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라디오 시대> DJ, 그리고 <최유라쇼>의 쇼호스트

최유라의 인생 후반전은 지금이 최고의 순간

 

롯데홈쇼핑의 인기 프로그램 <최유라쇼>를 시작하기 위해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유라(51)의 모습은 전문 CEO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녀를 MBC 표준FM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DJ로만 기억하는 사람은 그녀의 절반만을 알고 있는 셈이다. 그녀가 진행하는 <최유라쇼>는 2009년에 시작해 올해 무려 8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독보적인 홈쇼핑 프로그램이다. <최유라쇼>가 세운 매진과 완판의 기록은 최유라를 명품 비즈니스 업계의 블루칩으로 각인시켰다. 그녀가 말하는 쇼호스트로서의 삶 그리고 인생 후반전을 들어본다.

 


▲라디오 DJ 겸 쇼호스트로 활발히 활동 중인 최유라.

 

“저는 살면서 홈쇼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직접 만지고 느껴보고 사는 것이 재미가 있거든요. 어떻게 남의 말을 듣고 사느냐 하는 생각이 있었죠. 그리고 그걸 파는 사람이 물건을 얼마나 알아서 저렇게 말할 수 있는가 싶었어요. 그래서 아예 안 봤죠.”

현재 홈쇼핑에서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독보적인 홈쇼핑 프로그램 <최유라쇼>의 쇼호스트이자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이끌고 있는 베테랑 라디오 DJ로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최유라가 하는 말이다. 홈쇼핑에 전혀 관심도 없었기에, 그녀가 홈쇼핑 쇼호스트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쇼호스트, 결정까지 1년이 걸리다

“홈쇼핑 회사들이 저한테 제안을 해왔어요. 결정하는 데 1년이 걸렸죠. 이들이 제 요구사항을 결정하는 데 8개월 걸렸어요. 제 요구사항은 ‘내가 쓰는 것, 먹는 것, 우리 집에 있는 것부터 하자. 그럼 하겠다’였어요.”

그녀는 “내가 쇼호스트도 아닌데 직접 써보지 않은 걸 어떻게 팔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에 회사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장은 단호했다. “지르듯 한 말이었기 때문에 요구사항을 보낸 후에는 잊고 있었어요. ‘그게 될까?’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좀 답답하게 사는 사람이라…. 굳이 돈벌이하려는 거면 방송에서 벌면 되지 싶었고.”

당시 그녀의 제안을 가장 심사숙고한 회사는 롯데홈쇼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계약이 체결되고, 최유라는 홈쇼핑 무대에 서게 된다. 그게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2년 차, 3년 차까지는 참 힘들었어요. 일단 업체들의 검증도 필요했고, 업체들에서는 ‘저희는 아직 홈쇼핑 계획 없습니다’라고 하고. 특히 외국 업체들은 명품 홈쇼핑 개념을 모르더군요. 독일도 일본도 마찬가지였죠. 저가 물건들의 판매를 홈쇼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홈쇼핑의 위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꾸준하게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나갔고, 마침내 폭탄이 터졌다. 최유라가 쇼호스트를 맡은 제품들 중 명품 가전제품을 만드는 다이슨의 제품들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연속 매진을 기록한 것이다.

“직접 영국 다이슨 본사에 가서 확인하고 공장도 보면서 공을 많이 들였어요. 신제품을 방송하면서 대박을 쳤죠. 다이슨을 수입하는 수입사가 깜짝 놀랐어요. 그러면서 다이슨의 모든 신상품은 백화점과 최유라에게만 준다는 방침을 세웠죠.”

 

마담 초이, 인생이 바뀌다

최유라의 인생도 그때를 기점으로 변했다. “그때부터 계속 해외에 나가게 됐어요. 매해 2월에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암비안테 박람회가 열려요. 세계의 주방 가전 명품이 모이는 세계 최고의 박람회죠. 물건 판매는 안 하고 계약만 체결되는 자리예요. 그러다 보니 각 업체 CEO들과 친분도 쌓게 됐어요. 참 신기한 일이죠.”

그녀는 초청을 받아 암비안테 박람회 휘슬러 부스에서 라이브 요리쇼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요리를 소개하면서도 휘슬러의 우수성을 선보이는 일석이조의 자리다. 이제는 박람회에 가면 ‘마담 초이’ 안 오냐며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박람회와 비즈니스 업계를 통해 친해진 친구들로 가득하다.

“제가 정말 꿈에 그리던, 이건 이뤄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돼버렸어요.”

그녀가 확고한 자부심을 갖고 있음은 인터뷰 도중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단순한 쇼호스트가 아니라 자신이 데리고 있는 스태프들과 함께 기획에서부터 디렉팅까지 전부 컨트롤하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스태프들에게 꼼꼼히 지시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자신답지 않은 것’을 거부하는 여자

최유라는 마흔다섯 살 때부터 은퇴를 준비했다고 한다. “남편에게 말했어요. 은퇴를 할 때는 신중히, 오랜 시간을 두고 놓치는 거 없이 차근근 마무리하고 싶다고. 그래서 은퇴에 걸리는 시간을 10년으로 잡자고.”

그녀는 예순 살이 되기 전에 뭔가를 이뤄놓고, 예순 살을 전후로 앞뒤 10년을 자신이 ‘키운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쉬고 싶었다. 남편은 좋다고 승낙했고, 그때부터 최유라의 인생 후반전은 시작된 셈이다. 그때 마침 홈쇼핑에서 제안이 들어온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방송 출연, MC 섭외도 많이 와요. 그런데 제가 재미가 없어요. 30대라면 할 수도 있겠는데 은퇴 준비를 하면서 방송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죠. 너무 소모적이기 때문이에요. 감각적인 재미와 과장된 그 무엇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생각해보니 지금하는 라디오와 홈쇼핑의 <최유라쇼>와 역행하는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뒤에서 욕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저건 뭐 혼자 잘났다고 잘난 척하고…. ‘아니, <세바퀴>를 왜 안 해? <세바퀴> 웃기다 이거지?’ 이런 얘기도 듣고. 그런데 저는 정말 할 얘기가 없어서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따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웃기고 있네, 네가 왜 할 얘기가 없어? 너같이 말 잘하는 애가.’”

그녀는 정말 할 얘기가 없어서 나가지 못한다.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 특히 가족 이야기가 주가 되는 토크형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말썽도 부리고 가출도 하는 등 갈등이 있어야 시청자들이 재밌다. 그런데 최유라의 아이들은 너무 ‘평범하게’ 자랐다. 아침 먹고 학교 가고 돌아오는 일상의 반복. 그러니 방송에서 원하는 ‘에피소드’가 없는게 당연하다.

 

“다 상술인 줄 알았는데 믿음이 간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최유라의 성격은 쇼호스트 일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쓰는 물건만을 소개한다. 그래서 소위 ‘지르는’ 식의 제품소개를 질색한다. 그녀가 생방송 중에 실제로 요리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사람만 사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방송 진행 중에 단점까지 다 말해버릴 정도로 그녀는 정직하다.

“솔직히 홈쇼핑의 모든 용어가 불편해요. ‘추가 구성’이라는 말도 어떻게 보면 미끼죠. 살 것도 아닌데 사게끔 만드니까. 그래서 ‘추가 구성이라고 하지 말고 선물이라고 하자’ 했어요. 그런데 선물이라는 표현이 심의에 걸리더군요. 너무나 걸리는 게 많아(웃음). 결국 부속이 아니라 동급의 명품으로 함께 줄 수 없으면 본 제품만 판매하고 가격을 낮추자는 쪽으로 정리를 했죠.”

그녀의 성공적인 도전은 소비자들의 반응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심을 잡아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 사람들은 다 느껴요. 내가 잘난 척을 하는지 말로만 어떻게 하려는 건지. 그래서 명확하게 해야 해요. 어떤 분이 문자를 보낸 적이 있어요. ‘홈쇼핑은 다 상술인 줄 알았는데 믿음이 간다’고. 그래서 저는 모든 의견을 받을 수 있는 SNS를 개방했어요. 물건 예고편, 개인적인 얘기까지 알려주는 공간을 만든 거죠.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쓰는 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정직으로 승부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기업에서 봉급을 받는 게 아니라 롯데홈쇼핑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 그래서 기업에 ‘물건만 잘 만들라’고 말할 수 있다. 물건에 하자가 있으면 방송에 올라오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떤 때는 포장이 안 좋아 방송을 그만둔적도 있어요. 회사가 고맙긴 해요. 그런 내 만행을 다 받아주니까. 그러잖아요, 고객을 만나는 건데, 부실하면 말이 안 되죠.”

 


▲롯데홈쇼핑 <최유라쇼>를 진행하고 있는 최유라씨. 벌써 쇼호스트 8년 차에 접어들었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토크쇼’ <최유라쇼>

좋은 물건은 소통의 매개체이며 그걸 잘 이용하고 싶다는 최유라는 혼자 해도 어색하지 않은 토크쇼를 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최유라는 지금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하고 있는 셈이다. 소위 MC들이 가지는 꿈,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하고 싶다는 꿈을 그녀는 이미 이루고 있다. 그녀는 휘슬러를 판매하기 위해 쇼를 시작할 때, 그날의 시사와 사회, 가사에 대한 내용으로 오프닝을 한다. 스토리가 있는 <최유라쇼>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자신의 쇼를 대하는 진정성의 증거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자신이 판매하려는 제품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물건을 팔 때 그 물건을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잘 사용하는 것인지도 알려줘야 소비자들의 마음이 움직이겠다 생각했죠. 그런 촘촘한 배려가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요즘에도 계속 매진행렬을 만들어내는 이유라고 봐요.”

이제 51세. 그녀가 말한 예순 살 이전 10년이라는 인생 후반전의 초반이다.

“작년은 건강과 환경이 캐치프레이즈였어요. ‘좋은 명품은 환경적으로 우수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실행했죠. 그럼 2017년은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떤 캐치프레이즈를 제시해야 할까? 스태프들에게 물으니 다들 거창하게 생각하더군요. 저는 올해 ‘우리의 기본 밥상을 바꾸는 것’이 목표예요. 특히 설탕, 소금에 대한 것들을 바꿀거예요. 설탕은 참 백해무익하죠. 그런데 안 들어가면 안 되는 재료예요. 바로 그 부분에 대한 답을 드리려고 해요.”

 

스쳐가더라도 기억에 남는 사람 되고파

“요즘이 가장 좋아요. 우리 부부는 살면서 더 좋아지는 중이에요. 서로가 서로에게 느꼈던 아픔과 상처들이 있지만, 지금은 편안해요. 가감 없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거든요. 젊었을 때 저 사람 없이 못 살겠다는 생각 해본 적 없는데 이제는 저 사람과 끝까지 살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최유라는 아이들에게 ‘내가 이렇게 너희들을 위했는데’ 하는 기대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과 인생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이제 그 나이에 이르렀음이 행복하고 요즘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언뜻언뜻 스치는 기억들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사정이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위로를 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연예인, 괜찮은 사람, 그렇게 스쳐가더라도 남는 사람.”

그녀의 소망을 듣고 있자니 마치 라디오를 듣는 듯 편안했다. 그녀의 아날로그적 매력이 훅 하고 밀려왔다. ‘마음’, ‘진정성’, ‘기준’이라는 단어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참 드문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최유라가 만들어갈 인생 후반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박규민(스튜디오 봄) parkkyu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