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의사’

 


암 조기발견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검진이다. 검진의 핵심은 내시경과 초음파다. 내시경은 위장과 대장에 생긴 암을, 초음파는 간과 쓸개, 췌장, 콩팥, 난소, 림프절 등 복부 안 장기들에 생긴 암을 찾아낸다.

 

CT(전산화 단층촬영검사)나 PET(양전자방출 단층촬영검사) 같은 첨단 검진은 간편하고 정확하나 비용이 비싸고 다량의 방사선이 사용되므로 건강한 보통 사람이 해마다 암 조기발견을 위해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혈액으로 암을 찾는다는 검사도 과대포장된 감이 있다. 위양성과 위음성이 높아 의사들이 참고용으로 활용할 뿐 실제 진단적 가치는 낮기 때문이다.

 

즉 혈액검사에서 암이 있다 하더라도 없는 경우가 있고, 없다 하더라도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결국 최종적인 확진을 위해선 내시경과 초음파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시경이 아프기 때문에 조영술을 받기도 하나 개인적으로 조영술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의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내시경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암으로 의심되는 부위가 발견될 때 조직검사를 할 수 없다는 결정적 흠이 있다. 조영술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면 조직검사를 위해 내시경 검사를 또 받아야 한다. 그럴 바엔 처음부터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내시경이 아프다면 수면내시경 검사를 추천한다. 나도 수면내시경으로 검진을 받는다. 수면내시경 때 사용하는 미다졸람이나 프로포폴같은 약물은 수술 때 사용하는 마취제가 아니다. 단기간 기억을 못하게 만들 뿐 잠을 재우는게 아니다. 수면내시경 검사 동안에도 환자는 의사의 말을 들을 수 있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대부분 안전하다. 특히 뚱뚱하고 목이 짧은 사람은 내시경이 고통스러울 수 있으므로 수면내시경을 받도록 한다.

 

내시경과 초음파는 가장 중요한 검진 수단이지만 한 가지 흠이 있다. 다른 검진에 비해 가장 기계 비의존적이다. 즉 기계의 성능보다 시술 의사의 정확한 눈과 섬세한 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경험 많고 숙련된 의사에게 받는 것이 좋겠다. 이 점에서 대형병원의 수백만원짜리 호화 검진이 비용 대비 얼마나 실속이 있을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의사이지 장비나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진과 관련해 가장 흔하게 받는 질문이 어떤 검진을 몇 살부터 얼마나 자주 받아야 하는지다. 이른바 ‘가이드라인’이다. 전문가들이 모여 합의한 일종의 지침이다. 예컨대 위암 검진의 경우 ’40세 이상 성인은 2년에 한 번 위 내시경이나 조영술을 받읍시다’가 공식 가이드라인이다.

 

또 대장암 검진의 경우 50세 이상 성인은 5년에 한 번 대장 내시경이나 조영술을 받도록 권유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는 의사마다 들쭉날쭉한 처방이나 불필요한 검사를 줄여 의료의 사회경제적 낭비를 막자는 데 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모든 경우 최선은 아니다. 가이드라인대로라면 37세에 위암으로 숨진 탤런트 장진영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위 내시경을 조금만 일찍 했더라도 그렇게 비극적으로 숨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장 내시경도 마찬가지다. 3년에 한 번씩 받았으면 조기 발견할 수 있었던 대장암을 가이드라인을 지키느라 5년에 한 번씩 받다가 조기 발견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비용 효과를 감안해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위주로 제정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평균적인 사람이 아닌 극단적인 사람들이 피해자가 된다. 예컨대 암이 이례적으로 이른 연령에 발생하거나 암세포의 증식 속도가 빠른 사람은 가이드라인을 지킬 경우 낭패를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가이드라인은 다분히 사회경제적 여건을 반영한다. 위암 유발 요인인 헬리코박터가 대표적 사례다. 유럽 등 서구에선 부모에게 위암 환자가 있거나 위축성 위염처럼 위암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있는 경우 치료 대상에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궤양 등 내시경으로 위장질환을 확인해야만 치료한다. 무증상 감염자는 치료하지 않는다. 전체 성인의 절반 가량이 감염자일 정도로 흔한 것이 그 이유이다.

 

우리나라가 유럽식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경우 수백만 명에 대해 추가로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균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균이 있어도 한 평생 큰 탈 없이 지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감염자는 비감염자보다 두세 배 이상 높은 위암 발생률을 감수해야 한다.

 

심지어 수십만 원에 달하는 두경부 MRI(자기공명영상촬영검사)를 찍는 이들도 있다. 머리에 생기는 뇌종양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서다. 이 검사는 낭비적 요소가 강하다. 수천 명을 찍으면 고작한두 명에게서 질병을 찾아낼 정도다. 검진 가이드라인에도 없는 검사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 내가 돈이 많아서, 혹은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술값을 아껴서라도 검사를 받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게다가 MRI 는 CT와 달리 해로운 방사선을 이용하지 않으므로 안전하다.

 

특히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이들이라면 가이드라인보다 적극적인 검진이 필요하다. 예컨대 집안 직계가족 가운데 위암 환자가 있다면, 혹은 헬리코박터에 감염돼 있거나 짠 음식이나 불에 탄 고기를 좋아하고 우유와 채소를 싫어한다면 위암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이들은 좀더 이른 연령부터, 좀더 자주 받을 필요가 있다. 가령 30세 이상부터 1년에 한 번씩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식이다.

 

가이드라인은 참고용일 뿐이다. 선택은 암에 걸릴 위험 요인이 있는지, 경제적 여건은 어떠한지, 건강에 대한 관심도는 높은지 등 각자의 처지를 감안해 의사의 조언을 거쳐 내리는 본인의 몫이다.

 

 

 

홍혜걸(洪慧杰)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