스럽게 피어 있는 흰 조팝나무꽃을 바라보며 송영 꽃… 송영 선생님이라고 가만히 이름 불러보는 밤입니다.
송영 선생님
한밤중이었는데 어디선가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것 같아 설핏 꿈결인 듯 몽유인 듯 일어나야 했습니다. 어제는 종일 텃밭에 나가 아내와 함께 감자를 심었기에 초저녁잠이 깊었으련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많이 간곡했던 것 같았습니다.
강물이 무엇인가 다급하여 상수리나무들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고 지금 한창 꽃봉오리가 절정인 조팝나무가 헤어져야 할 벗들에게 들려주는 속삭임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아는 이름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그 목소리의 진원지는 러시아 변방 가브리노 산골짜기에서 들려온 아득한 울림이었습니다. 아, 니나…
선생님이 러시아 순례에서 만난 유일한 지음(知音) 니나 그리고르브나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한 번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니나가 내 눈 속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온화한 얼굴이 다가왔고 밤하늘엔 북두칠성 국자 형상이 오롯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니나, 니나의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날이나 만년이나 한결같이 단 한 사람 스승이 톨스토이였지요. 순례길에서 벗을 만난다는 것은 생의 도반을 만났다는 것 아니겠는지요. 톨스토이가 평생을 찾아 헤맸던 성자의 표상을 선생님은 구릿빛 얼굴을 한 온유한 농부 니나 그리고르브나에게서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초면의 니나는 선생님이 원하는 만큼의 땅을 선뜻 주겠다고 했다지요.
당대 톨스토이는 ‘사람에겐 몇 평의 땅이 필요한가’라고 수없이 물었고 그러나 러시아 제국은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130년 뒤 오늘도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손에 못이 박힌 자는 식탁에 앉을 수 있지만 못이 박히지 않은 자는 식탁에 앉을 수 없다’는 바보 이반의 말을 그날 니나의 모습에서 빙의로 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바보 이반은 성자였지요. 이반은 소위 ‘국가는 전쟁 없이 돈 없이 학문 없이 사고하는 것 없이’ 스스로 자라는 나무들을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반은 바보였고 늘 무시당했고 글을 몰랐기에 이반은 ‘신(神) 가까이’
늘 있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선생님께서 1967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했으니 원고지를 펜으로 한 자 한 자 메운 일이야말로 ‘손에 못이 박힌’ 고단한 농부의 삶이었습니다. 온몸을 흙의 마음으로 물들인 니나가 바이칼에서도 더 아득한 남쪽 코리아에서 온 소설가의 진의를 대번에 알아본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원하는 만큼의 땅’을 무상으로 주겠다니…
니나는 선생님의 지음이 분명합니다.
조팝나무꽃 그늘에 앉아 있다가 한 권의 책을 받았지요.
작가의 말이 생략된 작품집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였습니다. 저자의 부재 속에서 나온 책, 쓰라린 책,심지가 없는데도 불타오르는 책…
활짝 피어난 꽃들이 싫었습니다.
이 땅의 꽃들은 크나큰 상심 속에서만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숨죽여 읽어야 했습니다.
송영 꽃 송영 숲의 문장들.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존재의 시간을 넘나드는 꽃이었습니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 핀 꽃이었습니다. 나는 이 꽃 이름을 감히 송영 꽃이라고 명명합니다. 작가는 세계를 수없이 떠돌며 완고한 중심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의로 일탈함으로써 비로소 한 세계를 꿈꾼다지요. 선생님, 지금 어디를 순례하고 계신지요. 그래 니나는 만나셨는지요. 니나에게 톨스토이의 온화한 미소를 이심전심으로 전해드렸는지요.
송영 선생님. 초월(草月)역 기억하시는지요. 여주까지 가는 전철 개통을 우리는 많이 기다렸지요. 그토록 기다리던 전철은 선생님이 분당 어느 병상에 누워 계실 때 개통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날 병상에서 수화를 나누듯 침묵의 소리로 세계를 묵상했지요. 선생님은 초월역 벤치가 잘 놓여 있더냐고 물었지요. 초월역 앞에는 무슨 꽃이 피어 있느냐고 물었지요.
선생님은 또 말씀하셨지요. 병원에서 곧 나갈 테니 초월의 그 꽃들 함께 보자고, 찬찬히 느리게 보자고….
선생님은 또 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음에 초월에서 만날 때는 완성본이 아니더라도 작품 한 편씩 갖고 나와야 한다고 말입니다.
홍 시인 생업이 농사이니 아무래도 내가 초월역에 먼저 나와 앞산을 보게 될 것 같다고 혼잣말처럼 하셨는데
선생님… 지금 그곳도 꽃들이 한창인가요. 머나먼 북방 툴스카야역 노천카페 의자에 홀로 앉아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 6번’을 듣고 계신가요?
음악의 궁극을, 첼로의 선율을 문학보다도 더 편애했던 소설가, 세속의 온갖 억압과 불의를 음악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었던 예술인.
송영 선생님
언제인가 금강산 가는 길목에서 ‘저 경계선 너머에는
실재하지만 현실에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가상의 반쪽짜리 조국이 있다’며 우리의 반쪽을 오래오래 응시했다고,
그리하여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고 하셨지요.
선생님께선 어느 날 아주 긴 전화로 침묵의 울음을 아냐고 저에게 물은 적 있습니다. 저는 대답하지 못했지요. 살아 있으되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들의 아픔, 그 침묵의 공간을 침묵으로 뚫고 나오는 것이 문학이라고 선생님은 나직이 말씀하신 적 있지요.
어제는 선생님 등단작 ‘투계’를 읽었습니다. “나는 램프의 심지를 아주 커다랗게 돋워버렸다. 갑자기 부풀어 오른 불빛이 눈부시도록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밀폐 고립된 상황 속에서 램프 심지를 올리는 일만이 억압과 소외의 시간을 유예하는 유일한 길임을 터득했던 소년 송영을 만나는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남도 염산이라는 궁핍한 마을, 외딴집에서 지속되는 투계(鬪鷄)는 세계가 강자와 약자, 승자와 패자로 분류됨으로써 한 세계가 유지됨을 암시하고 있지요. 비루하고 암울한 세계가 마치 신세계처럼 느릿느릿 펼쳐지고 있지요. 한 작가가 예술적 상상력에서가 아니라 현실의 비극적 상상력의 소산으로 문학예술이 태어나는 시대, 그 시대는 분명 유쾌한 역사는 아닙니다. 암울한 역사 복판에 송영 문학이 아프게
오랜 시간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부재하는 동안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촛불이 이윽한 광장에서 아드님 송시원 군을 만나 함께 어둠을 밝힌 시간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귀한 일은 아기 지안(知岸)이 태어난 것입니다. 선생님은 작가 송영 말고도 지안이 할아버지라는 또 다른 이름이 생겼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좋은 일이 많은데 초월역에서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것인지요. 봄날이 가기 전에 못난 시 한 편 품고 초월역에 나가 기다리겠습니다.
송영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글 홍일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