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건넜어도 아직 내 곁에 있는 내 강아지, 꼬동이

7월 7일자 신문을 들고 들어온 날 온 식구가 차례차례 환성을 질렀다. 1면에 커다랗게 ‘퍼그’ 강아지 얼굴이 떡 박혀 있어서였는데, 퍼그는 16년 동안 바로 이 집, 우리 곁에서 살다가 떠난 개였기 때문이다. 남들은 이름을 잘 몰라 ‘불독’이냐고 하는 개. 16년 동안 불독이 아니라 ‘퍼그’라고 알려주느라 수도 없이 불러 젖힌 그 이름. 뾰족하고 긴 대부분의 개가 가진 주둥이 대신 얼굴 전체가 평평하고 밋밋한 데다 퉁방울만한 커다란 눈을 가진 유난히 귀여운 퍼그 견. 우리 식구들에게 ‘잘생긴 개’의 의미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바로 그 강아지가 법원 로고 사진 옆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우리 집에 살던 퍼그의 이름은 꼬동이. 꼬동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멀리 떠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네 식구의 마음은 같이 살던 그 옛날과 똑같아서 옆에 없다 해도 같이 살고 있는 거나 진배없다. 거실에는 아직 꼬동이 사진이 일종의 제단처럼 놓여있고 딸아이들 프로필엔 혹여 잊을세라 꼬동이의 옛 사진이 올라온다.

우리는 영화 <킹스맨스 에이전시>의 주인공 에그시가 아기 퍼그를 데리고 훈련을 받는 장면 때문에 사랑하는 영화가 되었고 영화 <터널>에 갇힌 하정우가 그 깜깜한 곳에서 퍼그 ‘탱이’와 함께 버티다가 생환에 성공하는 까닭에 다른 이유 없이 좋은 영화로 꼽기도 한다. <맨 인 블랙>에서는 윌 스미스 같은 요원들과 이야기도 하는 날카롭고 똑똑한 강아지가 다름 아닌 퍼그다. 가수 양희은도 발레리나 강수진도 정말 좋아하는데 이유의 반 정도는 그분들이 퍼그를 키웠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사 제목은 ‘토요판 커버스토리/ 펫분쟁의 세계’ 헤드라인은 “반려동물, 물건과 가족 사이.”다. 동물과 함께 사는 반려인구가 이미 천만 명인 시대, 동물관련 소송이 점차 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직 세상의 법에는 반려동물은 가족이 아니라 ‘물건’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이야기. 세상의 수많은 개 중에 특별히 퍼그를 골라 대표사진으로 올린 그 기자도 분명 퍼그를 유독 사랑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면서 기꺼운 마음으로 신문을 오려 냉장고 옆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마그네틱으로 붙여 놓았다. 마치 꼬동이가 돌아온 것 같았다.

 

<신문 기사 반려동물 가족과 물건 사이에 실린 퍼그 견 사진. 떠났던 꼬동이가 돌아온 것 같아 오려 붙였다>

 

아기를 낳아야 저 세상의 동물들에게 환생할 기회를 줄 수 있는데...

얼마 전 아이를 낳지 않은(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예정이 없는) 여자 두 사람과 나눈 대화내용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세 사람 모두 동물을 사랑하고 같이 살던 사랑하는 동물이나 가족을 잃어본 경험이 있고 깊이는 다르나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죽는 것, 인연으로 얽히어 살다 떠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기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갔다. 한 사람이 아기를 안 낳은 것에 대해서는 후회도 미련은 없으나 동물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이미 둘을 낳아 키웠으니 그 역할을 다 한 셈이라면서 나눈 말들은 놀라웠다. 왜 인간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도 아니고 세상 떠난 동물들에게 미안하다는 거죠? 내가 물었다. “저기 저 세상에는 지금 인간으로 환생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동물들이 정말 많을 텐데 내가 그들에게 환생할 기회를 주지 않았잖아. 여자로 태어나 살면서 아기를 낳았다면 환생할 기회를 줄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쓰지 않아서 오랜 시간 하마나 태어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동물들을 환생 이전의 상태로 두고 있으니 그게 미안한 거지.”

“왜 동물들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해야 좋은 거죠?” 또 물었다. “이 세상은 동물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보단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야 수행하기가 더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동물의 몸과 정신으로 수행하고 도를 닦기엔 미흡하니까. 그 존재들이 동물로만 살다가 죽었으니 안타깝지. 인간인 내 몸을 빌려 인간으로 태어나서 생사고통과 연기법을 깨닫고 이 세상을 잘 살다 돌아가면 다시는 윤회를 거듭하지 않을 수 있잖아.” 이야기는 나아갔다. 우리들은 모두 이생에서 잘 깨닫고 수행하지 못했으니 죽은 후에 다시 어떤 존재로든 몸을 받아 환생하고 또 살면서 윤회를 거듭하게 될 거라는 것. 매 생의 목표가 거듭되는 윤회의 끈을 끊고 어떤 존재로든 환생하지 않고 해탈하는 것이지만 제대로 깨닫기가 워낙 힘드니 또 오게 될 거라는 것까지. 난 안 올 건데, 다시 환생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데, 중얼거렸으나 언젠가 어느 스님이 당신은 인간의 몸으로 이생에 온 것은 처음이라 그토록 아직 미숙하고 어리둥절한 채 살고 있는 거라고 한 말씀이 떠올랐고 저 세상 어디에서 혹시 인간으로 태어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꼬동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튼 나는 펫로스 컴패니언이고 펫로스 증후군을 겪고, 아직도 겪고 있는 중이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은 가족 같은 반려동물이 먼저 죽고 난 후, 남은 반려인이 겪게 되는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과 장애를 말한다.) 2년 전 내 꼬동이가 세상에서 말하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 이 세상에서 떠나서 어디로 갔는지, 어떤 기억으로 떠돌고 있는지, 이 세상에 다시 온다면 누구의 몸을 빌려 인간의 몸으로 환생할까, 궁금하고 애달픈 중에 만화 <환생동물학교>를 만났다. 그날 나눈 이야기가 모두 들어있었다.

 

<환생동물학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만화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이 서로 모여 살듯 내 주위엔 고양이와 강아지를 반려동물로 같이 사는 이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은 거개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 인스타에 반려동물의 사진을 올려놓고 그들의 일상을 인간 아기를 키우는 사람과 똑같이 그 동물들과 함께 하는 일상의 기쁨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어쩌다 안부를 물으면 자기 아기 이야기를 신나서 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반려동물 이야기를 끝없이 자랑하고 사진을 보낸다. 지치지 않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눈다. 그들에게 그 정성을 인간한테 쏟으라거나 그 음식을 사람한테 주라거나 동물한테 쓰는 돈을 가난한 이웃의 사람에게만 쓰라고 폭력적으로 뱉어내는 이들도 있으나, 그 삐뚤어진 분노의 방향과 어이없는 비교, 인간과 종을 나누는 이들의 세계관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사람은 다 다르고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니까. 세상에 다시없는 위로를 반려동물과 나누고 인간만큼 사랑을 주고받는 그들은 모두 펫로스의 시간을 두려워하고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다. 인간의 시간보다 4배나 빠르다는 동물들은 어쨌든 우리 인간보다는 먼저 세상을 떠날 테니까. 그렇게 치면 16년을 산 우리 꼬동이도 사람 나이 64세에 떠난 셈이 된다. 나보다 먼저 떠날, 나보다 먼저 떠난 반려동물과 살던 사람들에게 위로와 추억을 일깨우는 책들은 많다. 내 곁에 살아 움직이다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세상으로 떠나보냈는지 곰곰이 기억하는 영화도, 만화도 역시 많다.

16년을 함께한 고양이 유즈의 이야기를 그린 <멀고먼 산책길>, 애니멀 커뮤티케이터 루나의 영혼교감 이야기 <다시 만나자 우리>,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 <강아지 나라에서 온 편지>, <깃털: 떠난 고양이에게 쓰는 편지>도 있고 아예 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동물들이 간 세상을 알려주는 <반려동물, 무지개다리 너머 세상>도 있다. <반려동물, 무지개다리 너머 세상>은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동물의 영혼은 환생합니다. 그중 어떤 가족들은 인간으로 환생을 소망하기도 합니다.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 다음 생에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느 가족들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합니다.’라면서 “동물의 영혼은 우주를 넘어 그 위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천국의 이미지와 아주 흡사한 곳입니다. 동물들의 영혼은 그곳에 모이게 되고, 그곳에서 환생에 대한 준비를 하게도 되며 환생을 하지 않는 영혼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다음 생의 단계를 결정하게 됩니다. 함께 살았던 가족을 기다리기 위하여 기다릴지 같은, 준비를 포함한 결정을 말입니다.”라고 쓰고 있다. 환생을 기다리는 동물의 저 세상이야기, 바로 그것이 환생동물학교의 내용이다.

 

반려 동물의 사후세계와 환생에 관한 만화, <환생동물학교>

아, 진짜 동물들이 저 세상에서 동물의 몸과 마음을 벗고 인간으로 환생하는구나. 며칠 후 딸 인간과 엄마 인간의 마음도 공명을 하는가싶게 딸이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매주 월요일 웹진 만화 <환생동물학교>. 엘렌 심이 포털사이트에 연재하는 거였다. 이미 우리는 단체카톡방에서 웬만한 문화컨텐츠는 거의 공유하고 있었다. 동물 만화라면 특히. 마일로의 웹진만화 <극한견주> 시즌1을 끝난 후였다. 대형견 사모예드 솜이와 함께하는 극한 인생! 이라는 부제의 만화는 ‘솜이’와 사는 가족 이야기를 그려서 다시 한 번 개와 같이 살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엘렌 심의 <고양이 낸시>도 딸 덕에 봤다. 쥐 마을에 입양된 하얀 고양이 낸시의 이야기 <고양이 낸시>는 고정관념과 편견에 쪄든 머리를 뒤흔드는 기발하고 다정한 만화여서 탄복을 거듭하면서 읽었다.

<환생동물학교>는 과연, <고양이 낸시>를 그린 작가답게 더욱 신비롭고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의 깊이가 남달랐다. 이미 죽어 저 세상에 간 동물들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한 교육을 받는 학교의 동물이야기라니. 인간의 죽음과 윤회, 인연, 환생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사랑과 기억, 관계에 대한 철학이 만화 속에 올올이 들어있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인간의 죽음과 환생, 지옥과 천국에 관한 이야기 <신과 함께> 1편 죄와벌, 2편 인과 연도 만화가 원작이다. <환생동물학교>는 <신과 함께>만한 대작은 아니어도 가슴에 스미는 이야기는 더 섬세하고 아름답고, 또 슬프다. 슬픔 끝에 위로가 온다.

<죽기 전 삶의 기억과 추억 집착을 지우고 새 삶의 챕터를 써나가기 위한 환생준비를 하는 동물과 인간들의 배움의 장 환생동물학교>

 

내 영혼은 지금 여기에 있어요, 주인을 그리워하면서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이승의 삶의 사연들을 묻고 동물들은 지금 인간으로 환생을 준비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주인이 누구였는지, 어떤 성품의 동물이었는지, 사랑을 받았는지, 학대에 시달렸는지, 묶여 살았는지 자유롭게 살았는지는 각자의 가슴 속에 있을 뿐, 아직 서로의 깊은 사연은 잘 모른 채 한 반이 되었다. 이승에서의 주인의 존재는 같은 반 동물들의 기억과 대화에서만 나타날 뿐, 만화에 다 등장하지 않는다. 반려동물답게 살아 있을 때 이 세상 누구보다 주인가족들을 사랑했던 동물들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이승의 기억을 다 지우지 못하고 아파서, 늙어서, 시간의 흐름으로 먼저 떠나 온 후 남겨두고 온 주인님 인간을 오매불망 그리워한다. 이 반의 특징 자체가 인간으로 환생하려는 동물들이고 주인과의 삶을 못 잊은 존재들만 모인 곳이다.

<환생동물학교Peeps Preschool>에 입학하고 난 후에도 동물들은 아직 동물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동물일 적의 식성, 행동, 본성을 모두 버리고, 마침내는 주인님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잊고 치유해야만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

명랑하고 맑디맑은 심성의 시바견 아키, 매사에 툴툴대고 아직 자기밖에 모르지만 마음 약한 고양이 머루, 화장실에 혼자 가지 못하는 소심한 셰퍼드 맷, 빨간 점이 나오는 레이저 포인터의 주술로 믿는 헤어스타일이 멋진 샴 고양이 쯔양, 주인이 채워준 구속의 입마개를 여전히 소중히 간직하는 하이에나 비스콧, 공놀이를 좋아하지 않고 맹도견으로 일했던 착하고 의젓한 리트리버 블랭키, 냉정하고 단호해 보이지만 모든 애들을 잘 챙겨주는 사연 깊은 고슴도치 카마라는 인간으로 환생하는 법을 배우면서 서로의 기억과 집착, 슬픔의 사연들을 하나씩 알아간다. 서로 다른 행태와 본성을 고쳐주고 잘못했다가 사과하고 배신의 상처를 마음 깊이 위로하는 이 반의 동물들은 어쩌면 인간세상의 교실보다 윤리적이고 사려 깊어보인다. 이미 인간으로 환생했다 해도 무리 없을 것 같은 동물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이 동물들 앞에 아직 인간의 모습인 초보 선생님이 AH-27반 담임이 된다. 인간 남자의 모습을 한 선생님은 ‘환생보류’를 신청했으나 아직 사연은 밝혀지지 않았다. 악의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착한 심성의 개, 고양이, 고슴도치, 하이에나, 악어처럼 종도 다르고 특성도 다른 동물들이 얼마나 서로를 포용하고 배려하는지 눈물 끝에 웃음이 나고 매 표정들이 귀엽기 그지없어 만화를 한 번 보고 넘길 수가 없다. 모두 동물이라는 표지인 꼬리를 달고 입학하지만 인간의 심성과 식성을 잘 배우게 되면 순식간에 꼬리가 사라진다. 꼬리가 없어지면 환생을 할 준비가 됐다는 증명인데, 꼬리가 없어지는 가장 큰 성공의 열쇠는 이전 삶과 이전 관계와의 제대로 된 이별이다. 잘 헤어져야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거의 모든 동물들의 꼬리가 사라졌다. 하나씩 이별의 의식을 치렀다는 말이다.

 

아직 동물이지만 이미 인간만큼 인간적인 AH-27반 아이들

“너, 공돌이가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았어. 이유가 뭐야?” “아니야, 재미있었어.”

“아니야. 뭔가 달랐어.” “사실은, 공놀이보단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난 더 좋은 것 같아. 이상하지? 강아지인데 공놀이를 별로 안 좋아하다니...”

“그랬구나..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걸? 우린 모두 다르니까 각자 다른 걸 좋아하는 건 당연해. 그리고, 운 좋게도 내가 가만히 있기 전문가지! 좋은 자리 아는데, 같이 가볼래?”

“좋아!”

 

“나 혼자 이 멍청한 깔대기 한 거. 화가 나. 그거야 너 혼자 다쳤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건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구.” “그럼 그걸 뺄 순 없으니까 네가 기분 좋아지는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너, 소파에 앉는 거 좋아하잖아. 가서 앉자!”

“오늘은 모두 깔대기의 날이야.” “아냐, 며칠 간 깔때기의 날이야.” “맞네.” “고마워.” 천만에.

 

“이별은 언제나 힘들지. 너무 많은 일을 함께하곤 해서... 혼자 남아 있을 상대방이 걱정돼.”

 

동물들의 대화다. 엘렌 심이라는 작가의 사려 깊고 올곧은 마음은 만화 에피소드마다 세심하게 드러난다. 한 반 친구들이 서로 다른 종이라는 것과 이전 삶이 다 다르다는 것, 지금 성격도 다 다르다는 것을 액면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60억 인간이 서로 다르듯 그것은 그저 ‘아주 작은 차이’일 뿐이라고 귀엽고도 슬픈 그림체로 쓰윽 보여준다.

현재까지 48개의 에피소드가 다 입을 떡 벌릴 만큼 다정하고 유연한 동물의 마음을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하이에나 비스콧과 고슴도치 카마라 이야기. 비스콧은 환생을 준비하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주인에 대한 가없는 그리움 때문에 주인이 채운 입마개를 떼지 못한다. 인간 주인이 하이에나를 포획하고 길들이고 자유를 주지 않으려고 입마개를 채웠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비스콧은 주인을 생명의 은인이라고만 믿고 있다. 카마라와 머루는 인간주인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입마개를 벗으라고, 진실과 대면하라고 아무리 애써도 해맑은 비스콧은 아무 것도 모를 뿐. 한평생의 믿음을 버려야 하는 기막힌 일이다. 고슴도치 카마라와 고양이 머루 덕분에 마침내 비스콧은 주인이 얼마나 사랑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반전의 결말을 알고야 만다. 깊고 어두운 동물일 때의 기억 상자를 열고 구슬을 보고야 마는 것. 애지중지하던 입마개를 벗고 꼬리가 없어진 비스콧은 카마라와 머루의 따뜻한 배려의 기억을 새로 심고 성큼 인간영혼으로 다가선다. 아, 이 반 아이들이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인간세상에서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상상으로 치닫게 된다.

 

지금 내 옆의 사람들은 전생에 어떤 동물이었을까. 아니 이생을 어떻게 살다 갈까

자꾸 만화를 보게 된다. 꼬동이는 지금 환생동물학교 어떤 반에 들어가 환생을 준비하고 있을까. 한 생애 동안 한 번 주인에게 버려져 내게로 왔던 퍼그 꼬동이. 살아 있는 내내 피부병을 앓으며 어린 딸이 다 자랄 때까지 함께 했던 개로서의 삶은 행복했었는지... 모르겠다. 계단을 서너 개 씩 뛰어오르고 운동장을 총알처럼 뛰어다니다가 서서히 힘이 빠져 안아야만 계단을 오르고 한 바퀴 산책에도 기운을 다 잃던 꼬동이. 워낙 말이 없어서 짖지도 않고 세상사는 당신들 맘 다 안다는 듯이 언제나 다정하고 천사 같던 꼬동이는 그 학교에서도 배려 깊은 할아버지처럼 큰 눈동자로 친구들을 보살피고 있지 않을지.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한 나는 여전히 꼬동이가 가 있을 어떤 세상이 그려지지 않는데, 꼬동이는 떠나면서 옆에 없었던 나를 그리워하진 않을지. 환생동물학교 아이들처럼 주인인 내가 올 때까지 환생을 보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동물로 태어나 살다가 죽어 이승으로 환생한 걸까. 이 몸으로 어떻게 더 잘 살다 가야 할까. 내 옆의 너, 너, 너는 어떤 인과 연으로, 죄와 벌로 지금 만나 살게 된 것일까, 둘러보게 된다.

아무튼 연재중인 <환생동물학교>의 반 아이들은 진도가 느리지만 하나하나 이승으로 올 준비를 하고 있다. 스스로 환생을 보류하기도 하고 아직 기억속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인간으로 사는 것이 정말 동물보다 나은가.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축복인가 고통인가, 그 애들의 선택에 따라 오늘도 산부인과에서 아기들이 태어날 것이다. 인간으로 사는 것이 확실히 동물로 사는 것보다 더 깊이 관계를 성찰하고 생명을 얻은 이유를 깨닫기에 좋은 환경이라니, 긴긴 진통 끝에 태어날 아기를 본다면 환생학교에서 여기까지 여정을 축하하며 웰컴 투 휴먼월드, 축하해 줘야겠다. 부디 인간으로 환생한 생이 꼭 행복하고 아름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