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를 대상으로 주거와 관련된 강의를 하다보면 앞으로 집값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질문하는 수강생들이 있다. 즉, 집값이 오르겠느냐 내리겠느냐를 묻는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 대부분의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누가 이 문제의 정답을 내 놓을 수도 없는 아주 예민하고 난해한 문제다. 아니 절대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대해 나는 ‘앞으로 무조건 집값이 내릴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하는 것이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모호한 정치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물론 올바른 답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강력한 희망이다. 갭 투자자들에게는 욕먹을 소리겠지만 집값은 떨어져야한다. 건축을 무려 사십 년 동안 하면서도 이런 소신[?] 때문에 집으로 돈을 못 벌고 있으니 집에서는 늘 원망의 소리를 듣는다. 최근 어느 지역으로 이사하려는 지인에게서 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물론 단호하게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이사한 아파트 가격이 일 년 동안 계속 올라서 좀 민망하게 되었다. 집값이 올랐으니 원망이야 듣지 않았지만 전문가의 자존심에 조금씩 상처를 입고 있다.
집값 등락은 입지에 따라 다르고 시장상황에 따라 다르고 그 지역 개발호재에 따라 다르고 정부에서 내놓는 대책에 따라 다르다. 그 요인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 과거에는 아파트 대형 평수가 돈이 된다고 너도나도 대형에 몰렸다. 대출 받아서 구입해도 얼마 지나면 대출금을 갚고도 남을 만큼 집값이 올랐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도 성행했다. 그러나 최근에 급격히 상황이 바뀌었다. 핵가족화의 심화, 1인 가구 증가, 고령사회로의 진입, 장기 경제침체 등이 이어지면서 규모가 큰 집의 수요가 줄고 소형주택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계속 오르는 집값에 정부의 특단의 조치까지 더해졌다. 집값이 요동치는 이 와중에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집하나 가지고 노후 자금으로 활용하려던 사람들이다. 현금은 없고 오로지 집하나 잘 지니고 있던 시니어들이 집값동향에 불안해지고 있다. 그들 중에 상당수는 중대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여러 지표를 보면 실제 대형주택은 향후에도 가격이 상승할 요인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수도권 아파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과거 수도권 일대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사람들 중에 단독주택을 대형으로 짓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집도 많이 노후화되었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도 고령자가 되어간다. 다시 도시로 돌아오려고 해도 쉽지 않다. 많은 경우 투자비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집을 처분해야 할 판이다.
최근에 다시 집값이 하락한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특단의 대책이 나올 때마다 잠시 주춤하고 뒷걸음치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는 것을 봐온 터라 이번에도 모두 관망하는 분위기다. 대책에 내성이 생긴 것인지 갈수록 더 센 대책이 필요해지는 것 같다. 이번대책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누적된 여러 요인 때문인지 최근 집값은 어느 정도 하락세인 것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하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깡통주택 기사가 여기저기 등장한다. 지방에는 전세금보다 집값이 더 싼 지역도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세가 만료되어도 집주인에게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한 세입자들도 많다고 한다. 그 집이 갭 투자를 한 집이라면 집값 하락 시 보증금을 돌려받기는 더 힘들 것이다. 재계약을 하려해도 입주할 때 낸 전세금과 현재 전세금의 차이만큼 집주인이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은 세입자다. 참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전세입자를 구하기 어렵고 전세금도 하락해서 새로 전세를 놓는다 해도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줄 수 있는 금액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전세금 돌려받으려면 소송을 하라고 버티는 집주인들도 많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사회에 만연한 갑과 을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는 갑의 횡포를 전세 세입자와 집주인사이에서 재차 확인하면서 아직 우리사회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수많은 부동산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대책들은 늘 ‘특단의 조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그러나 그 부동산 대책 중에 서민을 위한 특단의 조치는 없다. 수도권 주택 보급률이 100%에 육박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지표상의 숫자일 뿐 실제 월세나 전세를 사는 사람들 비율이 높다. 그들은 집값이 오르면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하니 곤란하고 집값이 떨어지면 전세금 돌려받을 일을 걱정한다. 확정일자를 받아두는 제도가 있지만 그것도 사고가 터진 후 여러 절차를 거쳐서 전세금을 돌려받기까지 원치 않는 생고생을 해야 한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라는 제도가 있으나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세입자가 보증보험에 가입해야한다. 즉,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당연히 돌려받아야 될 내 돈을 돌려받기 위해 또 다른 비용을 지불하면서 내 권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주거의 불안은 사회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불신과 불안은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망을 망가뜨린다. 서민을 위한 특단의 부동산 대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