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시월(詩月), 세상은 책꽂이에 꽂을 수 없는 시집입니다. 그 시집엔 밤하늘의 별들처럼 많은 시가 실려 있습니다. 녹슬어 가는 나뭇잎 그늘에 서서 멀리 구름발치를 한참 바라다보면 기어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낡은 시간의 노트에서 그를 불러내어 함께 가을의 향기를 맡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월’을 보면 시인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었나 봅니다.
시월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山門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흘려 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 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중략)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그리움은 ‘이승’에 국한된 감정이 아닙니다. ‘이승’이 아닌 곳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그리움입니다. 언젠가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흐르는 잎을 따라 걷다 보니 물가입니다. 고여 있는 물은 탁하고 흐르는 물은 반짝입니다. 뭔가를 키우는 건 탁한 물이겠지만 반짝이며 흐르고 싶은 건 ‘이승’의 마음이겠지요. 개천을 따라 색색의 나팔꽃이 피었습니다. 홀로 길에 떨어져 시들고 있는 잉크 빛 나팔꽃은 이승과 저승, 어디에 있는 걸까요, 판판한 산책로에 망사 날개를 펴고 엎드려 그대로 표본이 된 고추잠자리는 또 어디쯤일까요. 지금 나의 ‘이승’은 떨어진 나팔꽃과 표본이 된 고추잠자리의 ‘저승’입니다. 어쩌면 시월은 죽음이 삶의 일부이며 저승과 이승이 하나임을 알려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물과 바람의 대화가 잦아집니다. 어느새 한강입니다. 때로는 도란도란 때로는 왁자지껄, 강은 부모를 흉내 내는 아이처럼 바다를 흉내 냅니다. 문득 백석 시인의 ‘바다’가 떠오릅니다.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백석시전집>, 창비
백석(白石: 1912-1996)이 본 바다는 평안북도 서쪽의 황해일 겁니다. 1912년에 정주에서 태어났으니 백석은 같은 평안북도 출신인 김소월(1902-1934)의 10년 후배입니다. 두 사람 모두 오산학교에 다녔는데, 백석은 선배 소월을 매우 선망했다고 합니다. 소월은 ‘국민 시인’으로 두루 대중의 사랑을 받고, 백석은 ‘시인들의 시인’으로 수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니 두 시인이 없는 한국문학사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소월은 겨우 서른 두 해를 살고 가난에 시달리다 사망하고, 백석은 해방 후 고향에 머물며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다 숙청당하는 등 두 사람의 말로가 그들의 시적 성취를 배반하긴 했지만, 한 번 쓰인 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북한에 남는 바람에 남한의 문학사에서 지워졌던 백석의 시가 시대의 변화를 타고 남녘에서 다시 살아난 것만 보아도 시의 힘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들은, 아니 예술가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조국 러시아에 대한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1880-1921)도 그의 시 ‘예술가’ 4연에서 노래합니다.
“우주를 지탱하는, 시계는 오래오래 간다.
음향, 움직임, 그리고 빛은 팽창한다.
과거는 정열적으로 미래를 응시한다.
현재는 없다. 가련한 것도—없다.
--<오, 나는 미친 듯 살고 싶다>, 열린책들
‘우주를 지탱하는 시계는 오래’가니 시인은 오늘의 평가나 대중의 박수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과 ‘영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애씁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지금 제 앞으로 날아드는 플라타너스 잎처럼 홀연히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인도가 낳은 시인 라빈 드라나드 타고르(R. Tagore: 1861-1941)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술합니다.
93
나는 떠나야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형제들이여!
내 모든 형제들에게 절하고 작별하겠습니다.
여기 내 문의 열쇠를 돌려 드립니다.
또 내 집에 대한 온갖 권리도 모두 포기합니다.
오직 그대들로부터 마지막 정다운 말씀을 듣고자 할 뿐입니다.
(하략)
--<기탄잘리>, 김광자 옮김, 소담출판사
제 손의 녹슨 잎, 이 잎을 떨군 플라타너스, 그 나무 옆을 오가는 사람들... 시월은 우리 모두가 삶과 죽음을 나누는 ‘형제들’임을 일깨워줍니다. 시든 잎이 꽃이 되는 시월, 오래된 ‘당신’과 ‘그대’들이 등불처럼 환히 살아나고 작별마저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