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쇳대박물관
서울 종로구 이화장길 100번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 내려 방송통신대학 건물 벽을 쭉 따라가다 보면 첫 번째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마주한 쇳빛 건물을 마주할 수 있다. 건물 벽이 녹슨 쇳가루로 뒤덮인 듯한 건물이지만, 내부는 탁 트인 공간에 아주 현대적이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건축 철학을 작품에 담아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이로재' 대표,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씨가 설계한 공간이다. 이 쇳대박물관의 건물 모형과 전시물들은 2002년 <승효상전>에 전시되어 많은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으며, 최초로 현역 건축가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되는 기록을 남겼다.
▲ 쇳대박물관 전경 (출처: 서울특별시)
문득 요즘 우리가 잘 안쓰는 단어 중에 쇳대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50+세대가 몇이나 있을까 궁금해졌다. 1960년대 초, 지금의 50+세대의 취학 전 시기에는 동네마다 칼갈이 장수, 막힌 하수구 뚫는 사람, 엿장수에 밤이면 어김없이 메밀묵과 찹쌀떡을 처절히 외쳐대던 떡장수가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에게 쇳대는 엿장수에게 엿과 바꾸어 먹을 수 있는 대용물로서 기억된다. 찌그러진 양은냄비,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그리고 어디서 몸통만 남은 것인지도 모를 묵직한 쇳대와 자물통이 집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쇳대란 단어가 막연히 부모님 고향만의 언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지방 곳곳에서 사용된 열쇠의 방언이라는 사실이 새롭다.
쇳대 [쇳대]
[명사] [방언] ‘열쇠’의 방언(강원, 경기, 경상, 전라, 충남, 함경)
1. 열쇠를 의미하는 전라도 목포 사투리. 요즘엔 잘 쓰지 않음.
2.열쇠의 경상도 사투리
서양에서 열쇠(Key)는 바로 권위의 상징이었으나, 한국 및 동양권에서는 열쇠보다 자물쇠(lock)가 가지는 의미가 더 컸기 때문에 자물통의 종류나 디자인 등이 더 발달하였다고 한다. 열쇠의 주목적은 △귀중품 보관 및 보안 △가구나 문의 장식성을 보충하기 위한 공예품 △각종 길상문양을 넣어 복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물품 △정조대로서의 기능 등 실로 다양하다.
▲ 쇳대박물관 소장 유물 (출처: 쇳대박물관)
쇳대박물관은 최홍규 관장에 의해 세계 각국의 자물쇠를 주제로 2003년도에 개관된 테마박물관이다. △1전시실은 조선시대 사용된 자물쇠와 빗장들 △2전시실은 조선시대 목가구에 쓰인 함, 궤, 인장함을 △3전시실은 세계 각국(유럽, 티베트, 인도, 일본 등)의 자물쇠들이 가득하게 전시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상설프로그램과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며, 전시실 이외에도 카페와 아트샵을 운영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편하게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특히 이곳에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두석장 김극천 장인(통영)의 2~3천여 종에 달하는 나비, 태극, 박쥐 장식 문양을 한 작품들도 다수 소장, 전시되어 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중요무형문화재 김극천 장인의 집안은 통영에 12공방이 생겨난, 이순신 장군 때부터 대대로 두석을 만들어 온 집안이라고 한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김극천 선생님이 4대째이고, 그의 아들 김진환 이수자가 5대째로 뿌리 깊은 장인으로서의 대를 이어가고 있다.
철을 사랑한 사나이 '최홍규', 그는 누구인가?
그는 30년 이상을 철물점 점원으로 일했다. 이후 1980년대 온 몸으로 청춘을 불살라 모은 300여 점의 자물쇠를 전시하는 <최가 철물점>이라는 공간을 강남에 오픈했다. 1989년의 일이었다. 그의 삶의 신조는 "인생 잘하는 것 하나면 충분하다"이다. 35년 간 발품을 팔아 모은 2만여 점의 온갖 철물을 수집하고, 만지고, 다듬어 귀중한 자료로 승격시킨 그는 진정 철을 사랑한 사내였다. 누군가는 엿을 바꿔먹고 버렸을 잡동사니를 모아 동숭동의 근사한 박물관에 상설 전시를 해, 철물의 역사와 발전을 한 눈에 보여 줌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추억마저 되돌려 주고 있다. 그의 이런 활동은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오래 전부터 국내 유명 갤러리 및 백화점 갤러리 등에서 전시회를 개최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 순회전, 테마를 달리한 다양한 전시(예: 대장간 전시, 쇳대와 부정 전시 / 2011년 / 미국, 일본)로 국내·외 폭넓게 지속적인 열쇠전을 개최해 왔다. 최근 각국의 초대전 준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의 다음 목표는 대장간 박물관 건립이라고 한다.
쇳대박물관 건물 외벽에 부착된 '쇳대'라는 글씨체도 예사롭지 않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오래 전 한 불교신도가 쇳대박물관을 찾아 전시품을 관람하던 중 발견한 작품을 법정스님에게 선물하게 되었고, 그 작품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은 스님이 작품의 배경을 묻게 되어 최홍규 관장을 만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 관장은 이때의 인연으로 법정스님과는 스님이 입적할 때 까지 정기적으로 교류를 이어왔으며, 생전에 스님으로부터 받은 글씨인 '쇳대'가 박물관의 벽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스님으로부터 혜광이라는 법명을 얻기도 했다.
이렇듯 재미있는 이야기와 볼거리가 풍성한 쇳대박물관.
직접 찾아 그 이야기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