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70가수’들 ‘2016’에 응답하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나오고…’ 길거리 음반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중장년이라면 금세 알지만 10~30대 젊은 층은 거의 모르는 노래다. 1970년대 활동했던 정미조(67)가 부른 ‘개여울’이다.

 

 

 

 

그 정미조가 37년 만에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정미조뿐만 아니다. 정미조처럼 197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다 활동을 중단했던 가수들이 최근 대중음악계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 로비에서 꽃다발을 든 50~70대 수십 명이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함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 35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하는 포크 1세대 가수 박인희(71)였다.

 

“살아가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 못 했다. 잠깐 노래했었고 좋아하던 방송을 하다가 떠났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기다려 주시고 만나 볼 기회를 주시다니 너무 감격스럽다. 내 음악을 잊지 못하는 팬들을 보고 앨범 하나 만들자는 꿈을 품게 됐다.”

 

1981년 미국에 이민 가면서 대중음악계를 떠났다가 35년 만에 대중 앞에 다시 나선 박인희는 한창 활동했을 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특유의 단아함은 잃지 않았다.

 

1970년대 혼성듀엣 ‘뚜아에무아’ 출신인 박인희는 1972년 솔로로 나선 뒤 모닥불’, ‘끝이 없는 길’, ‘그리운 사람끼리’, ‘세월이 가면’, ‘봄이 오는 길’ ‘방랑자’ 등 서정성이 강한 멜로디와 가사의 포크 음악을 직접 만들어 큰 사랑을 받은 1970년대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였다. 또한, 박인희는 맑고 청아한 음성으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등 시를 낭송한 음반으로도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박인희의 트레이드마크인 통기타와 긴 생머리, 그리고 나팔바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박인희는 4월 30일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일산, 수원 등 전국 투어에 나섰다. 박인희는 “가을께 새 앨범도 낼 계획이다. 최근 만든 곡이 60곡쯤 된다. 내게 맞는 곡은 내가 부르고 만든 곡에 맞는 가수가 있으면 줄 것이다. 가수 박인희보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넓은 의미의 음악 속에 살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인희…정미조…중장년팬들 가슴 설레

 

“가수로 복귀해 너무나 기분 좋습니다. 이젠 제 삶을 노래로 들려줄 때인 것 같아요.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저를 새롭게 아는 분들에게도 가수 정미조가 어떤 가수인가를 보여주고 싶어요.”

 

 

 

 

인기 최정상이던 1979년 전격 은퇴를 한 뒤 37년 만에 대중 앞에 다시 선 정미조다. 차분하고 매력적인 보이스로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등으로 1970년대 스타 가수로 명성을 날렸던 정미조가 지난 2월 전격 복귀해 수많은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정미조는 1979년 은퇴에서 2016년 복귀까지 기간을 제목으로 한 앨범 ‘37년’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대중을 다시 만났다. ‘귀로’ ‘인생은 아름다워’ ‘7번 국도’ 등 재즈, 발라드, 탱고, 보사노바까지 다양한 장르의 세련된 신곡과 중장년층 뇌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등 자신의 히트곡을 함께 담은 새 앨범은 정미조를 기억하는 중장년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인기 절정의 1979년 가요계를 전격적으로 은퇴하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정미조는 이후 교수 생활에 전념했다. 그리고 가요계를 떠난 지 35년이 흐른 2014년 만난 최백호가 앨범 발표를 권유하며 음반 제작자를 소개해 준 게 컴백의 계기가 됐다. 정미조는 수원대 조형학부 서양화과 교수로 정년퇴임(2015년)을 앞둬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노래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 복귀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음반 발매와 함께 가요계로 돌아온 정미조는 지난 4월 10일 콘서트를 갖는 등 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이에 앞서 33년간의 공백을 깨며 2014년 6월 새 앨범 ‘It’s Not Too Late’를 들고 복귀한 섹시 디바의 원조 김추자(65)는 무대를 통해 대중을 지속해서 만나고 있다.

1969년 신중현에 의해 발탁돼 가요계에 데뷔한 김추자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도발적 퍼포먼스,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거짓말이야’, ‘꽃잎’, ‘님은 먼 곳에’,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1970년대 한국 최고의 여가수로 우뚝 섰다. 1970년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에서 알 수 있듯 김추자의 인기는 엄청났다. 김추자의 복귀 이후 활동은 그녀를 기억하는 중장년 팬과 그의 노래를 거미, 조관우 등 수많은 후배 가수의 리메이크로 접한 신세대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가며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70가수’ 음악, 한국 대중음악 스펙트럼 확장

 

19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두 명의 남자 가수도 최근 복귀해 중장년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목회 활동을 하다 2014년 신곡 ‘걱정을 말아요’ 등이 담긴 데뷔 55주년 기념 앨범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복귀한 윤항기(73) 역시 4월 30일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나의 노래, 나의 인생’이라는 타이틀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윤항기는 1959년 대한민국 최초의 록밴드라 할 수 있는 키 보이스(Key Boys)의 멤버로 데뷔, 가수 생활 57년째를 맞았다. 1974년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이거야 정말’ ‘나는 행복합니다’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스타 가수로 맹활약했다.

 

윤항기는 “나는 57년 동안 음악을 떠나 생활한 적이 없다. 그룹과 솔로는 물론 성직자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음악을 했다. 나같이 나이 많은 70대 가수들이 설 방송과 무대가 없어 안타까웠다. 나 같은 원로 가수들도 계속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에서는 70대 이상의 훌륭한 가수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존경도 받고 있다”며 여전한 현역 가수임을 강조했다. 윤항기는 가을부터 전국투어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드롬을 일으키며 높은 반응 속에 1월 16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라미란이 불러 유명해진 ‘황홀한 고백’의 원곡 가수 윤수일(61)도 1970년대 가수 컴백 대열에 합류한 스타 가수 중 한 사람이다.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해 ‘아파트’ ‘황홀한 고백’ 등으로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윤수일은 4월 24일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윤수일 밴드 40주년 콘서트’를 계기로 무대 공연과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윤수일은 “세월이 화살 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여전히 나는 가수다. 내 노래를 기본적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35년 만에 복귀한 박인희를 비롯해 정미조, 김추자, 윤항기, 윤수일 등 1970년대 가수들이 다시 대중 앞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것은 최근 들어 신중년의 문화소비가 증가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장년층이 젊은 날을 함께했던 1970년대 가수들의 음반 구매와 공연 관람을 많이 하면서 신중년 가수들이 속속 대중음악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나 KBS <불후의 명곡> 같은 음악 예능프로그램에서 1970년대 음악을 소개하거나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대중문화 전반에 1970~1980년대 복고바람이 거세지면서 1970년대 가수에 관한 관심이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서도 높아진 것도 1970년대 가수 복귀 붐의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에선 19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가수들의 복귀가 새로운 트렌드와 진화, 완성도 높은 음악, 탄탄한 가창력의 담보 없이 복고 바람에 기대어 단순한 추억팔이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하지만 1970년대 가수들의 복귀 바람은 대중음악계와 대중에 긍정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노래와 함께했던 중장년층에게 젊은 날의 추억을 선사할 수 있고 신세대에게는 1970년대 음악의 문양과 특성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신세대 가수들에게서 들을 수 없는 연륜과 정서가 담긴 60~70대 가수들의 음악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배국남 논설위원 겸 대중문화 전문기자 knbae@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