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조부모의 손주 사랑
 

“손주 돌보는 것 밑지는 장사 아니라고요”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가 부모 대신 아이를 돌보는 육아, 바로 ‘조부모 육아’다. ‘황혼 육아’, ‘격대 육아’라고도 불리는 조부모 육아는 전통적으로 과거부터 익숙했지만 맞벌이 가정이 증가한 요즘에는 더욱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손자 손녀를 통해 에너지와 웃음을 얻는 노년의 특별한 즐거움과 무조건 행복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조부모 육아의 현실 사이에서 항해중인 우리 조부모들의 ‘손주 병법’이 궁금하다.

 

 

 

 

사회가 핵가족화가 되면서 자녀교육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요즘 부부들은 가정을 이루기는 했지만 자녀교육에 필요한 부모로서의 준비는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기에 대가족 시대의 소멸 이후 잊혀졌던 조부모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엘더 교수팀은 한 조사에서 조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 매우 우수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성취감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처럼 조부모에게 배우는 격대 교육(할아버지가 손자, 할머니가 손녀를 맡아 잠자리를 함께하면서 교육한다는 말이다)이 아이들을 바른 인재로 키운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친밀감을 맺고 소통하는 것이 인성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인성의 중요성이 나날이 강조되는 교육 현실에서 조부모 육아의 필요성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손주를 향한 사랑이 묻어나는 조부모의 육아일기

 

직접 손주를 기르며 육아 일기를 쓰는 조부모가 일찍이 조선시대에 있었다. 16세기 조선 사대부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은 손자 수봉을 손수 길렀다. 수봉을 기르면서 이문건은 16년치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을 남겼다. 내용을 보면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정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손자가 문살을 붙들고 걸음마를 애쓰다 한 발짝 뗐다. 할아비는 손자 뺨을 비비며 끌어안는다’라는 글귀, 벌레가 손자를 물자 “차라리 나를 물어” 하고 호통치는 모습, 코흘리개 손자가 공부를 게을리 하던 날 회초리를 들면서 느꼈던 아픈 마음 등등. 이렇게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수봉은 훗날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운다.

 

수백 년 전 조선 시대의 할아버지처럼, 현대의 할아버지들도 육아 일기를 쓴다. 25년 가까이 100여 권의 책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이자 대학에서 교수로도 지냈던 이창식씨의 이야기다. 손주 사랑은 우주도 못 말리는 법, 이창식씨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손주를 돌보며 그날그날의 감동을 글로 적었다.

 

“아이가 하는 짓은 예쁜 짓이나, 미운 짓이나 다 예쁘다. 웃어도 귀엽고 울어도 귀엽다. 용한 짓을 해도 신통해 보이고 어리석은 짓을 해도 신통해 보인다. 사랑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외손자한테 푹 빠져서 이따금 남편 식사도 뒷전이 돼버린 아내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아주 예쁘게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모아둔 일기는 <하찌의 육아일기>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이창식씨는 책을 쓸 수 있었던 이유를 “내 자식 키울 때는 먹고살기 바빠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도 몰랐지만, 은퇴 후엔 아이를 자세히 관찰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손주와 함께한 놀이와, 손주를 돌보며 느낀 애틋한 감정을 블로그에 글로 담고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손주 사진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그중 몇 년을 잠시 손주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이에요. 손주에게 첫 5~6년을 투자하고 나면 남은 세월 동안 손주와 좋은 관계를 즐길 수 있겠지요.”

 

 

A/S에 끝이 없지만… 지혜가 필요한 조부모 육아

 

저출산으로 아이들은 줄고, 꽉 찬 나이에도 결혼을 안 하는 자식이 늘고 있는 시대인 지금, 조부모 입장에서는 ‘손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을 사기에 손주를 귀여워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그 행복의 그림자 속에는 손주 돌보기를 떠맡아 심신이 모두 지쳐버리는 이른바 ‘손주 피로’가 은근히 만연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어디 가서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하자니 속 좁은 할아버지·할머니라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신세다.

 

“늘그막에 손자 보는 재미가 오죽할까”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이일 것이다. 옛말에 “밭맬래? 애볼래?”라고 물어보면 “밭을 맨다”고 대답할 만큼 아이 키우는 일은 절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손자가 귀여운 것도 매일 보게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더욱이 육아는 체력이 필수인데

 

 

50, 60세쯤 되면 몸도 젊을 때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자식들이 늦게 결혼하는 만혼화 현상 때문에 정년 퇴직한 후인 60대에 손주를 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이가 자기 스스로 걷기 시작하면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다가 다치지 않도록 따라다니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나이 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 돌보기를 하기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버거운 일일 수밖에 없다.

 

물론 손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귀여운 존재이고 소중한 재산이다. 그렇다고 무리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주 피로’가 쌓이고, 아이 키우는 방법을 둘러싸고 아이 어머니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며 갈등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엄청나게 쌓인다. 지혜가 필요한 지점이다.

 

 

에너지와 웃음을 얻는 손주와 함께 떠나는 여행

 

조부모와 손주가 행복하게 함께할 수 있는 방법들 중에는 여행이 있다. 손주와 여행을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다들 뜯어말린다. “아이와 여행하면 생고생 한다”, “아이와 여행갔더니 아이가 아프더라”며 “어릴 때 여행은 다 소용없으니 어느 정도 컸을 때 여행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어린 손주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조부모들이 늘고있다.

 

6살 손녀 아이와의 여행이 즐거웠다는 박옥순(65)씨에게 손녀와 행복하게 여행하는 비결을 물었다. “돈 생각은 일단 버려야해요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 이것은 보고 가야지’, ‘이것은 꼭 해봐야지’라는 욕심을 버려야 손주들이 함께 있는 시간을 맘껏 즐길 수 있거든요.” 박씨는 자꾸 아이에게 뭔가 기억하게끔하거나 공부시키려 하면 아이는 여행이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또한 “해열제, 밴드, 소독약 등 상비약은 필수이고, 비상시를 생각해서 응급의료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하라”고 조언했다. 가급적 장기 여행을 추천하는 박씨는 “짧은 여행은 여행 간 곳에 집중할 수 있지만, 긴 여행은 여행하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어린 손자 손녀가 여행지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우기보다, 여행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느끼고 배우는 나이라서 단기간 몰아치는 여행은 좀 벅찹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며느리와 아들, 자녀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여행 한 번 하고 나서는 오히려 자식들도 ‘어머니가 알아서 하세요’ 하데요.”


이렇듯 이제 여름방학이 되면 손자 손녀들과 여행을 떠나는 시니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녀들은 연로한 조부모와 세상 물정 모르는 손주들이 여행하는 것에 걱정부터 앞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녀들이 요청하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가능한 한 들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손자·손녀들과 함께 있는 복잡한 공공장소에서는 휴대폰을 쓰지 말 것을 자녀들이 조언한다면 이를 따르도록 하자. 왜냐하면 전화를 하다가 아이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고, 경험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 중 손자 손녀들이 넘어지거나 다치는 등의 일이 일어나면 작은 일이라도 전화로 자녀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자녀 입
장에서는 여행 중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손주에게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중요하므로 절대 “이 일은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안 돼”라는 말은 삼가야 한다.

 

부모들은 여행 중에도 자녀들이 무언가 배우기를 원해 여행지에 가면 으레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다. 그러나 이런 틀에 박힌 여행보다는 카야킹, 래프팅, 하이킹 등 부모들과 평소에 잘 할 수 없는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워 보면 손자 손녀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또 여행 중 손주의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겨 한 권의 일지 혹은 책을 만들어 손주에게 선물한다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점점 중요해지는 조부모의 역할

 

손주들은 연령에 따라 선호하는 조부모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학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4~5세 아동은 관대한 조부모를, 8~9세는 적극적이고 재미를 나누는 조부모를 좋아한다. 이후에는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싶어 한다.

 

가정교육의 역할이 아이들의 인성을 올바르게 바로잡는 것에 있는 만큼 손주 교육의 주체인 조부모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조부모 입장에서 조부모 육아는 인생 후반전에 새롭게 얻게 되는 역할이다. 따라서 조부모 스스로 자신이 이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이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고민해보면 손주와의 관계를 순조롭게 맺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할머니 육아 십계명


1. 할머니는 아이 엄마가 아니다.
 

2. 아이의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3. 아이의 부모가 원하는 교육관을 따르고, 일관성을 유지한다.
 

4. 할머니 자신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돌본다.
 

5. 아이가 울면 즉각 반응해준다.
 

6. 많이 안아 주고 스킨십을 한다.
 

7.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8. TV나 비디오에 아이를 맡기지 않는다.
 

9. 아이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한다.
 

10.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많이 이야기하고, 책을 읽어준다.
 

<심리학자 할머니의 손주 육아법>에서 -작가 조혜자, 출판사 사우-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