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등급이라고 다 같은 와인이 아니다
프랑스의 법적 와인등급 중에서 가장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ée)이다. 그 아래로 뱅 드 페이와 테이블 와인이 존재한다. 물론 AOC 바로 다음에 우등한정등급(AOVDQS 이전에는 VDQS라고 했다)이 존재하지만 이는 AOC로 올라가기 위한 일종의 대기실인 데다 그 수도 얼마 되지 않아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와인 생산국가도 명칭과 구조는 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가 프랑스 제도를 모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AOC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의 명칭은 DOC 혹은 키안티의 경우 DOCG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우선 AOC에 대해 살펴보자. 1935년에 4개의 AOC를 선정하는 것으로 시작한 프랑스의 AOC 제도는 현재 450개를 넘는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97% 정도가 AOC이니 보르도 와인은 AOC 아닌 것을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현재 AOC는 와인의 품질을 보장하기에는 너무 허술하고 미약하다. AOC라는 법적 등급은 같아도, AOC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상과 최악이 공존한다. 그러니 소비자의 알 권리에 속하는 AOC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 그 내막을 한번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AOC의 내막을 살펴보면, 그 내부에 여러 계층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의 맨 위쪽엔 그랑 크뤼 AOC가 자리한다. 당연히 제약이 많다. 한 마을 단위에서 생산된 지정된 세빠주만으로 와인을 주조해야 하며, 수확량도 매우 제한적이다. 전설에 따르면 한 유명 소테른의 AOC는 포도나무 한 그루 당 와인 한 잔을 생산한다고 전해지는데, 지극히 사실에 가까운 전설이다.
그랑 크뤼 AOC 바로 아래 크뤼 AOC가 자리한다. 그랑 크뤼 AOC에 비해 수확량이 많기는 하지만 여전히 매우 한정적인 양이다. 사용하는 포도도 한 마을 단위에서만 생산해야 하며, 재배방식에 대한 규정도 까다롭다.
다음으로 AOC 빌라주(village)가 있다. 빌라주는 마을 단위보다는 지리적 개념이 광범위하고, 법적 제한도 위의 두 AOC에 비해 조금 느슨하다. 포도 재배는 한 마을 혹은 여러 마을에서 재배 가능하며, 수확량에 대한 제한도 있다.
끝으로 일반 AOC(AOC générique)가 있는데, AOC로 지정된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알사스, 보르도, 보졸레, 부르고뉴, 꼬뜨-뒤-론 등이다. 그리고 생산지역의 명칭만 레이블에 붙인다. appellation Bordeaux controlée 이런 식이다. 수확량은 헥타르 당 40ℓ 정도로 제한되어 있지만, 지역에 따른 차이가 크다.
다음으로 AOVDQS가 있는데,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AOC로 들어가기 위한 대기실이다. 얼마 전까지는 VDQS(vin délimité de qualité supérieur)였는데 현재는 그 앞에 appellation d’origine이 첨가되어 AOVDQS가 되었다. 레이블에는 AOVDQS에다 와인의 이름이나 생산자의 이름이 첨가된다. AOC로 올라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는 와인이기에 질이 우수하다. AOC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면서 질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한 와인이 많으니 눈여겨 살펴보면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생산량이나 생산자 수가 적어 유감이다.
뱅 드 페이(vins de pays)는 프랑스의 여러 다양한 와인 생산지역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그리고 그 내부에 3개의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1. 뱅 드 페이라는 표기에다 행정지역(région) 명칭이 따른다
2. 뱅 드 페이라는 표기에다 행정구역(département) 명칭이 따른다
3. 뱅 드 페이라는 표기에다 생산지역의 명칭이 따른다
프랑스에는 행정 구역 상 22개의 지역에 95개의 구역이 있다. 가장 적은 지역인 알사스(Alsace)에는 오-랭(Haut-Rhin)과 바-랭(Bas-Rhin) 두 개의 구역이 있고, 가장 큰 지역 중 하나인 론-알프(Rhone-Alpes) 지역에는 론(Rhone), 이제르(Isére), 사브와(Savoie), 오뜨-사브와(Haute-Savoie) 등 8개의 구역이 있다.
참고로 일부 구역 명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뱅 드 페이 중 일부는 세빠주 와인인 것도 있다. 수확량은 나름대로 제한적이며, 일반적으로 헥타르 당 85~90헥토리터 정도로 높다. 뱅 드 페이라 해도 질을 높이기 위해 생산자가 수확량을 임의로 낮추는 경우도 있으며, 극히 일부이지만 생산량을 반으로 줄이는 생산자들도 있다. 꼬트 뒤 론의 에스테르자그(Esterzagues)도 이에 속한다.
뱅 드 페이에 대한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수입 판매되는 랑그독-루시용(Languedoc-Roussillion) 지역의 4개의 다른 구역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주조한 뱅 드 페이 독(vin de pays d’Oc)도 좋은 예이다. 우선 가격에 부담이 없고, AOC처럼 여러 제약을 받지 않아 자신만의 독특한 와인을 생산하려는 생산자들이 고의로 뱅 드 페이에 남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와인은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특히 빼어난 질로 인기가 높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세빠주 와인은 포도 재배나 와인 생산에 대한 아무런 법적 제한이 없다. 단 하나 제한이 있다면 레이블에 적힌 포도 품종(세빠주)으로 주조해야 한다는 것이 전부다. 예를 들어 가메이, 샤르도네 등이다. 어떤 경우에는 2개의 세빠주를 혼용하기도 하는데, 까베르네-소비뇽, 메를로 등이다. 일부 세빠주 와인의 경우 법적 제한을 받는 공식적인 명칭(appellation)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세빠주의 이름을 상표로 붙이고 생산된 와인 사이에 질적인 격차가 하늘과 땅이라, 소비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프랑스에서 유일한 예외는 전통적으로 세빠주 와인만을 생산하는 알사스 와인이며, 와인의 질도 우수하다.
뱅 드 타블르(테이블 와인)는 옛적에는 ‘상용 와인’(vin de consommation courante)이라 불렸는데,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나 와인으로 주조되며, 레이블에는 단지 뱅 드 타블르 그리고 상표명만 명시되어 있다.
현재까지의 법적 등급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프랑스 와인을 소비하는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뱅 드 타블르보다 더 광범위한 명칭이 몇 년 안에 등장할 예정이다. 그 전조로 2009년에 AOC 랑그독(이전 명칭은 AOC céteaux-du-languedoc)이, 그리고 이보다 몇 년 앞서 랑그독-루시용(Languedoc-Roussillon) 지역을 중심으로 프랑스 남부 와인(l’appellation Sud de France)이란 새로운 명칭이 탄생했다.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랑그독-루시용 지역은 연간 총 생산량이 무려 1500만 헥토리터나 되는 광대한 프랑스 최대의 와인 산지다.
그리고 2007년 꼬뜨-드-보르도(côtes-de-bordeaux)가 탄생했는데, 이는 그 이전의 꼬뜨-드-까스티용(côtes-de-castillon), 꼬뜨-드-프랑(côtes-de-francs), 꼬뜨-드-부르(côtes-de-bourg), 프레미에르-꼬뜨-드-블라이(premières-côtes-de-blaye) 그리고 프레미에르-꼬뜨-드-보르도(premières-côtes-de-bordeaux)를 규합한 것이다.
주로 수출을 위해 보다 더 광범위한 새로운 명칭도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프랑스’ 혹은 ‘프랑스의 포도원’이란 명칭이다. 프랑스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구역(dèpartements)은 총 95개 중에서 64구역인데 다른 두 지역 혹은 네 지역에서 생산된 뱅 드 페이를 어셈블리한 와인으로, 저가 수출 시장 공략을 우선적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와인은 세빠주 이름만 레이블에 기입하면 된다.
이런 혼란과 노력 뒤에는 얼마 전부터 프랑스 와인이 직면한 매우 모순적인 상황이 밑그림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그 떼루아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바로 이 같은 다양성 때문에 즉 너무 복잡해서 판매에 지장을 받고 있으며, 이는 특히 수출 분야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양성의 유지, 다른 한편으로 단순화라는 양립이 불가능한 두 요소 사이에서 갈등한 결과가 뱅 드 타블르보다 더 하위의 새로운 명칭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글 장 홍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 <와인, 문화를 만나다>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