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치매 초기 진단을 받고 병원 처방약을 복용하던 장모님께 문제가 생겼다. 비록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 도우미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장모님은 평소처럼 혼자 지내며 자식들에게도 늘 희생적이었다. 자식들의 바쁜 일상을 배려하여 당신 집에 자주 오지 않아도 된다며 혼자서 씩씩하게 생활하던 분이셨다. 일하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우미가 자주 바뀌면서 장모님 혼자 지내시는 날이 늘자 아내는 평소보다 전화도 방문도 더 자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드렸는데 왜 도통 오지를 않느냐며 화를 내셨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바로 가뵈니 깔끔하던 냉장고에는 곰팡이가 가득했고 늘 정갈하던 집안은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아끼시던 화초도 말라비틀어지고 약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게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냉장고에 넣어드린 그 많은 반찬은 그대로인 채 멸치볶음만 밖에 나와 있었다. 왜 멸치볶음밖에 안 드셨냐고 여쭈니 다른 반찬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신다. 냉장고를 열 줄도 몰랐던 것이다. 독거생활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바로 집으로 모셨다. 기존에 처방받은 치매약이 한계를 보여 당시 연구 중이던 뇌세포 재활 약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장모님의 치매 치료는 6년째 계속되고 있다.


현재 장모님은 9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다. 집으로 모셔오던 해와 그다음 해에 한 번씩 넘어지면서 고관절 골절로 두 번이나 큰 수술을 하며 잠깐의 고비도 있었지만, 지금은 치매 환자인지 노환인지 모를 정도로 밝게 생활하고 계신다. 모르는 사람이 장모님을 보면 치매 환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비록 기억력이 심하게 나쁘지만 가족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표현하고, 자식들에게 가족 간의 사랑과 우애, 이웃과 지인에 대한 배려와 지혜도 자상하게 일러주신다. 걷지 못하게 된 두 번의 큰 장애를 극복하고 대소변을 도와드려야 했던 어두운 시간을 잘 견뎌내신 후 한동안은 지팡이에 의존하여 잘 걸으시고 조금만 도와드리면 화장실도 스스로 해결하셨다. 장모님은 몸이 거뜬해지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다며 학교에 가길 원하셔서 일곱 명이 함께 지내는 실버피스 하숙생으로 입학하셨다. 노래도 잘하고 농담도 잘하셔서 같이 지내는 분들 사이에서 오락부장 역할을 하셨다. 지금은 89세로, 비록 걷지는 못하지만 혼자서 식사도 잘 하시고 여전히 밝고 명랑하게 지내신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잘들 하라고 격려도 해주시며 아름답고 건강한 노후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치매는 어떻게 치료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가족 사랑이 활짝 꽃 피우기도 한다. 진료를 하다 보면 치료약만큼이나 가족 사랑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암 환자는 병원도.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살아가는 집이나 환경 또는 원하는 것을 모두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치매 환자는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 가족 사랑이 더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볼 때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고비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장모님도 일고여덟 번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렇다. 잠깐의 탈수 증상이나 잠깐의 열병으로도 건강이 크게 흔들린다. 어처구니없이 감기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시에 치료를 하면 또 많은 시간을 건강하게 지내기도 한다. 치매 치료 중에도 탈수증, 감기몸살, 독감, 배탈, 식욕 부진, 불면, 생체 리듬 변화 등 갑자기 증상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일로도 증상이 많이 악화되고 가족들을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잠시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니 잘 넘겨보자고 위로하곤 한다. 출렁거리며 사는 것이 노환이다.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의 남은 생을 13.5년 정도로 보는데,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삶의 질이 아주 나빠진 말기 치매 상태로 오래 살게 된다. 잘 치료하고 잘 모시면 노후를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지낼 수 있다. 


 

 

 

치매는 대부분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방치하다가 중기 또는 말기에 진단을 받아 불치병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기에 발견하거나 경도인지장애부터, 아니 그전부터 치매에 대한 예방적인 노력을 하면 치매 발병 자체를 늦출 수 있으며 병의 진행도 상당히 늦출 수 있다. 예방적인 노력이란 치매 예방을 위한 식생활습관의 관리뿐만 아니라 뇌세포 재활 치료도 포함된다. 이런 이유로 치매는 예방이 치료이며, 치료가 곧 예방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방과 치료의 의미는 치매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을 늦추는 것을 말한다. 치매가 진행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치매 치료의 이유이자 목적이기도 하다.

 

물론 가장 확실한 치료는 치매를 예방하는 생활습관에 있다. 특히 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혈관 치매는 물론 퇴행성 치매인 알츠하이머 치매도 혈액순환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열심히 운동하고 바지런하며, 다양한 활동이나 활발한 사회생활이 필요하고, 잘 자고 잘 먹는 것도 중요하다. 술과 담배 피하고, 물리적 충격도 피해야 한다. 교통사고나 낙상을 당했다면 회복하더라도 어혈과 뇌의 미세 손상에 대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자주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자기반성이나 묵상도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나쁜 뇌 구조를 좋은 뇌 구조로 바꿀 수 있다. 이미 치매가 진행되었다고 해도 약물 치료로 어느 정도 진행을 늦출 수 있다. 치매 치료의 목적은 인지 기능을 호전시키고 문제행동을 치료하여 치매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있다. 물론 본질적인 치료는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뇌기능 호전을 위한 치료나 문제행동에 대한 정신신경치료 등 보호자나 환자를 편하게 하는 치료는 매우 중요하며, 아무런 약물 치료도 하지 않는 것보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 


우리 가족은 장모님께 찾아온 치매 친구와 늘 소통하려고 애를 쓴다. 치매 친구는 때때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장모님의 치매 친구와 비교적 잘 지내는 편이다. 100세 시대에 치매는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치매에 대해 알고 대비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조기에 발견하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상이 호전되어 치매와 더불어 얼마든지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치매를 무조건 두렵다고 회피할 게 아니라 평생 함께 가야 할 친구로 여겨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한결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