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바쁘게 일하던 시기에는 가족과 여행을 떠날 때 어김없이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짧은 일정에 얼마나 안락하고 편안하며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는지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퇴직 후 혼자 배낭을 메고 장기간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는 다른 관점에서 여행을 인식하게 되었다. 안락한 나의 집을 떠나는 것,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안락함에 머물러 정체되지 않고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몸소 경험하며 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여행임을 깨달은 것이다. 패키지여행에서 경험할 수 없는, 내가 여행할 루트를 짜고 머무를 숙소를 정하고 교통편을 알아보며 온전히 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여행이었다. 지금까지 정해진 길을 따라 걸었다면, 이제 내가 길을 만들어 보자. 좀 돌아가도 괜찮고 길을 잃어도 좋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다. 누군가 걸어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중국 근대문학 루쉰의 <고향>에 나오는 구절이다. 좀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용기로 나만의 여행을 기획해보자.
이번 여행은 하이델베르크, 뮌헨, 잘츠부르크, 빈, 프라하, 드레스덴, 베를린으로 유럽 기차여행에 도전했다.
뮌헨에서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비어광장에서 바이젠 맥주를 마시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5년 후 퇴직을 꿈꾸는 출장 온 직장인과 거래처사장, 딸과 45일간 여행을 하며 서로에 대해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공무원 엄마의 묘한 조합이었지만, 88학번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잠깐씩 길 위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쉽게 친구가 되기도 한다.
▲칼스피츠베그(Carl Spitzweg)의 가난한 시인(Der arme Poet)
뮌헨 박물관에서 그림 한 점에 발길을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칼스피츠베그(Carl Spitzweg)의 가난한 시인(Der arme Poet)으로 1930년대 독일 민중의 삶을 나타낸 그림이었다. 좁고 낡은 집 천장에 비가 새는지 우산을 받쳐놓았고, 땔감은 보던 종이뭉치가 던져져 있지만 불을 때지는 않았다. 방안의 냉기가 느껴지듯 모자를 쓰고 두터운 잠옷을 입은 처지에도 시인의 침대 옆에는 책이 수북이 쌓여있다. 가난한 시인의 삶에서 그를 지탱해 주었던 것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이다. 젊은 시절의 내가 이 그림을 보았다면 분명 남루한 모습의 시인이 불쌍하게 느껴졌을 텐데, 지금의 나에게는 왠지 그림 속 시인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프라하 카렐교의 수많은 인파
프라하는 카렐교를 기대하고 갔지만 쏟아지는 인파에 떠밀려 다니기만 했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도 내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어떠한 의미도 없다. 그 유명한 카렐교도 나에게는 단순히 강을 건너는 다리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유명한 독일 철학자들이 사색을 하던 산책로인데 거의 관광객이 없었다. 조용한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허름한 가게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물 한 병을 사 마시며 경치를 둘러보는 기분이 무척 좋다. 언덕에 서서 맞은편을 보면 하이델베르크성과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비로소 오르막을 올라야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며, 그 시대의 철학자들은 무엇을 사색했을지 잠시 생각해본다.
▲철학자의 길
프라하에서 꼭 보고 싶었던 구 시청사의 시계탑 인형 세레머니는 현재 시계탑의 공사로 보지 못했다. 대신 영상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랬다. 이 천문학 시계는 1410년에 시계장인 미클라시(Mikulas)가 만들고 프라하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얀 신델(Jan Sindel)이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시계의 왼쪽에 있는 거울을 든 인형은 허영을, 돈주머니를 든 인형은 탐욕을 뜻하고, 오른쪽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그 옆에는 쾌락을 상징하는 인형이 위치해 있다. 매 시 정시가 되면, 오른쪽 해골이 종을 치면서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죽음을 맞을 시간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때 주변의 인간들은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것은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면 돈도 허영도 쾌락도 모두 소용이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세레머니를 보며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내 손에 허영과 탐욕, 쾌락을 아직 꼭 쥐고 있는데 해골인형이 "너의 시계는 이제 다 왔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듯 했다. 시계바늘이 멈추기 전에 이 당연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지. 아니 깨달아도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잠시 고민해 봤다.
▲프라하 구시청사 천문시계탑(좌),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의 피에타(우)
여행의 마지막 지점인 베를린에서 시내를 지나가다 우연히 노이에 바헤(Neue Wache)라는 전쟁추모관에 들렀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것도 없이 가운데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의 피에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이든 엄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동상이었는데, 그 위로 천장이 뚫려 있었다. 뚫린 천장으로 눈, 비, 바람을 오롯이 맨몸으로 맞으며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여행을 마치고 내가 돌아가야 할 곳에 바로 나의 엄마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까? 지금은 치매로 나를 보아도 그저 예쁜 미소만 짓고 있지만,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뜨거운 가슴으로 나를 꼬옥 안아주는 엄마. 지금 그 품이 그리워지는 여행길이다.
유럽 기차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Tip!
1. 유럽지도에 기차노선을 보며 일정에 맞추어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자!
유레일(https://www.eurail.com/kr)로 들어가서 기차노선도를 보며 나에게 맞는 여정을 짜본다.
나라와 도시 일정이 정해진 후 유레일패스를 구입하자.
종류가 다양하므로 나에게 가장 유리한 패스를 선택한 후 구입하면 된다.
유레일패스는 한국여행사에서 프로모션으로 진행하기도 하므로, 구입 전 인터넷으로 천천히 비교해보고 사면된다.
2. 유레일패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각 나라별 철도청으로 들어가서 구간권을 개별 구입하면 된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몇 개의 도시나 한 나라에만 머무를 예정이라면 나라별 철도청을 이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독일 중심의 여행자라면 핸드폰으로 DB Navigator 앱을 다운 받아가자.
유레일패스 소지자도 좌석 예약권 구입부터 열차종류, 소요시간, 플랫폼 등 모든 것이 이 앱으로 해결 가능하다.
3. 기차 문화가 우리나라와 다르다. 미리 유럽기차를 이해하고 떠나자!
- 우리나라 기차는 표를 구매하는 순간 좌석이 지정된다.
그러나 유럽기차는 기차표 또는 유레일패스를 구입하면 어떤 기차라도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좌석이 지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와의 문화차이인데 4~45유로(구간마다 다르다)까지 따로 좌석예약비를 지불해야 좌석지정이 된다.
대부분은 그냥 열차를 타고 예약되지 않은 좌석에 앉아 가면 된다. 좌석이 예약된 자리에는 예약된 구간이 종이 적혀 꼽혀있다.
그러나 꼭 좌석예약을 해야 하는 구간들이 있으며, 철도청에서 확인 시 R로 표시된 구간들이다. 주로 야간열차 등은 반드시 좌석예약구간이다.
장시간 열차이거나 인기구간의 경우, 미리 상황에 따라 좌석권을 예약하자.
예약 방법은 현지 기차역에서 예약권을 구입해도 되지만 항상 사람이 많아 시간이 소요되므로 철도앱을 다운 받아서 다니면 간단히 예약할 수 있다.
4. 해외에서 장기간 여행 시 해외유심을 구입해 가자.
인터넷에서 해외유심을 파는 곳이 많이 있다. 국내 여행사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우편으로 받거나 보통 인천공항에 수령처가 있다.
현지에 도착해서 안내문대로 해외유심을 끼워 사용하면 된다. 이때 핸드폰 설정을 데이터로밍으로 해두어야 작동된다.
물론 현지에 도착해서 구입해도 상관없다. 다만 이 경우 전화번호가 현지번호로 바뀌므로 국내전화와 메시지는 사용할 수 없다.
5. 유럽에서 택시를 탈 경우 우버택시를 이용하자.
우버앱을 다운받아서 미리 카드를 등록하면 피곤한 날 택시를 이용할 때 안전하고 공정하게 도착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
체코에서는 기사가 400코루나를 내야 한다고 한 목적지를 우버택시를 이용해 112코루나에 이용한 경험이 있다.
이 밖에도 우버앱을 이용하면 도착장소와 결제가 한 번에 이루어지므로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