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나게 신나게 사는’ 국가핵융합연구소 김기만 소장
인생도 연구도 Happy하게!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SBS 프로그램을 보면 세상엔 참 별난 사람이 많다. 대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상식이 곧 편견이었구나’라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되는데, 과학계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수장인 김기만 소장이다. 핵융합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그는 공부만 알던 사람이 아니다. 이런저런 취미도 즐길 줄 안다. 김기만 소장과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국가핵융합연구소 김기만 소장
“고등학교 때 좀 독특한 아이였어요.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 다닐 때까지 카드게임도 즐겼어요.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합기도 등 운동도 즐겼고요.”
학창 시절 김 소장은 그야말로 별종이었다. 매번 1등을 하는 친구가 운동과 노래도 잘하고 게다가 공부하고는 상극일 것 같은 카드게임까지 잘하는. 그런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에게 ‘나 핵융합 (공부)할 거야’라고 떠들고 다닐 만큼 핵융합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도 의외의 사실이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한 어머니와 화학을 전공한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 핵융합 에너지 연구의 선구자
“핵융합 에너지는 미래의 에너지원이 갖춰야 하는 많은 조건들을 만족시켜요. 바닷물에 풍부한 중수소와 지표면에서 쉽게 추출할 수 있는 리튬(핵융합로 내에서 삼중수소로 핵변환)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자원이 거의 무한합니다. 또한 핵융합 연료 1g은 석유 8t에 해당하는 에너지 생산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김 소장이 핵융합, 그리고 ‘꿈의 에너지’라고 불리는 핵융합 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원료를 구하기 쉽고, 적은 양으로도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였기 때문이다. 욕조 반 분량의 바닷물에서 추출할 수 있는 중수소와 노트북 배터리 하나에 들어가는 리튬의 양은 한 사람이 적어도 3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에너지 효율이 높다. 게다가 이산화탄소 발생도 없어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소량의 방사능에 따른 중·저준위 폐기물만 발생해 폐기물 처리 방안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핵’이라는 말만 들어가도 위험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핵은 원소를 이루는 구성단위로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핵융합 연구를 늦게 시작한 후발주자다. 대학 연구실 차원의 소규모 연구만 진행되어오다 1995년 초전도 핵융합 연구 장치인 KSTAR 장치 개발을 중심으로 국가 핵융합 연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국가 주도의 핵융합 연구가 시작되었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의 선구자로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신소재 초전도를 이용한 핵융합 장치인 KSTAR를 2007년 완공했다. 이어 2008년 첫 번째 플라즈마 실험을 단 한 번에 성공시키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KSTAR 건설을 통해서는 세계 최고 성능의 초전도 자석 제작기술을 보유하게 됐고, 건설기간 동안 핵융합 관련 10대 원천기술을 획득하며 단기간에 연구 주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KSTAR는 2010년 초전도 핵융합 장치로서는 처음으로 고성능 플라즈마(H-모드) 운전에 성공한 이후 매년 세계 기록을 갱신했고 2016년에는 70초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에 성공했다.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 유지 기록을 갱신했다는 것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플라즈마 장시간 운전 기술 확보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세계가 공동으로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ITER(국제열핵융합실험로)의 건설이 완공되어 ITER와 KSTAR의 실험을 통해 실제 핵융합 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생산을 실증하는 DEMO의 건설이 이루어지면 2053~2056년에는 핵융합을 통한 전기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상용화까지 아직 40년 가까이 남았지만, 핵융합 발전소 건설을 통해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가 이루어지면 화석연료 등을 우선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 ‘메아리’처럼
김 소장은 일에 빠져 있지 않은 시간엔 대학 시절 동아리 멤버들을 만나는 것이 낙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시절 ‘메아리’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 최근 당시의 친구들을 매달 한 번씩 만나 1박 2일 동안 등산도 가고 취미활동도 즐긴다. 당구는 1년 반 전에 시작했다. 스리쿠션을 주로 친다.
“당구 멤버는 4명이 보통이고 모이는 사람은 7~8명 정도 돼요. 숙소를 잡아 노래도 부르는데, 메아리에 전설의 기타리스트가 있어 그분의 기타 연주를 듣는 것도 행복이죠.”
당구 멤버 중에는 교수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가장 많다.
“메아리라는 동아리 특성상 개성이 강한 사람이 많은데, 친분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인 듯해요.”
서로가 다르다는 개성을 인정하는 것. 79학번인 김 소장은 메아리라는 동아리가 대학 시절 소위 운동권 학생들이 모인 동아리였다고 말한다.
“메아리에 들어가면 학교를 중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81~83학번 정도가 제대로 된 운동권이었고 저희 때만 해도 분위기가 서정적이었어요.”
데모 집회에 노래를 접목시키며 어느 순간 운동권 동아리가 된 것. 어찌됐든 음향기기 담당이었던 김 소장은 당시 한 축을 담당했다.
“노래를 부르면 녹음도 제대로 못하던 때인데 제가 집에 있는 음향기기를 전부 가지고 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녹음을 했어요. 당시 메아리가 소규모 공연이었는데 그 후에는 수천 명이 모이는 대규모 공연으로 발전했어요.”
‘좀 살던 집’ 아이였던 김 소장의 음향기기 취미가 제 역할을 했던 것.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때도 음향을 담당했다. 지금은 운동권이라기보다는 밴드 개념으로 많이 바뀐 메아리 후배들과 교류를 자주 한다. 얼마 전엔 수천 만원을 모아 다큐멘터리 영화도 찍고 드럼을 선물하기도 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의 대화는 항상 즐거워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죠.” 연구소에 50팀 정도가 있는데 팀별 간담회를 1년에 두 번씩 한다. “힘든 이야기도 하고 강력한 요구사항을 이야기하기도 해요. 취임하면서 문턱을 낮춰 웃는 연구소를 만들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소통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대화를 잘 안 하던 직원이 이야기를 편하게 하게 되고 아침에 일찍 와서 개인면담을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연구소 정년은 61세. 연구실적과 포장 등 우수연구원이 되면 65세가 된다.
“퇴직하더라도 일을 도와주고 있을 것 같아요. 데모(DEMO) 설계하는 일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외국과의 교류에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지금은 즐거운 직장(연구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죠. 스트레스받으면서 연구생활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잖아요. 후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 플라즈마 물질 중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를 가지고 있는 고체에 열을 가하여 온도가 올라가면 액체가 되고 다시 열에너지가 가해지면 기체로 전이를 일으킨다. 계속해서 기체가 더 큰 에너지를 받으면 상태전이와는 다른 이온화된 입자들이 만들어지게 되며 이때 양이온과 음이온의 총 전하수는 거의 같아진다. 이러한 상태가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는 플라스마 상태다.
글 이학명 기자 mrm97@etoday.co.kr
사진 국가핵융합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