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나한테 흰머리 나기 시작했을 때는 먹고 살기 바빠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아들 흰머리는 왜 그렇게 눈에 확 들어오는지 모르겠어.” (83세, 여)
“나는 막내딸 돋보기 쓰는 거 보면서 내가 정말 늙었구나 했다니까.
내가 낳은 막내가 환갑이라니 정말 오래 살긴 살았나봐.” (91세, 여)
“오늘도 머리 하얀 아들이 치매 걸린 아버지를 저희 데이케어센터에 모시고 왔어요.
아들이 매일 아침 등원을 직접 맡아서 해주시거든요.
제가 볼 때는 아들도 조만간 누군가의 부양을 받아야 할 정도인데 말이죠.
노(老)-노(老)부양, 노(老)-노(老)케어죠.” (50세, 남)
“아들이 일찍 결혼해서 초등학교 들어간 손주가 둘 있어요.
예전 분들 같으면 간간이 손주 재미 보면서 그럭저럭 지냈을 텐데,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어머니 계신 요양원에 가봐야 해요.
그래도 집에서 직접 간병하는 친구들보다는 훨씬 낫지요.
정말 ‘젊은 노인이 늙은 노인 돌보다가, 늙은 노인보다
젊은 노인이 지레 죽는다!’는 말이 실감난다니까요.” (62세, 여)
부모 자식이 함께 늙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조부모, 증조부모(왕할아버지, 왕할머니)로까지 폭이 넓어지면서, 조부모-부모-자녀 3세대를 넘어 4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100세 시대가 되면 5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일이 현실이 될 게 분명합니다. 세대 간 불통과 갈등과 전쟁이 아닌, 공감과 교류를 통한 공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빈 구호에 그치지 않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은 위로는 나이든 부모님을 돌보고 챙기면서 아래로는 자녀 세대까지 아울러야 하는 50+ 낀 세대들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아랫세대와의 세대 차 문제나 불통의 문제는 나의 몫으로 남겨두고 차차 해결한다 해도,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 가는 부모님과의 소통 문제는 남 아닌 내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풀어야 할 당면 과제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부모님께 하는 그대로 보고 배워서 아이들도 이다음에 나한테 똑같이 할 것이라는, 생각해 보면 두렵기조차 한 현실 인식은 뒤로 하더라도, 이제 몸과 마음과 정신이 약해져만 가는 부모님과의 편안하고 막힘없는 의사소통은 50+에게 커다란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 부모님의 속도에 맞추기
나이 들어 가뜩이나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줄어들고 혀끝에서 말이 뱅뱅 돌며 나오지 않는데, 자식이라고는 턱을 받치고 앉아 재촉을 해대니 더듬기 일쑤이고 귀찮고 불편해 아예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부모님과의 대화에 앞서 귀 기울여 듣고 찬찬히 말씀드릴 여유부터 챙겨야 합니다. 또한 부모님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말을 천천히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생각하고 정리해서 대답하실 시간을 충분히 드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또 잊어버리셨어요?” “왜 했던 얘기를 또 하시는 거예요?” “좀 빨리빨리 하세요!”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말로, 어르신들이 “너도 내 나이 돼봐라” “너도 늙어봐라”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부모님들도 듣기 싫어합니다. 비록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표현까지 어눌해지셨다 해도, 부모님 안에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인 역사와 경험이 들어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 솔직하고 성의 있는 대화가 필요해
다른 일로 잔뜩 화가 나 있는데 옆에서 부모님이 당신의 소소한 문제를 길게 늘어놓으면, 아무리 효자 효부라 해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럴 때 자신의 상황을 완곡하면서도 분명하게 표현하면 감정의 엇갈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누구나 묻는 말에 묵묵부답이거나 건성 대답을 하면 무시당한다고 느낍니다. 부모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르셔도 돼요!”가 아니라 성의 있는 대답이 해결책입니다. 진실이 부모님의 건강에 치명적인 독이나 해가 되는 경우를 빼고는, 진심을 담아 정성껏 말씀드리면 부모님은 자식들의 걱정과는 달리 잘 받아들이고 마음으로라도 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십니다.
넷, 친절하게 설명해드리기
괜한 걱정으로 신경 쓰실 까봐 자식들 사정을 처음부터 일러드리지 않거나, 집안 대소사 의논에서 배제해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마치 투명인간인양 옆에 있는데도 버젓이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고, 엄연히 보고 듣고 생각할 줄 아는데 정작 당사자만 쏙 빼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도 많습니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갓난아기에게도 우리는 상냥하게 말을 걸며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어차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별 의견도 없을 거라 미리 단정하고 부모님께 설명을 생략해버려서는 안 됩니다. 노인요양원 입소만 해도, 자식들이 쉬쉬하며 일처리를 해서 하루아침에 거처를 옮긴 분은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실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해 드리고 납득하시도록 한 후 입소절차를 밟은 분은 적응 속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런 경우 가족들의 요양원 방문횟수에도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응이 없더라도 이야기를 하면 에너지가 전달되게 마련이어서 온몸으로 교감할 수 있습니다.
다섯, 이심전심보다는 말로 표현하기
우리는 고맙고 미안하고 화나고 서운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가슴에 품고도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그런 말까지 쑥스럽게 어떻게 해’하고 가만있다가, 상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화내고 섭섭해 하다 못해 때론 싸움까지 합니다. 원래부터 그런 말 할 줄도 모르고 익숙하지 않아 쑥스럽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언젠가는 아무리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떠나버리거나 나 자신이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때가 오게 됩니다.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닙니다.
여섯, 잘 모를 때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예의상 거절하시는 건지 정말 싫은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쉬운 말인데도 도무지 그 속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런저런 해석을 하느라 애쓸 필요 없이, 또 지레짐작으로 잘못된 해석을 하느니 차라리 좋은 쪽으로 해석합니다.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긍정의 힘은 이때에도 필요합니다.
일곱, 웃음은 마음을 여는 가장 훌륭한 열쇠
대화와 소통의 기본은 뭐니 뭐니 해도 웃음입니다. 우리는 말하고 듣기 전에 웃음만으로도 서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웃음이야말로 마음을 전할 수 있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대화 수단임을 기억하면서, 웃으면서 부모님의 눈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웃음 띤 얼굴로 한 번 마주볼까요. 우리를 품어주는 무한한 사랑의 바다를 바로 거기서 발견할 수 있으니, 부모님보다 우리가 먼저 행복해질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