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기계가 아닙니다
수만리 떨어진 몽골에서 저희의 둘째가 셋째 애를 잉태했다는 낭보를 인터넷으로 받았습니다. 아기의 실제 크기는 직경 2cm 정도의 동전보다 조금 크답니다. 그렇게 조그맣지만 머리와 몸통 그리고 팔과 다리가 앙증맞게 분명합니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영상과 함께 들릴 때는 내 가슴도 같이 뜁니다. 우리 생명의 씨가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 자라나고 있는 가물한 현장을 친지들과 함께 나누어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비록 자그마할지라도 이렇게 눈으로 보니 분명 새로운 생명이며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독립된 한 인간입니다. 더구나, 너무나 확실하게 우리 모두를 닮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엄연히 구별된 하나의 개체입니다. 우주의 한 공간과 시간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사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지금 눈에 보이는 동전크기 보다 훨씬 더 작은 점이었을 것입니다. 부피와 면적을 가름할 수 없는 점!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 있었을 존재의 시작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물질 이전에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있었겠지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그 신비가 가벼워지진 않습니다. 더구나 그 과정이 생략되지도 않고 매 순간 엄격하게 되풀이되어 오늘까지 이어져왔습니다. 비록 알파고에게 바둑 다섯 판 중 네 판을 졌어도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컴퓨터와 사람의 바둑 싸움으로 말이 많습니다. 구글 알파벳이 영국에서 인수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회사 딥마인드에서 만든 X-프로젝트의 하나인 알파고가 바둑의 정상이라는 인간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치밀한 작전을 폈습니다. 구글이 바라던 대로 세간의 이목을 모았습니다.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과 사람과의 대결이었으니 떠드는 게 밥벌이인 기관들은 너도 나도 말 만들기 풍년을 맞았습니다.
더구나 4:1이라는 절묘한 결과가 나왔으니 벌집을 건드린 형국입니다. 여기저기서 전문가들을 초대해 사고하고 판단하는 뇌구조를 분석하고, 스스로 체득하며 발전하는 N세대 컴퓨터의 자기개발지능이 이제부터 시작되었다는 등…새로운 화젯거리를 시간마다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개념을 정리하는 데 일가견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많은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더욱 복잡한 미로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지구가 좁다며 인터넷망을 확장해 집단지성을 펼치던 구글이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더 큰 의도로 이미 휘어잡은 세상을 다시 흔들고 있습니다.
저도 흔들렸지만 그때 저희가 받은 초음파 사진과 알파고가 제 머리 안에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아주 작게, 있는 듯 없는 듯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우리는 이런 생명의 시작 같은 일을 그냥 무심히 스쳐 지나쳐 버리기 십상입니다. 스쳐가는 바람 같기도 하고 그 바람에 반응하는 호수의 물결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생명의 시작에 비해 세상일의 시작은 참 요란합니다. 아직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이런 일들은 그런 야단스러움을 애써 유지하다 제풀에 꺾여나가거나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오늘까지 유지시켜 온 생명의 일은 저절로 이뤄지는 듯, 그 시작은 여리고 작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서히 자라 마침내 개체로 완성됩니다. 바로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욕심이 왜 그렇게 끝이 없는지 이해가 갑니다. 우주보다 더 크게 우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모두를 우리 안에 넣어도 빈자리가 넉넉한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은 우리 아기의 초음파 사진처럼 아주 작은 한 점이었고 일정한 우주의 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장된 우리는 우주보다 더 커다란 사랑을 갈망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내 속에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이 외부적인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사람을 이기는 과학의 산물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의 두뇌 신경망까지 복사한 기계들이 인간을 심판하고 생명을 제어하려 들 것입니다. 온갖 인공적인 소음으로 가득 찬 혼탁한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미세하고 부드러운 엄마의 뱃속 아기가 우주에 들려주는 심장소리만큼이나 생명은 기계와는 다릅니다.
글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