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동물권·환경보호 이유로 20대 사이에서 채식 트렌드 퍼져
비건 음식 주력으로 하는 식당 증가 추세
국민 10명 중 1명 채식주의자인 독일은 채식 열풍
채식 인구가 늘어나고 다양해지는 것과 달리,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인지하고 있는 채식주의자의 종류는 단순히 육류 섭취를 안하는 폴로 베지터리언과 식물성 식품만 먹는 비건 정도이다. 채식주의 인구에 대한 심화된 분석을 하기 전에 먼저 간단히 채식주의 인구의 종류에 대해 짚고 넘어가도록 한다.
현재 채식주의 인구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대학내일 연구소에 따르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채식주의자의 이미지처럼 모든 식단을 채식으로 구성하는 사람은 적더라도, 채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주 1~2회 정도 채식을 실천하는 등의 식습관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회 현상과 더불어 최근 비건식이 소비 트렌드가 된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동물권이다. 가장 쉽게 이해하기 쉬운 개념으로, 과거에 비해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동물권을 이유로 채식을 하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보면 나오듯, 공장식 축산업의 동물권 침해에 대해서는 이미 익히 알려져 있으며, 그로부터 조금 더 나아간다면 아무리 자연친화적으로 길러낸 육류라도 결과적으로 동물의 삶을 수단으로 대우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살 권리를 침해한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다음으로 환경 문제다. 육류를 섭취하는 것이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은 막대하다. 한 해 생산되는 곡물 중 인간이 소비하는 것은 총 40%이고, 나머지 40%는 인간이 먹을 동물의 식량으로 사용된다. 이와 같은 불필요한 곡물 소비를 위해서 끊임없이 숲이 개간되며 농지는 확장된다. 계산해보았을 때, 100g의 단백질을 얻어내기 위해 소고기는 약 34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반면 두부는 같은 양의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1.6kg만을 생산해낸다. 소가 배출하는 메탄가스는 말할 필요도 없고, 최근에는 어업이 만들어내는 바다 쓰레기에 대한 다큐인 씨스피라시가 많은 대중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환경단체의 플라스틱 감축 운동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은 어업으로 발생한 바다 쓰레기라는 사실은 어업 소비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마지막은 건강이다. 건강은 비단 실질적인 건강 관련 문제뿐 아니라 다이어트와 식단 조절 등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가장 실질적이고 대중에게 이해받기 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 20대 인구 중 절반 가까운 인구는 건강을 위한 대안으로써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관리를 위한 수단으로 채식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전 세대의 경우 육류 섭취가 단백질 섭취 및 학생의 성장에 필수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연구가 지속되고 유명 프로 운동선수 중에서도 채식으로 강한 신체를 얻은 사례들이 늘어남에 따라 건강을 위해 육류 섭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구의 비중은 적어지고 있다. 실제 대학내일 보고서에 따르면 젊은이들 중 채식을 실천하는 인구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기도 하다.
◇ 수도권 중심으로 비건식당 증가세
현재 비건 전문식당의 수는 많지 않으나, 비건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한국에도 적다고 할 수는 없다. 정확히 일반 식당에서도 비건식을 섭취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일례로 한국의 백반 식당을 들어보자. 다양한 밑반찬이 기본으로 나오는데, 다양한 찬을 제공하는 만큼 그중에서 비건식인 반찬을 찾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찌개 등 메인 반찬의 경우에도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종류도 많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늘 식품의 성분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는 번거로움 일 것이다. 당장 앞서 언급한 찌개만 해도 겉보기에는 어떠한 육류, 어류도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 성분을 들여다보면 새우젓, 간 쇠고기 등이 들어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처럼 한국의 요리에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만큼 엄밀한 의미의 비건을 실천하는 것에는 많은 노력이 든다. 그렇기에 채식을 실천하고자 하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비건 음식을 주력으로 하는 식당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젊은 인구가 많이 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개중에서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비건 식당은 그 자체로 브랜딩이 돼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기본적으로 식당들은 제공하는 음식을 다른 식당과 어떻게 차별화하고 마케팅할 것인가가 중요한 요인인데, 비건 식당은 그런 필요성이 비교적 적다. 이미 그 자체로 자연 친화적이고 젊은 이미지를 주고 있어서 브랜딩을 할 때 개별적인 메뉴에 조금 더 집중해서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건식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비건식 밀키트를 전문으로 생산, 판매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바로(VARO)는 비건식 밀키트를 전문적으로 생산 판매하는 업체로, 짬뽕, 파스타, 삼이탕 등 양식과 한식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밀키트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포장 용기 등도 친환경 용기를 사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기업인 샘표에서도 집반찬연구소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맛있는 채식 식단’이라는 이름의 채식 밀키트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이전에 콜라보레이션 제품으로 높은 판매 기록을 올렸던 연두와의 콜라보 제품으로, 버섯잡채와 채개장 두 개의 밀키트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해당 제품군을 제외한 ‘비건식’을 표방하는 밀키트는 기업 차원에서 충분하고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지는 않다.
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유입이 적은 이유는 채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과 연관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한국에서는 순수비건 인구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고, 일반적으로는 간헐적 채식을 실천하는 인구가 많다는 점을 미뤄보았을 때 채식에서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경향성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채식 식단은 간편한 샐러드와 나물밥 정도로 충분하고, 미식에 대한 욕구는 다른 일반적인 비채식 식단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 한국에서 채식 인구 증가하려면 인식 개선 필요
지난 2020년 국제농업정보네트워크에서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약 8,300만명의 인구 중 800만명이 채식주의자다. 그중에서도 130만명은 비건으로, 인구의 약 10%가 채식주의자고 1.5%는 비건인 셈이다. 해당 인구에 대한 설문을 보았을 때, 한국에서는 건강 관련 이유가 비건식을 선택하는 주된 이유인 것과 달리 80%는 환경적 이유를 꼽았고, 건강을 이유로 꼽은 인구는 55%(복수응답)였다.
이와 같은 소비자들의 넘치는 수요를 통해 독일의 채식 관련 상품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우선 독일의 채식주의 식당은 2019년 기준 거의 900개에 달하며, 이중 비건식만 제공하는 식당은 333개다. 앞서 본 한국에서의 채식 식당 지도와는 양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손님 10명 중 1명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인지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식당에서 한두 개의 채식 메뉴를 갖추고 있게 만들었으며, 독일에서 채식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식당에서 식물성 음식을 먹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독일의 채식 브랜드이다. 한국은 채식만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브랜드는 앞서 소개한 ‘바로’ 이외에는 찾을 수 있는 것이 얼마 없지만, 독일은 다양한 채식 브랜드가 시중에 공개돼 있다.
단순히 아몬드 우유, 샐러드 등 식재료에 가까운 음식을 파는 브랜드는 다양하게 존재하나, ‘식사’에 중점을 둔 채식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독일에는 소비자 인지가 꽤 이루어진 채식 전문 브랜드가 여럿 있으며, 아래의 두 브랜드는 소비자층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서양권의 채식은 한국보다도 훨씬 힘든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아주 오랜 시간 채식 중심의 문화권에서 살아온 한국인들과 달리 서양권은 비교적 육식을 더 오랫동안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밥에 나물 얹어서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되는 한국과 달리, 서양권에서 채식으로 든든한 한 끼를 하기 위해서는 오랜 고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결과 보이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으면서 순수히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한 식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우유를 사용하지 않은 빵부터 아몬드유를 사용해 만든 치즈까지 모든 원료는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했다.
음식이 풍족한 현대 한국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것, 그중에서도 비건으로 산다는 것은 꽤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감당할 부분이 많고, 미식의 측면에서도 포기할 것이 많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식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 원리는 늘 수요가 먼저 있어야 공급이 있다. 즉, 충분한 소비자가 있기 전까지는 시장에 다양한 공급이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일에 채식주의 인구가 많은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채식주의 인구가 늘어나기 매우 좋은 환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사찰음식의 연구도 오랫동안 돼 있고, 액젓 등을 간장으로 대체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기본 찬도 많은 부분 채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 나라이다. 육식 식단 자체를 식물성 재료들로 대체해야 하는 서양권 국가들에 비해 시작점 자체가 다르다.
또한, 재활용 실천도 독일에 이어 전 세계 2위를 할 정도로 환경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국민 사이에서 꽤 높은 편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치 소비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이와 같은 트렌드는 점점 확산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비건식 트렌드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채식과 환경보호 사이의 인식을 연관시키는 것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채식이 갖는 이미지는 ‘건강’과 ‘동물권’이다. 환경보호에 대한 생각은 많은 사람이 갖고 있지만, 아직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폐해에 대해서는 국민적 인식이 부족한 상태이다. 채식의 이미지가 건강과 동물권에 한정돼 있다면 채식 인구 증가폭은 크지 않을 것이고, 미식에 대한 수요도 늘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채식 인구 증가와 관련 상품의 다양화라는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채식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