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뇌 질환 환자 가족들을 위한 팟캐스트 <시름싫음>, 요즘 제가 주로 노는 놀이터 이름입니다. ‘팟캐스트’라고 하면 집이나 차 안에서 라디오를 켜면 나오는 방송이 아니라 오디오 파일로 듣는 거라는 정도만 알고 있고, 들어본 적도 솔직히 손가락에 꼽을 만큼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제가 이 일에 엮이게 된 것 자체가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오지랖이라고 하면 또 못 말리는 오지랖입니다.

오십이 코앞인, 같은 직장 동료로 만난 동갑내기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아주 오래 전 대학원 진학을 앞둔 어느 해 가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영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게 되자 다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어머니 간호에 전념합니다. ‘아들인 자신이 쓰러졌다면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갓난아기가 되어버린 어머니에게 혼신의 힘을 쏟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힘을 보태겠다며 찾아온 여성이 있어 함께 간호를 하다 결혼에 이르러 두 아들을 얻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납니다.

또 한 사람은 치매 진단을 받은 지 2년 만에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돼 자리보전을 하게 된 어머니를 온 가족이 가정에서 돌봅니다. 낮에는 환자의 며느리인 아내가, 퇴근 후에는 환자의 아들인 남자가, 밤에는 환자의 남편인 아버지가 한숨도 못 주무시고 간호를 합니다.

그러다가 지난 해 봄에 치매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먼저, 이어서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시던 어머니가 가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들 쉽게 말하지만, 어머니의 병중에 흐른 세월이 무려 치매 11년, 식물인간 20년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간병의 세월이며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일을 벌였습니다. 인생의 후반에 자신들의 경험이 잘 쓰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겪은 긴 간병 기간 동안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갑자기 중환자가 발생할 경우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가족들을 위해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 환경과 간병, 정부지원제도, 가족들의 심리 문제 등을 상담하고 안내하는 활동을 하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소셜벤처를 만든 두 사람이 도모하는 여러 가지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총 10회로 구성된 팟캐스트 제작인데, 시름시름 앓는 것을 거부하고 시름에서 벗어나자는 뜻에서 <시름싫음>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런데 첫 녹음을 앞두고 초대 손님으로 출연 요청을 받은 제가 한 회 출연이 아니라 아예 전체 진행을 맡겨달라고 제 입으로 먼저 부탁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도 아나운서 전력까지 들이밀며 말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올 하반기의 바쁜 일정을 읊어대며 잘난 체 했겠지요. 아니면 출연료부터 물어봤을지도 모릅니다. 재능기부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결정했고, 주위에 적합한 현장 전문가들은 없는지 찾아보고 섭외하는 일까지 완전히 제작진의 한 사람이 되어 열중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두 사람은 제게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 같다고 고마워하지만, 거꾸로 저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팟캐스트 녹음 자체의 즐거움은 제쳐두고 우선 이 일의 취지를 설명하고 출연을 요청하면 다들 기꺼이 응해 줍니다. 치매가족도, 인지심리를 전공한 박사님도, 치매가족협회의 회장님도, 데이케어센터와 요양원, 자치구치매안심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도, 독거어르신들이나 치매어르신들을 방문해 돌보는 독거노인생활관리사며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시간만 맞으면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출연료나 교통비는커녕 생수 한 병이 전부인 대접에도 불평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고 환한 얼굴로 정성껏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느낌을 들려줍니다.

주위의 이해 부족으로 인한 고통을 털어놓는 치매가족의 이야기에 함께 눈시울을 적시다가도 치매어르신의 엉뚱하고 귀여운 행동을 듣고는 다 같이 웃음을 터뜨립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묻고 또 물으며 절망감을 느꼈다는 고백에는 다들 숙연해졌고, 그러나 시간 날 때마다 운동으로 땀을 흘리며 훌훌 털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환자를 더 잘 돌볼 것인지 고민하며 어려운 시간을 넘길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는 경탄의 눈길과 함께 깊은 공감을 나눕니다.

… 홀로 외롭게 살기보다는 노인복지관에서 친구도 만나고 이것저것 배우며 신나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을 잊는 일 없이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착하고 깨끗한 얼굴로 늙어가고 싶다, 나이 들수록 조금씩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끝까지 건강을 지키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팟캐스트 녹음 중에 어떤 노년을 꿈꾸느냐는 질문에 나온 대답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원하는 대로 나이 들어가려면 한 개인의 노력이나 가족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서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정부에서는 정책으로 지원하고 있고, 여러 기관과 시설에서 일하는 현장 전문가들이 오늘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자신이 관심을 갖고 오늘 이 시간에도 외롭게 간병과 간호의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기억하고 살펴야 할 것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에 담겨있는 그대로 치매와 뇌질환 역시 누구에게라도 올 수 있는 질병이며, 뇌혈관과 뇌세포를 가진 사람은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가버린 식상한 단어일지라도, 저는 ‘팟캐스트’라는 단어를 이제야 구체적으로 알고 만났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에는 늘 스트레스가 따르지만 스트레스를 뒤덮을 만큼의 즐거움과 귀한 만남과 배움과 소통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기획안과 녹음실과 녹음장비와 제작 방식과 송출 메커니즘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만남이 있고, 서로에게로 향하는 맑은 강물이 있으며, 부름에 응답하는 기꺼운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저의 놀이터는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