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일관하던 문화가 조금씩 수다스러워지더니 저마다 ‘소통’을 주장하고 나섭니다. 예절 국가에서 함부로 대꾸를 못하고 주눅 들었던 마음속 울화가 마른 땅에 봄비 스미듯 SNS 물결을 타고 새록새록 생기를 띄며 살아나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세상이에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이나 ‘좋아요’를 눌러줬을 때 느끼는 작은 흐뭇함, ‘맞아, 맞아’로 시작되는 댓글을 받을 때의 속 시원함이 사면초가의 답답함을 조금씩 달래줍니다. 한줄기 숨구멍이 뚫린 것처럼 호흡마저 편안해지지요. 이런 위로가 너무도 간절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각자도생의 고립 속에서 느꼈던 우울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다친 마음에 약을 발라주니까요. 악플러의 표적이 되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의 속닥거림은 팍팍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코드를 가진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비슷한 생각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 본인의 영역확장을 위해 품앗이로 좋아요를 주고받는 사람들끼리의 대화를 어떻게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겨우 몇 분짜리 관심으로 포장된 인스턴트 소통일 뿐이겠지요. SNS의 장점이란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건 외면할 수 있는 관계의 쾌적함에서 빛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편리한 소통 도구와 친숙하게 살다보니 현실 속의 찐득찐득한 관계 맺기의 과정들은 점점 더 힘겨워집니다. 사람을 대할 때 겪을 수밖에 없는 상대방의 거슬리는 습관이나 특징들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시킬 수 있을까 너도나도 골몰하게 됩니다. 전화 대신 문자로, 문자 대신 메일로, 점점 안전한 방법을 취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지요. 요즘은 마켓팅 전화조차 음성 녹음을 활용하더군요.
반면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아요. 한 집안에서 가족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면 진정한 소통이라는 게 정말 이렇게나 어려운건가 싶어서 좌절하곤 합니다. 제 기준에서는 두말하면 잔소리지 싶은 상식이건만 남편 상식과는 영판 달라서 기가 막히기도 해요. 자식의 상식은 더 아득합니다. 제 딴에는 논리정연 확고부동의 상식이건만 정작 그걸 듣는 부모 세대는 뜨악해지거든요. 그러면서 서서히 알아갑니다. 소통이란 게 결코 떠도는 말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요. 잠자코 참아주는 상대방의 침묵을 무언의 동의로 착각하며 살아왔기에 그나마 가족 평화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되었던 것 같아서 가슴을 다 쓸어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한번쯤은 가족 울타리 안에서 그런 식으로 희로애락의 세월들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끼리 묻어두었던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들, 아들’ 하던 엄마들이 이제부터 독립적인 남자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 아들들과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지도 관심이 갔습니다. 맞아요. 그 수많은 가정의 불협화음이 결국은 놓아주어야 할 때, 제대로 놓아주지 못한 엄마들의 집착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싶거든요.
마침 서울시50플러스 재단에서 50+단체들의 공익활동을 후원한다기에 서둘러 응모를 했습니다. 엄마들의 정체성 회복도 중요하지만 사실 엄마는 가족 관계의 발원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관계 맺음을 어떻게 시대와 호응하며 전환하느냐에 따라 전체 가족 구성원의 입지도 달라지지요. 그런 마음에서 ‘20대 아들과 50대 엄마와의 소통여행’을 기획해보았습니다. 부제도 ‘내 아들 참모습 보기’라고 붙였지요. 처음에는 꿈이 양양했어요. 엄마와 함께 떠날 수 있는 아들만 사연을 길게 적어 신청하게 했었어요. 들어온 사연 중에서 취지에 꼭 맞는 대상자를 골라 선발할 작정이었거든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내었으니 너도나도 함께 하고 싶을 것이라 착각한 거죠.
현실은 달랐습니다. 일단 평일에 이삼일씩이나 물리적인 시간을 낼 수 있는 아들도 드물었어요.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엄마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조차 붙임성 없는 아들에게는 쉽지 않은 장벽이었고요. 내 아들 참모습 보기는 이렇게 시작부터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가는 것으로 깨달음을 주더군요. 궤도를 수정했습니다. 날짜가 임박해도 모집 인원이 차질 않아 대상 범위를 넓혔습니다. 아들과의 소통 문제를 우선했으나 딸에게도 기회를 주었고 각자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정도 주말 1박으로 줄이고 숙소도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평 쪽으로 옮겼어요. 여행의 주제는 아들과 엄마만이 아닌, 자식 세대와의 소통과 대화로 확대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은 되도록 느슨하게 배치하였습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편안하게 시간을 누릴 수 있어야 그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저절로 나오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죠.
결과는 만족스러웠어요. 모집이 힘들었던데 비해 막상 참여자들은 하나같이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좋은 여행이었다고 엄지를 올려주었습니다. 비슷한 기회가 생기면 적극 추천하겠다고요. 저희들도 그런 반응 때문에 그간의 마음고생이 눈 녹듯 사라져버렸지요. 워크숍 시간을 줄였더니 오히려 참여자 분들이 솔선해서 이야기 시간을 만들어내었어요. 젊은이는 젊은이끼리,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모였습니다. 한 방에 둥그렇게 앉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갔지요. 엄마로서 지낸 하나하나의 인생 이야기로 한 순배를 돌고 나니 어느덧 새벽 1시더군요. 이야기 하나하나가 팔만대장경 급이었거든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어도 1960년 전후에 이 땅의 딸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 키우며 엄마로 살아왔던 여정은 어찌 비슷한 색깔로 공감이 되고 눈물이 나던지요. 가슴이 다 먹먹하더군요.
이런 파란만장한 대화를 자식들은 알겠냐며 웃었는데 웬 걸요. 아침에 만나보니 젊은이들은 또 그들끼리 가족 이야기로 밤새도록 꽤 깊은 이야기를 나눴대요. 내 부모만, 내 엄마만 유난스러운 줄 알았다가 모두들 비슷한 지점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엿보며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던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두 세대가 한 자리에 모여 미처 말하지 못했던 한 마디씩을 나눠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엄마들은 자식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더 갖고 싶다는 내용이 많았고, 자식들은 본인들을 있는 그대로 믿고 맡겨주었으면 좋겠다며 이제부터라도 엄마 자신을 아끼는데 시간을 좀 더 쓰시라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그 많은 언어 사이에서도 서로를 향한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기본 재료였고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부모 자식 간의 소통과 불통에 관한 사연을 많이 수집해보았는데 그 중 한 젊은 친구의 볼멘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자식들이라고 왜 부모들과 소통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안 되니까 그냥 귀를 막고 말문을 닫는 거지요. 어른들이 말하는 소통의 의미는 알고 보면 그냥 내 말을 끝까지 잘 듣고 맞장구나 쳐달라는 거예요!”
어른들은 언제나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고 하면서 젊은이에게만 소통을 부르짖는다는 이야기죠. 가슴이 다 뜨끔합디다. 곰곰 되짚어보기도 했어요. 우리는 어떤 의미로 소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사는 것일까요. 이번 여행은 참으로 묘했어요. 세대 간 속마음과 사랑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지만 앞으로는 좀 더 자식과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었으니까요. 이제는 다 큰 자식에게 무작정 향하는 열렬한 만남과 소통에 대한 갈증을 버리려고 해요. 오히려 적절한 거리에서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엄마와 자식 사이에서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가로놓여있음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아이들의 인생 자율권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인정해주는 것이 진정한 소통방법 아닌가 싶거든요. 그런 여행 여운이 아직도 길게 남네요. 제가 젊은이들과 소통을 아주 잘 하고 온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