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엄마라는 이름으로 집안에서 그림자노동을 하고 있는 비영리개인으로서의 삶을 끝내면서 ‘엄마난중일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엄마로서의 애환을 세세하게 적어 세상에 이해를 구하는 한편, 이제부터 나다운 삶으로 본격 전환하려는 엄마독립선언의 의미이기도 했었습니다. 출판기념회 이름도 아예 ‘엄마 은퇴식’이라고 붙였어요.
그 자리에 오신 분들과 함께 엄마 얼굴 그리기, 엄마에게 편지 쓰기, 엄마 흉보기, 엄마 자랑하기 등등의 이벤트를 벌이며 각자 마음속에 지닌 엄마라는 공통적이고도 개별적인 추억을 되살려 보기도 했었습니다. 평생 어렵게 쥐고 있던 엄마로서의 삶을 그렇게 재미있는 방법으로 책과 함께 떠나보내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렇게 쓴 글이 다시 엄마들을 몰고 왔습니다. 비슷한 생각으로 고민하다가 이제 겨우 자기만의 방법을 찾은 엄마들은 아직도 엄마라는 이름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함께 고민하면 길이 보일 거라고 저더러 앞장서라며 충동질을 해댔어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솔직히 썩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엄마들한테 겪을 만큼 겪어봤거든요.
그녀들에게 제일 시급한 건 언제나 가족이었습니다. 대의명분이 뚜렷하고, 시간과 비용을 열심히 투자한 일이라도 막상 집안에 시급한 환자나 사고가 생기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어요. 그런 엄마들과 섣불리 일을 도모하다가는 이제 겨우 얻게 된 자유를 고스란히 저당 잡힐까봐 두렵더군요.
반면 엄마 노릇이 슬슬 끝나가는 제 또래들은 무언가 새로 시작할 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직장 다니던 친구들은 은퇴 이후를 고민했고,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엄마들은 빈 둥지를 쳐다보며 남은 시간을 걱정했습니다. 이들이 ‘엄마’라는 공통경험을 분모로 다시 만나 서로 부족한 지점을 보완하고 협업하게 되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서울시50플러스라는 기관을 만났지요.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단체를 선정해 설립을 도와준다기에 관심이 갔습니다. 한 해 먼저 세워진 아빠학교협동조합의 열렬한 환영과 응원도 큰 힘이 되었지요.
2017년, 그렇게 50플러스재단의 단체설립지원 사업에 응모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왜 여성가족부로 가지 않고 50플러스로 왔냐고 묻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엄마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관계의 중심축이에요. 엄마라고 여성가족부에만 갇혀 있으면 다른 사람들 생각을 마주할 기회가 적어져요. 남들도 엄마 생각을 세세히 알 수 없고요. 남편이 은퇴를 하면서, 아이가 성년이 되면서, 자녀가 결혼을 하면서 엄마의 입장과 역할은 끊임없이 바뀝니다. 이런 상황에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가족에서도 서로 불통 현상이 생깁니다. 엄마는 가족 변화 없이 혼자만 변할 수 없고, 가족도 엄마 변화 없이 제대로 변화할 수 없지요. 그런 문제를 함께 제기하기 위해 50플러스재단은 딱 맞춤한 곳이었어요.
시작이 반이었습니다. 사업 선정이 된 이후부터는 담당자가 보내주는 일정에 맞춰 열심히 설립 준비를 했습니다.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가는 동안 어느새 엄마학교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의 든든한 울타리가 세워지더군요. 그렇게 작년 말까지 복잡한 절차를 마치고 2018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을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지혜로운학교라는 평생교육 기관에서 계속 경험을 쌓았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경영 문제까지 겹치니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하나의 단체가 살아 움직이기까지 그렇게 많은 일이 숨어있는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거든요.
처음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엄마들을 돕는다.’는 협동조합의 설립 이념을 정할 때만 해도 다들 즐겁게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일을 진행할수록 같은 단어에 내포된 의미에서도 서로 간의 온도 차이가 생기더군요. 게다가 각자 능력과 성향, 경험과 일처리 방식이 다르니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함께 손발을 맞춘다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좌충우돌하면서 매주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반복한 끝에 겨우 첫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름은 ‘빈 둥지 리노베이션’. 중부캠퍼스 여름학기에 정식으로 강좌를 오픈했습니다. 성인 자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엄마들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독립 로드맵을 새롭게 설계해보자는 시간이었지요.
빈 둥지 리노베이션에서 말하고 있는 둥지는 평생 부부가 살아야 하는 집(house)이 아니에요. 둥지는 암수가 만나 알을 부화하고 새끼를 교육시켜 독립시킬 용도로 만드는 암수의 임시 거처라는 것이죠. 그런 기능이 끝나면 독립한 자식을 자꾸 그 곳에 불러들일 일이 아니라 과감하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용도로 둥지를 변화시켜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어요.
그런 강좌를 듣겠다고 유난히 더웠던 7월의 폭염 속에 공덕동 중부캠퍼스 언덕길을 올라오는 분들을 실제로 만나니 그동안 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그분들은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강의 내용보다 더 좋은 위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저희들도 이제야말로 정말 합체가 되었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년 동안 저 혼자 발행해 왔던 오지랖통신을 엄마학교협동조합과 함께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진작부터 합치지 않았던 것은 확신이 없어서였어요. 섣불리 바꿨다가 작가통신이라는 기본 콘셉트만 망가뜨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지요. 그런데 이젠 함께 해도 좋겠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동안 협업 활동에서 보여준 동료들의 헌신적 열정 때문에 벽을 허물게 된 것 같아요. 이제부터 제가 메일로 보내드리는 이야기신문 오지랖통신은 엄마학교협동조합과 함께 하는 글 친구들 이야기를 실어볼까 합니다.
생각해보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엄마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겠다고 은퇴식까지 했던 제가 또 다시 엄마라는 이름 앞에 서 있으니 말이죠. 이제부터 저는 엄마라는 이름에 짓눌리지 않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험해보려고 합니다. 하긴 비단 엄마뿐이겠습니까? 자기다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이겠지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조금 더 많이 쌓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구 말대로 세상은 넓고 새롭게 만들 일도 무궁무진하네요. 오지랖통신이라는 이름은 정말이지 어쩌면 그렇게도 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일까요?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혼자서 빙그레 웃음이 다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