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사랑 - That`s Amore
이것은 딸과 내가 로마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아씨오네가에 있는 이태리식당 이름이다.
딸은 내일 새벽에 파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난 그 다음날 밤에 KAL로 서울로 돌아간다.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리고 그것을 정말 실행으로 옮긴 이 여행의 끝이다.
이번 여행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이 여행의 시작은 이렇게 되었다. 재작년 즉 2016년 1월에 나는 새 스케치북을 샀다. 난 그 스케치북을 평생 간직하고 싶은 그림으로 채우려 했고 첫 장에 피렌체의 두오모를 그리고 둘째장에는 포로로마를 그렸다. 두 도시는 30년 전에 여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꽃의 성모“란 이름을 가진 두오모의 아름다움은 기억에 남아있어서 스케치북 첫 장과 두번째 장에 그렸다. 그 여행의 말미에 로마에 들러 바티칸까지 관광을 마치고 콜롯세오까지 본 후 바로 옆 도로에서 발아래에 펼쳐져 있는 포로로마 유적을 보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데 그 장소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 30년을 그려온 여행을 미리 예감한 기시감이라 해야겠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 교통사고로 병원에 석달간 신세를 졌다. 그 무렵 손에 잡고 읽은 책이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었다. 괴테는 1786년 11월 1일부터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고 기행문을 썼다. 스스로 로마에 입성한 날을 제2의 탄생일이라고 지칭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한 후 감수성 많은 예술가는 딱딱한 독일인의 철학과 삶을 바꾸어 세계적인 예술가로 탄생한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의 중심에는 로마가 있었다. 또 그는 남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특히 시칠리아의 문화의 다양성을 접하고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말하지 말라”는 말까지 하였다.
괴테의 책을 덮으며 내가 다시 건강을 되찾는다면 다시 또 이탈리아를 여행하겠다고 생각했다. 괴테처럼 1년은 못되더라도 한달 정도 집을 정하고 살면서 할 여행에 시칠리아 팔레르모를 꼭 넣고 싶었다. 또 피렌체에선 적어도 1주일 이상을 살면서 르네상스 작가들의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고 싶었다. 로마에서는 가이드의 설명없이 내가 직접 유적지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었다. 또 시장에서 산 현지 재료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지중해 파란 바다에 직접 몸을 담가보고 싶었다. 오감체험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소렌토나 카프리 섬이 아닌 포지타노인가? 그건 딸의 바람이었다. 딸이 대학생 시절 유럽을 자유여행 했다. 그 때 포지타노 바닷가에 들려서 “엄마와 꼭 여기에 다시 오고 싶어요”라고 메일을 보냈다. 우리 두 사람의 바람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결실을 맺게 되었다. 물론 그것을 결정한 것은 우리 두 사람이다.
우연이란 것은 세상에 없다.
5월말에 딸은 진정 직장을 쉬고 싶다며 사표를 내고 파리로 떠났다. 물론 결정하기 전에 엄마를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자신은 엄마보다 더 오래 일을 하겠지만, 우선은 쉬며, 1년간 파리에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고 돌아와서 재취업을 할테니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결혼하고 해보라거나, 더 큰 꿈을 갖고 열심히 살라’는 말 대신 좋은 계획이라고 했다. 동시에 내 오랜 바람을 이룰 기회가 지금이라고 느꼈다. 30년을 꿈꾸던 여행이다.
그렇다면 일정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하다 괴테의 일정과 반대로 남부부터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만일 남부에서 끝나면 다시 비행기로 로마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순서를 팔레르모-포지타노-피렌체-그리고 로마로 정했다. 나머지는 생략했다. 꼭 가보고 싶은 곳만 골랐다. 딸은 파리에서 팔레르모로 직접 오고 난 로마를 경유해서 팔레르모에서 합류할 계획을 세웠다.
딸은 먼저 파리로 떠나고 난 직장을 7월 말에 끝냈다.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다. 2018년 여름의 더위는 그동안의 모든 기록을 깼다. 7월 중순 잠시 장마에 비를 뿌린 후 메마르고 지칠 줄 모르는 더위가 낮과 밤으로 이어졌다. 한밤중에도 35도로 이어지는 지구환경파괴의 댓가를 치루는 더위였다. 8월 마지막 주에 난 드디어 로마로 출국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
가능한 여건이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사실 재작년 병원에 오래 있었던 이유가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쳤기 때문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 이렇게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도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도 다 기적이다. 로마 공항을 경유해서 바로 이탈리아 국내선으로 팔레르모로 갔다. 딸은 그날 오전에 도착해서 호텔측에 엄마의 픽업서비스를 신청하고 카톡으로 알렸다. 밤에 딸 혼자 날 마중하기 보다 호텔 측에 부탁하는게 훨씬 안전하다. 내가 팔레르모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30분이었다. 공항을 나가니 내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이탈리아 노인이 서있었다. 그는 40분 정도 걸려 호텔까지 운전해 주고 현관으로 안내하고 떠났다. 팔레르모 폴리테아마 극장 가까이 있는 아담한 호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프론트에선 내 방 번호를 알려주고 구식 엘리베이터로 짐을 옮겨 주었다. 2층 108호. 벨을 누르자 딸의 소리가 들렸다. “엄마야” 마치 서울 강남에 있는 딸의 자취집을 찾아가 문열고 들어가듯 그렇게 팔레르모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칠리아는 BC 8세기 부터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BC 254년에 로마에 정복당했다. 그리스 유적지에서 발굴한 자료를 한 군데 모은 고고학 박물관이 팔레르모 시내에 있다. 팔레르모는 로마의 지배하에 기운이 쇠퇴했으나, 535년에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동고트족에게서 나라를 되찾은 다음 다시 번영을 누렸다. 831년 아랍인이 점령하고 북아프리카와의 활발한 무역 중심지로 번창했다. 청동기 때부터 시작한 역사를 가진 시칠리아인들은 스스로 이탈리아인 보다는 시칠리아인으로 불리길 좋아할만큼 긍지가 강하다. 그리스 유적과 르네상스, 비잔틴양식과 이슬람양식 그리고 노르만양식의 다양한 건축물을 볼 수 있으며 특히 팔레르모 대성당과 노르만족 시대인 1,185년에 지어진 노르만 궁전은 아랍양식에 노르만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된 대표적 건물이다.
현재 주의회 의사당 건물인 노르만 궁전 2층의 팔라티나 예배당은 금색 모자이크로 화려하고 세밀하게 천장을 장식한 방이다. 3층을 돌아 궁전을 나와 정원에서 보면 ‘왕의 산’이라고 하는 몽레알레 산을 배경으로 나무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가린다. 한점 구름 없는 파란 하늘과 높은 야자수 아래서 햇살과 풍광을 즐긴다. 그렇게 관람을 마친 후 나올 때도 표를 확인한다. 출구에 철문이 있는데 표를 넣어야만 열린다. 없으면 나갈수가 없다.
▶ 이탈리아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제 시칠리아 특히 팔레르모의 먹거리에 대해서 적어봐야겠다. 제주도 10배 정도의 크기인 시칠리아는 사방이 바다라서 풍부한 해산물과 에트나 화산이 만든 좋은 토양에서 나는 오곡백과로 먹거리가 다양하다. 또 여러 문화에서 나온 다양한 조리방식으로 맛이 뛰어나다. 가지요리와 내장버거, 청새치, 황새치 스테이크, 성게알 파스타, 정어리 파스타, 문어 요리, 낙지와 엔초비, 오징어튀김 등이 모두 맛있다. 한끼 식사로는 아란치네가 특별하다. 디저트로는 까놀리, 카사다, 그라니따도 있다. 값도 싸서 여행자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아란치네는 우리네 주먹밥 튀김으로 생각하면 된다. 단 3유로면 속이 든든하다.
아, 그리고 젤라또! 젤라또를 시키면 브리오슈(빵) 하나를 곁들여 준다. 시칠리아는 피스타치오 산지라서 피스타치오 젤라또는 항상 맛있다.
마시모 극장 앞의 골목에 이어진 식당들은 밤마다 손님으로 가득 찬다. 입구에서 메뉴와 가격을 본 후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아 불 빛 사이로 마시모 극장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마시모 극장에서 출발하여 노르만 대성당까지 순환하는 무료버스 <Free Bus>가 있어서 도시를 돌아다니는데 도움이 되었다. 발라로 시장도 갔다. 시장에 들어서자 갑자기 필리핀 골목에 들어온 듯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다. 밤에는 오지 않아야겠다. 신선한 과일을 아주 싸게 샀다. 드디어 포지타노로 가는 날이다. 호텔에서 그동안 편하게 잘 지냈는데 떠난다니, 자기호텔에 대한 좋은 평을 남겨달라고 직원이 말한다. 아담한 호텔이지만 직원들의 긍지가 있고 정중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폴리테아마 근처 미켈레 아미르가(Via Michele Amari가)에 있는 졸리호텔(HotelJolipa)이다.
팔레르모에서 포지타노까지 이동은 배로 하기 때문에 항구에서 가까운 곳을 정했는데 위치가 좋았다.
팔레르모항 야경
팔레르모를 떠나 나폴리로 가는 페리를 예약할 때 캐빈 하나를 빌리니 가격은 비싼 편이다. 젊은이들은 선실 바닥이나 식당 빈자리에서 하룻밤을 견디지만, 딸과 나는 외지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캐빈을 잡았다. 배는 대형 식당 2개와 헬스장, 오락장, 쇼핑룸까지 있는 큰 배였다. 캐빈 안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룸과 화장실, 옷장, 서랍장 그리고 편한 침구를 갖춘 침대가 있었다. 배는 밤 8시에 출항해서 다음날 새벽 6시 30분에 나폴리에 도착한다. 나폴리에서는 차로 포지타노까지 간다. 배가 팔레르모항을 떠날 때, 배안의 사람들이 모두 갑판으로 나왔다. 외지에서 또 다른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행자의 마음 속에 서운함과 동시에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팔레르모 안녕!
약간의 흔들림을 느끼며 우리는 편안한 잠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