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중에도 발로 뛰며 모은 ‘보물음반’ 4000장
어디에 가더라도 레코드 가게만 눈에 띄면 꼭 들렀다. 예를 들면 1985년도쯤이었던가, 가족들과 함께 워싱턴시를 관광하다가 중국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해놓고 눈을 드니 창밖에 레코드 가게가 보였다. 그래서 부리나케 가보니 그렇게 구하기 힘들던 ‘Kiss me quick’이라는 노래가 들어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판이 있었다.
대학 때 모은 판이 약 200~300장은 되었지만 당시의 판들은 대부분 소위 ‘빽판’이라고 해서 보존성이 전혀 없는 것들이었다. 그나마도 결혼해서 셋집을 전전하다 보니 많이 없어져 버렸다. 그 뒤 보존성이 훨씬 좋아진 라이선스 판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필자는 옛날에 듣던 판들을 부지런히 다시 사 모으고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나온 판들로 옛 팝송들을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어쩌다 미국여행이라도 하게 되면 어떻게든 틈을 내어 샘 구디(Sam Goody) 같은 대형 레코드점에 들러 국내에서 구할 수 없었던 판들을 구입하곤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어디에 가더라도 레코드 가게만 눈에 띄면 꼭 들렀다. 예를 들면 1985년도쯤이었던가, 가족들과 함께 워싱턴시를 관광하다가 중국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해놓고 눈을 드니 창밖에 레코드가게가 보였다. 그래서 부리나케 가보니 그렇게 구하기 힘들던 ‘Kiss me quick’이라는 노래가 들어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판이 있었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으나 미국에서는 별로 히트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럴 때의 즐거움이란 필자처럼 무엇인가의 수집에 미쳐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뉴욕의 17번가, LA의 할리우드 대로(Hollywood Blvd.), 토론토의 영 스트리트(Younge St.) 등에 있는 옛날 레코드 전문 가게를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또 필자가 운영하던 (사)한국교통문제연구원에서 일하던 외국인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OST도 이렇게 구했다. 영화 <페드라>의 OST는 상당히 비쌌다. 1990년대에는 서울에도 이런 가게가 광화문 근처나 회현지하상가 등에 여러 군데 생겨서 필자는 주로 광화문 근처에 있던 진스 레코드라는 가게를 다녔다.
주인인 진 사장의 나이가 필자와 비슷하여 1950, 60년대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주문을 하면 비교적 잘 구해오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격은, 특히 주문을 했을 때는 상당히 비싸서 예를 들어 ‘남미의 허니문’이라는 판은 필자가 가지고 있는 판들 중 가장 비싸게 지불했던 것 같다.
이러한 과정에서 CD가 등장하자 처음에는 가격도 비쌌고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아 한참 후까지도 LP만을 고집했다. CD가 정이 안 간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의 가청(可聽)영역은 16~2만Hz이지만 비(非)가청 영역의 진동까지 포함돼야 제 맛이 나고 LP나 턴테이블을 통해서는 그러한 진동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창기의 CD나 CD플레이어는 가청음만을 재생하도록 되어 있어 무엇인가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CD나 CD플레이어에도 비가청 영역의 진동이 포함되도록 개선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세월이 더 지나자 LP는 제작 자체가 중단되어 버렸고 또 그때까지 LP로 구할 수 없었던 옛날 음악들이 CD로는 나오는 바람에 필자도 고집을 꺾고 CD도 사 모으게 되었다.
다만 꼭 옛날에 듣던 곡들만 고집한 것은 아니어서 방송을 듣다가 마음에 끌리는 곡이 있으면 그것을 기억했다가 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차에서 듣게 된 ‘O Sensin’이라는 탱고풍의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 검색해 보니 세젠 악수(Sezen Aksu)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미자씨에 해당하는 터키 국민여가수가 부른 노래로, 유고슬라비아에서 제작된 ‘언더그라운드’라는 영화의 주제가로도 사용되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가수의 모든 노래는 단 하나의 CD에만 수록하는 데다 출시된 지도 오래되어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한편 LP나 CD로 구할 수 없는, 예를 들어 보니 기타의 ‘Tell Her Bye’ 같은 곡은 우리나라에서는 꽤 히트를 했으나 미국에서는 전혀 차트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도넛판(Single)으로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이제는 앞에서 소개한 음악들 중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갖추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판이 어느 정도 모이게 되자 처음에는 주로 필자가 좋아하던 판이나 음악에만 집착했으나 나중에는 클래식이나 팝송 등 장르를 불문하고 소위 구색이라는 것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뒤늦게 관심을 가지게 된 국내 가요도 일제시대부터 비교적 최근 것까지, 국악도 역시 정악, 민속악을 가리지 않고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어 이들을 모두 합치면 족히 4000장은 넘지 않을까 싶다. 필자와 함께 세계 바둑표준화사업을 추진하던 S사장이 필자의 집에 판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 날 음악을 좀 들을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부탁하여 이분들을 하루 저녁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저녁 5시경 필자의 집에 도착한 이분들 앞에 저녁 식사 전의 간단한 술상을 내어 놓자 S 사장이 제일 먼저 혹시 앙리코 마시아스의 ‘Je Le Vois Sur Ton Visage’(말은 하지 않아요) 라는 곡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그 곡을 틀었더니 어렸을 때 무척 좋아하여 자주 듣던 곡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어디서도 그 노래를 들을 수 없어 늘 아쉽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들었다며 펄쩍펄쩍 뛸 만큼 즐거워하였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유건재 사범, 이광구 선생(2015년 11월 별세) 등도 연신 술잔을 기울여가며 자신들만의 추억의 음악을 신청하였고, 필자 역시 중간 중간에 필자가 좋아하는 곡들을 틀곤 하였다.
이러한 시간은 저녁식사 이후까지 거의 12시간이 경과한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신청곡을 단 한 곡도 빼지 않고 모두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날은 새벽에 잠깐씩 눈을 붙였다가 아침식사 후 헤어졌지만 그날 일은 우리들 사이에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
글 임성빈(任聖彬) 명지대 명예교수, 서울특별시 무술(우슈)협회 회장, 홍익생명사랑회 회장, 월드뮤직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