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순례가 유투브 배운 덕에 남친 생겼다

 

 

 

 

“얘들아 빅 뉴스! 빅 뉴스야. 글쎄 순례가 남자친구가 생겼대.”

 

만나자마자 온통 들썩이게 큰소리로 멀리 떨어진 친구 소식을 전한 사람은 ‘기러기회’ 회장 화자였다. 60세가 넘어서도 고등학교 동창들이라고 언제나 ‘얘들아’ 하고 불러대니 주위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그쪽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한 채 자기네들끼리 눈을 맞추며 킥킥댄다.

 

기러기회는 이혼하거나 사별하고 혼자 사는 친구들이 우연히 모여 만든 친목회다. 원래는 ‘외기러기회’인데 그 이름이 하도 처절해서 그냥 기러기회로 한 것이다. 올 초봄에 이들에게 날아온 빅 뉴스는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듯 기상천외하고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코쟁이래?” “그냥 친절하게 대해 준 걸 갸가 오해하는 거 아녀?”

 

허공으로 뿜어내는 무책임한 추측성 발언으로 없는 친구를 찧고 까부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태평양을 건너온 이 빅뉴스가 믿기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백 가지는 된다.

 

순례는 원래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다. 누가 말을 시키기 전에는 입을 꾹 다물고 묻는 말에도 늘 단답형으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처녀 때 당시 최고 여인상인 ‘요조숙녀’에 ‘현모양처형’이라며 그의 남편이 하고많은 여자 중에서 순례를 골라잡았다. 순례는 윤기 나는 남편의 외모에 혼이 나가 결혼했다.

 

신혼여행을 갔다 오자마자 순례는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누이에 시동생 도합 여덟 식구를 아우르는 현모양처에 묵묵히 일만 하는 며느리이자 새언니, 형수가 됐다.

그런데 이 번지르르한 남편은 자정이 되기 전에 집에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여자관계도 총각 때나 매한가지로 복잡다단해 순례에게 할애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순례의 암울한 시절은 시간이 흘러 두 어른이 돌아가시고 시누이, 시동생이 일가를 이루며 끝나는 듯했다. 그렇게 한숨 돌리던 차에 남편이 방랑 살이 끝에 몹쓸 병을 얻어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겨우 하나 있던 딸도 사위 따라 미국으로 떠나 버리자 순례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순례는 딸의 출산으로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공항에서 친구들은 헤어지는 것이 슬프기보다 순례의 삶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지나가 더 울었다. 고작 손녀 보러 말도 안 통하는 그곳에 가면서도 만면에 희색이 도는 그를 보는 것은 어떤 슬픈 영화보다도 더 애달팠다.

 

아니 그런 순례가 어떻게 남자친구를 사귄단 말인가?

 

“풍기에 사는 남자래. 걔하고 취미도 딱 맞는다나. 시도 쓰고 동물을 엄청 아끼는 남자래.” “뭐야? 아니 여기 사는 우리도 풍기는커녕 동네 사람도 사귀기 힘든데 어디라구 뭐? 풍기?” “인삼도 보내주고 카톡이나 유튜브로 실시간 수다 떠느라 바쁘대.”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워매 워매 컴퓨터라곤 고장 낼까 봐 가까이도 안 가던 갸가 뭘 혀?” 사실인즉슨 외로운 장모를 위해 사위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르쳐줬단다. 아기 보는 일 말고는 할 일도 없던 차에 열심히 배워 유튜브에 들어가 이 글 저 글 읽다 보니 자기 구미에 맞는 풍기 남자를 만난 것이다.

 

그날로 기러기회 회원들은 말없이 동네 구청이나 주민센터 컴퓨터 교실에 무료로 등록하고 미래의 남자친구를 꿈꾸며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 이제 외기러기회가 쌍기러기회로 변신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박미령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