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도망시(悼亡詩)
▲소치(小痴) 허유(許維)가 스승 김정희를 그린 ‘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
유교의 영향을 받아 온 중국에서는 사대부가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하였다는 것을 지난호에서 도연명의 ‘한정부’를 예로 설명 드렸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경우, 그 슬픔을 표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아내 를 잃은 애절함을 노래하는 시를 ‘도망시(悼亡詩)’라 부른다. 중국 최 초의 ‘도망시’는 중국 역사상 가장 빼어난 미남으로 꼽히는 서진(西晉)시대 대문장가인 반악(潘岳)이다.
그는 미남에다가 좋은 가문 출신에, 당대 최고의 문장까지 갖춰서, 재모쌍전(才貌雙全)으로 불리었는데, 권문세가였던 서진(西晉)의 외척 양씨(楊氏)집안과 혼인을 하였다. 금실도 좋았지만 하늘이 시 기해서인지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게 되니, 그 애절 한 슬픔을 노래한 시가 바로 ‘도망시’ 3수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 힌다.
그 이후로는 아내를 잃은 슬픔은 이를 본떠서 ‘도망’, 벗을 잃은 슬픔 은 ‘도붕(悼朋)’등으로 불리게 되는데, 지면관계상 반악의 도망시를 소개하는 대신, 도망시라면 빼 놓을 수 없는 다른 글을 하나 대신 소 개하기로 하자. 바로 우리나라가 배출한 최고의 명필인 추사(秋史) 의 도망시이다. ‘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 즉 '귀양 중에 아내의 상 을 당하여'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기막힌 얘기 가 숨겨져 있다.
추사는 제주도에 귀양간 지 3년째 되는 해(57세) 섣달 14일, 30여 년 을 동고동락해 오던 부인 이씨(李氏)가, 그 전달인 동짓달 13일에 별 세했다는 부음을 접한다. 금실이 좋았던 추사는 귀양 중에도 자주 부인에게 편지를 썼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는 부인이 죽은 지 7일 이후에 보냈고, 그 전 편지는 부인이 죽던 날 보 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몇 천리 밖에서, 사랑하던 부인이 중병으로 신고(辛苦) 끝에 숨을 거둔 것도 모르고 편지를 썼다는 것을 생각하 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추사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절절한 심정을 표현한 시를 지었다.
那將月老訟冥司(나장월노송명사) 어찌하면 저승의 월하(月下)노인에 게 빌어서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 다음 세상에는 서로가 바꿔 태어나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천리 밖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이 마음, 이 슬픔을 (그대가) 알게 하 리오.
한편, 벗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도붕시(悼朋詩)’로는 조선 중기의 문인 이었던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선생이 친구인 석주(石洲) 권필(權?)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
은 시가 가장 애절하다.
不恨吾生晩(불한오생만) 내가 오래 살았음이 한스러운 것이 아니라
只恨吾有眼(지한오유안) 다만 내게 눈이 있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네
無復見斯人(무부견사인) 다시는 (이 눈으로) 이 친구 보지 못하리니
危途涕空?(위도체공산) 험한 인생길, 부질없는 눈물만 흐를 뿐이네.
不恨吾生晩(불한오생만) 내가 오래 살았음이 한스러운 것이 아니라
只恨吾有耳(지한오유이) 다만 내게 귀가 있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네
萬山風雨時(만산풍우시) 온 산에 비바람 몰아칠 때
聞着詩翁死(문착시옹사) 그 친구 죽었다는 소리 내 귀에 들리니까.
글 하태형(河泰亨) 前현대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