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마니아로도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뛸 당시의 느낌을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고 자신의 책에서 썼다. 울트라 마라톤(이하 울트라)을 달릴 때의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그게 뭐가 됐든 깨닫는 게 있다는 점이다. 울트라를 뛰는 시간만큼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 들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00km 뛸 동안 안 먹는다고?
8월 한여름, 네 번째 울트라 대회 참가를 앞두고 있다. 울트라는 풀코스(42.195km)보다 먼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울트라 대회라고 하면 100km를 말한다. 100km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온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설명하곤 한다. 서울시청에서 천안시청까지의 거리가 98km 쯤 된다고.
울트라 대회는 100km를 비롯해 50km인 하프울트라,108km(불교), 성지순례 222km(가톨릭), 308km(국토횡단), 622km(국토종단) 등 다양하다. 미국에서는 무려 4700㎞에 달하는 초울트라 마라톤도 가끔 열린다.
울트라마라톤 출발 지점.
자타공인 마라톤 마니아지만 울트라에 도전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10면을 넘어서야 처음으로 울트라 대회에 참가했다. 2014년 강화도 갑비고차 대회가 첫 도전이었고 이후 부산, 강화도 등을 매년 뛰었다. 몇 번의 완주 경험을 통해 울트라가 풀코스(42.195km)보다 쉽지는 않지만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나의 체력을 감안해 1년에 한 번씩 뛰는 것으로 정해두고 있다.
달리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들조차도 울트라에 대해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반응이 많다. 나의 사위가 자신의 친구에게 “장모님이 100km를 완주했대~”라고 했더니 “뻥치지 마, 사람이 100km를 뛰면 죽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전해줬다.
물론 100km를 쉬지 않고 뛰면 죽을지도 모른다. 울트라를 완주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100km를 아무 것도 안 먹고 뛰는지 ▲100km를 쉬지 않고 뛰는지 ▲이렇게 더운 한 여름에 뛰는지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한다.
우선 첫 번째 궁금증에 대해 대답하자면 당연히 먹는다. 전혀 아무 것도 먹지 않고서는 울트라를 완주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달리기를 할 경우 1km당 소비되는 에너지는 50칼로리가 넘는다고 한다. 최소한 5000칼로리 이상이 필요한 셈이다. 성인 한 사람이 하루 필요한 에너지는 3000칼로리 정도다.
울트라 먹거리는 사탕, 연양갱, 파워젤 등 부피가 작으면서도 당분이 많고 고칼로리를 내는 간식이 대부분이다. 생수도 필수다. 자신이 먹을 것을 배낭에 메고 뛰어야 하지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최 측이 먹을거리를 몇 개의 체크포인트(CP라고 부른다)에서 지원하는 대회가 더 많다.
‘다시는 뛰지 않는다’고 매년 다짐하지만
울트라마라톤 대회의 체크포인트. 간단한 먹거리를 먹고 쉬기도 한다.
먹을 때는 무조건 쉰다. 일부 달림이들은 쪼그리고 앉거나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50km를 넘어서면 군데군데 쓰러져(?) 있는 달림이들을 만날 수 있다. 여름이라 가능한 일이다. 한 여름에도 땀에 젖은 상태에서 쉬고 있으면 서늘해진다. 땀이 난 상태에서 자칫 잠들었다가는 탈이 나기 십상이다. 실제로 사막마라톤에서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 바람에 사망사고가 일어난 적도 있다. 울트라 대회가 초여름부터 늦가을에 주로 열리는 이유다.
강화 울트라의 출발 시간은 토요일 오후 5시. 햇볕은 물론 땅의 열기도 그대로 남아 있는 시간이다. 울트라를 완주하는 알파이자 오메가의 비결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오르막을 만나면 무조건 걷는다’는 것이다. “그 까짓 게 뭐가 어렵다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서는 이 같은 결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초반에는 힘이 남아돌아가기 때문에 오르막인줄 알면서도 저절로 뛰게 되는 것이다.
풀코스는 참을 인(忍)자 3개가 보태져야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초반에 마음껏 달리고 싶을 때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세 번을 참으면 후반에 달리기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울트라는 참을 인자를 최소한 10개를 그려야 하는 것 같다. 초반에 언덕에서 달리고 싶은 마음을 10번은 참아야 한다.
지난해 강화에서도 초반에 언덕에서 달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언덕만 보이면 걷고, 내리막길에서는 뛰고를 되풀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후반 60km를 넘어서면 오히려 언덕이 언제쯤 나올지를 기다리게 된다. 언덕에서는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처럼 평범한(?) 울트라 달림이의 경우다. 상위권 입상자들은 거의 전 구간을 뛴다.
강화 울트라에서는 50km를 넘어서면 가로등이 거의 없어 랜턴이 없이는 달리지 못할 정도로 주위가 깜깜해진다. 이 때 쯤 되면 기계적으로 왼발과 오른발을 교대로 움직이게 된다. 시간도 잊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잊고, 심지어 나 자신도 잊어버린 채 무념무상으로 발을 옮긴다.
발바닥이 아픈 것보다 더 큰 고통은 바로 잠이다. 자면서 행군했다는 ‘아재’들의 무용담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차라리 잠깐 쪽잠을 자는 게 나을 듯싶지만 그대로 잠들 것만 같아서 그럴 수도 없다.
80km 이후를 지나서도 높은 오르막과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이 때쯤이면 단순히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를 지난다. 울트라를 다시는 안 뛰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할 뿐이다.
드디어 102km(갑비고차 대회는 100km가 아니라 102km)의 마지막 지점인 강화 공설운동장으로 들어선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고 해야겠지만 의외로 담담하다. 기록은 14시간 38분 완주. 완주증이라야 종이 한 장이고, 메달도 풀코스 메달과 비슷하지만 어떤 메달보다 값지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좀 더 ‘큰’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올해도 또 다시 강화를 뛴다. 다시는 낳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서도 또 다시 아기를 낳는 엄마처럼 매년 울트라에 참가한다. 엄마가 아기를 낳은 후에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울트라 완주 후에는 뿌듯함이 고통을 상쇄하는 경험을 매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