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의자 –클로드 부종 글, 그림/ 최윤정 옮김/ 룡소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 –크리스 반 알스 버그 글, 그림/김서정 옮김/문학과 지성사-
이번 달에 소개하고 싶은 책 두 권은 분위기가 딴판이다. <파란 의자>는 밝은 하늘색과 아주 고운 모래빛깔 같은 색감이 어우러진 명랑한 톤이고, <해리스 버딕의 미스테리>는 제목에 어울리는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의 책이다.
<파란 의자>는 내가 여러 번 사서 몇몇 사람에게 선물해본 책이기도 하다. 단골로 다닌 치과에서 기다리는 동안 좋은 책들을 많이 보곤 했는데 짧은 내용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어른들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선물했고, 집을 지으려고 건축가들과 상담할 때 사서 드리기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파란의자의 용도가 내가 원하는 집의 용도와 비슷하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사막을 걷다가 파란색 의자를 하나 발견한다. 둘은 의자를 발견하자마자 신나는 놀이를 시작한다. 의자 밑에 들어가기도 하고 썰매, 자동차, 불자동차, 헬리콥터 놀이도 하고 마치 물위를 떠다니는 양 상어를 조심해야 한다고 허풍을 떨기도 한다. 가게 놀이도 해 보고 서커스 놀이를 하느라 어릿광대처럼 쇼도 해본다. 그런데 멀리서 그걸 본 낙타가 와서 대뜸 소리를 지르며 의자는 ‘앉으라고 있는 거다’하고 떡하니 앉아서 꼼짝도 않을 기세이다. 그래서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상상력이 없는 단봉낙타를 불쌍히 여기며 그곳을 떠난다.
오로지 자신이 아는 한 가지만을 진리로 여기는 단봉낙타는 상상력도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허용하려는 맘조차 없는 어른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파란 의자 하나로도 수십 가지의 놀이와 상황을 만들어 내는 아이들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파란 의자를 뺏기고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돌멩이나 막대기 하나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어린이!
나는 집이 파란 의자처럼 한 가지만으로 쓰이는 공간이 아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되길 바란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만들어 지고 여러 가지 모임도 만들어 지고... (안타깝게도 몇 분의 건축가를 거쳐 좋은 설계를 해주신 건축가를 만나긴 했는데 집짓는 일은 또 다른 난제들이 많아서 아직 착공도 못한 상태이다.)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는 <주만지>란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한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쓰고 그린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출판사에 14장의 그림과 글의 서두만 주고 사라진 ‘해리스 버딕’이란 사람이 남긴 것을 본 ‘알스버그’가 다시 그리고 쓴 거라고 한다. 각 편의 글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아치 스미스, 소년의 놀라움
아주 작은 목소리가 물었다. “얘가 그 애야?”
양탄자 밑에서
두 주일이 흐른 뒤 그 일은 또 일어났다.
린든 씨의 도서관
린든 씨는 그 책에 대해 경고를 했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일곱 개의 의자
다섯 번째 의자는 프랑스에서 멈췄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땐 조금은 섬뜩한 느낌도 있고, 따뜻한 분위기도 있고 알 수 없는 환상세계를 만난 거 같은 기분이었다. 이 책이 미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글쓰기 소재로도 널리 쓰인다고 해서 나도 아이들과 수업할 때 활용해봤다. 책을 같이 읽고 가장 흥미 있는 것을 하나씩 정해서 글의 뒷부분을 완성하는 것을 과제로 줘봤더니 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어떤 아빠는 딸이 쓴 글을 읽고 천재라고 생각했다며 첫 줄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들려줬었다. 물론 그 아이는 ‘해리스 버딕’이 남긴 글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제법 치밀하게 글과 그림을 분석을 하고 글을 잘 썼다.
<양탄자 밑에서>를 골랐는데 주인공 남자가 대머리이고, 집에서도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것과 집 분위기로 봐서 혼자 사는 사람일 거라는 점, 두 주일 전에 있었던 일을 추리하거나 양탄자 밑에서 뭔가가 솟아오를 수 있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일지 등을 따지면서 주인공의 직업이나 결혼 여부 등을 상상해서 글을 썼다. 그런데 이야기는 심각한 방향이 아니라 유쾌한 내용이었다. 까칠한 주인공이 이혼 후 너무나 건조하게 사는 걸 보고 친구가 숨어서 에어풍선으로 친구를 놀라게 한 후 친구가 다르게 살도록 한다는~
다른 걸 선택해서 쓴 아이들의 글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무서운 이야기로 전개한 아이들도 있었고, 황당한 스토리가 되는 아이도 있었고, 이야기의 공간이 우주로 향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아이들은 굉장한 수다쟁이가 되었고 즐거운 상상으로 많이 웃기도 했다.
만약 어른들이었다면? 아마도 어떤 부분은 더 치밀하게 추리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빨간 머리 앤>의‘앤 셜리’와 <키다리 아저씨>의‘주디 애벗’은 고아였는데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앤’과 ‘주디’가 삶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힘이었다는 것도 똑같다.
<파란 의자>와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상상력이 얼마나 우리 삶에 맛을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른들도 좀 더 유연한 생각으로 많이 상상하면서 재미있게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