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의 목록 버킷리스트.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애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도 어떻게 이뤄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 이러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주제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과 사례자의 조언을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앞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버킷리스트 서베이에서 1위를 차지한 ’재능기부‘에 대해 알아봤다.

재능기부, 그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재능기부협회 최세규 이사장은 “개인이나 기업, 단체 등이 가진 재능을 소외된 곳에 나누어주는 것을 ‘재능기부’라 할 수 있다”며 “한시적인 거창한 후원보다는 목소리 기부, 헌혈, 어르신 안마 등 소박한 나눔과 실천이라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소소한 능력만으로도 실천하려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부담 없이 이룰 있는 목표라는 것. 최 이사장은 “새롭게 특별한 재능을 만드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익힌 기술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재능을 탐색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눔을 향한 진정한 마음 가짐”이라 강조한다.

 

재능 분야 탐색, 소소해도 괜찮다

‘어떤 분야에 재능기부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자기 능력을 증명하거나 전문성을 올리기 위해 자격증 취득, 학위 수여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이들이 있다. 그 열정은 좋지만,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기에 자칫 재능기부의 시작이 차일피일 미뤄지기 일쑤다. 도움 주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잘하려고 무언가를 채우는 것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부터 나누며 노하우를 다져가는 좋다. 최세규 이사장은 “내가 가장 잘하는 것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재능을 나누려는 마음가짐이 첫째”라며 “자신이 가진 재능을 특정하여 찾기보다는, 사소한 것도 재능 있다고 여기길 바란다”고 언했다.

 

재능기부처 찾기, 발품을 팔자

대체로 재능기부를 결심한 이라면 어떤 재능을 나눌지에 대해 미리 정해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디에 가서 문을 두드리느냐는 것. 재능기부협회의 경우 온라인과 전화 접수를 통해 재능기부 공급자와 수급자를 연결해준다. 그 외에도 몇몇 웹사이트나 지역 평생교육원 홈페이지 등에서 이러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웹서핑을 통해 재능기부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막상 인터넷 검색창에 ‘재능기부’라 치고 관련 키워드를 포함한 사이트에 들어가면 대부분 아르바이트 또는 프리랜서 일자리 알선 서비스가 주를 이룬다. 순수 봉사 차원의 활동을 기대한다면 단계에서 막막함을 느끼게 것이다. 스마트폰 역시 마찬가지다.

재능기부 경험자들은 나누려는 재능을 발휘할 있는 곳을 일상 범위 안에서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 효과적이라 말한다. 아파트 주민 알림판이나 교회 게시판 등에 스스로 재능기부 활동을 홍보하거나 어린이집, 노인정, 요양원, 돌봄센터 등 도움을 주고 싶은 곳에 직접 방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엔 가까운 곳에서 소소하게 시작하지만, 입소문을 타거나 지인의 추천 등을 통해 활동 영역과 분야를 넓힐 수 있다.

 

자격증보다 중요한 건 소통 능력

2014년부터 ‘5070청춘드림팀’ 시니어 재능기부단을 운영하는 오산시 노인장애과의 라애신 주무관은 “자격증만 믿고 재능기부를 시작했다가 난관에 부딪히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재능기부는 대체로 누군가에게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수업 형태로 이뤄지는 데, 강의 경험이 부족한 이들의 경우 좋은 마음으로 왔다가 되레 자신감만 떨어져 돌아간다는 것. 내가 많이 아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작은 것이라도 듣는 이가 이해할 있도록 나름의 강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 주무 관은 “초보 재능기부자들은 강의 스킬로 인한 애로사항이 접수가 잦다. 그럴 베테랑 재능기부자를 매치해 강의를 비법을 공유하게 한다”며 “강의 경험이 없다면 다양한 수업을 참관하고 연구해보면 도움이 된다”고 제안한다. 아울러 재능기부 수급자의 대부분이 노인, 아이, 또는 소외된 이웃이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하려는 배려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죽공예 재능기부 전도사 윤난희 씨

결혼 후 30대부터 문화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서 가죽공예 강의를 윤난희(63)씨. 지난해부터 오산시 5070청춘드림팀 재능기부단에 참여 하며 나눔의 즐거움에 흠뻑 취해 있다. 이전에는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죽공예를 가르쳤는데, 최근에는 어르신들을 위해 재능을 나누는 그녀다.

“어르신들께 가죽공예는 생소한 분야잖아요.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와는 수업 매뉴얼을 바꾸는 신경을 많이 썼어요.”

재능기부 대상에 따라 강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씨. 수강생의 세대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접근했을 때는 호응을 얻기 어렵다고 조언 한다. 이처럼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재능기부는 나눔이 아닌 자기 능력 뽐내 기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내가 강사야, 선생이야’ 이런 내세우기보단 최대한 그분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다가가야 해요. 제 경우에는 상담 봉사도 종종 하는데, 아이들에게 가죽공예를 가르치면서 이런저런 질문도 하면서 아이의 생각을 끄집어내려고 해요. 내가 가죽 수업 하러 갔다고 그것만 하고 오는 아니라, 내가 가진 다른 재능이 있다면 나눠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씨는 나눔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을 알기에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다 말한다. 그러나 가지 풀어야 숙제가 남아 있다.

“여러 기관에서 재능기부 요청이 와요. 수업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결국 재료비 때문에 진행을 못 하는 경우가 많죠. 기관마다 예산이 정해져 있는데, 가죽공예가 다른 수업에 비해 저렴한 편은 아니니까요. 기부자도, 기관도, 수강생도 재료비에 부담 없이 가죽을 즐길 방법을 연구하는 중입니다.”

 

 

 

서예 재능기부 17년 차 서병규 씨

오산시에서 재능기부하면 빼놓을 없는 나눔 베테랑이 있다. 농촌진흥청 공무원 은퇴 후 17년째 오산시에서 서예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정산(靜山) 서병규 선생이다. 동네를 거닐다 보면 아이, 주부 없이 ‘선생님’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다양한 세대와 만나고 소통할 있어 노후가 즐겁다는 씨다. 알고 보니 그는 ‘서예’를 전공하거나,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선비였던 아버지께 어깨너머로 쓰는 법을 익혔고, 그때부터 지필묵을 달고 지냈을 만큼 오랜 취미로 삼았던 것이 서예였다.

“서예 재능기부를 하려고 전문 자격증 이나 학위를 준비해본 적은 없어요. 스스로 터득한 재능을 나눠주고 있는 이죠. 내가 하는 일을 요즘엔 재능기부라 칭하지만, 맨 처음 서예 공부방을 열었을 때는 그런 말도 없었어요. 사실 나는 기부니 봉사니 그런 말이 부끄러워요. 수업을 하다 보면 결코 것만 나누는 아니거든요. 그 시간을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즐거움을 나누고, 배움을 얻는 거지요.”

씨가 처음 재능을 나눈 곳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오산시에 이사 기념으로 아파트에 폭을 써서 기증했는데, 이를 주민들이 서예를 가르쳐 달라 요청한 것. 그렇게 30명 남짓으로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타기 시작 경로당과 어린이 교실까지 진행하게 됐다. 서예 수업이라 해서 붓만 휘두르고 온다 생각하면 오산. 수강생들이 보고 베껴 체본을 만드는 데만 시간이 제법 걸린다. 한 장을 써서 종이를 복사하면 간편하겠지만, 하나하나 다른 문장을 직접 화선지에 써서 준비하며 공을 들인다.

“수강생들을 위한 배려이지만, 자기 수양까지 겸하는 과정이죠. 나도 완벽 하지는 않잖아요. 수업을 하면서 내 글 씨도 더 좋아졌고, 공부가 많이 됐어요. 함께 성장하는 거죠.”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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