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림이에게 여름과 겨울 두 계절 중 한 계절만을 살아야 한다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겨울을 택할 것이다. 겨울에는 털모자나 마스크 등 어떻게든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장비가 있지만 여름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철 이른 새벽이나 밤늦게 운동복을 입고 나가도 금방 온몸이 한증막에 들어온 듯 숨쉬기조차 어렵다. 말 그대로 축축 늘어지는데 운동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운동할 땐 젖은 옷 바로 갈아입어야

그나마 겨울철에는 보온성이 좋으면서 땀 배출도 잘되는 기능성 운동복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자신에게 알맞는 복장을 잘 고르면 사실 겨울철에 운동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일반인들이 달림이들에게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한 겨울에도 운동하는가?’인데, ‘당연히 한다’라 답한다. 언젠가 우리 동호회에서 맨발로 달리는 선배님을 취재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에서 나온 적이 있다. 일부러 겨울을 골랐단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조금 더 ‘세상에 이런 일이?’ 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라 한다. 맨발 선배님이 일요일 정모에 참석한 날, 영하 20도가 넘는 가운데서 우리는 뛰었다.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이럴 때 달림이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바로 ‘젖은 옷을 곧바로 갈아입는 것’이다. 달리기 뿐 아니라 등산을 하거나 야외 활동을 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정말 추운 날씨라도 마스크를 잘 하고 땀이 난 옷을 곧바로 갈아입으면 오한을 막을 수 있다. 내가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전문가들도 옷을 갈아입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주지 않는 듯하다. 몇 년 전 초가을 정모에 참석했다가 된통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선선한 바람 때문에 이 정도 날씨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겨울철 야외에 나갈 일이 생긴다면 갈아입을 윗도리 한 벌을 반드시 챙겨가기를 권한다.

 

몸을 추위에 적응시키는 것도 중요해

무조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추위에도 적응시킬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캐나다의 따뜻한 도시로 이민 갔던 입사 동기가 한국에 들어왔다. 입사동기의 고향 방문에 오랜만에 동기 모임이 이뤄졌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첫 마디는 “한국의 늦가을 바람이 뼛속까지 시리다다”고 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한 겨울에 코트도 안 입고 취재 현장에 나서기로 유명했다. 캐나다로 이민간지 불과 2~3년인데 늦가을 추위에도 견디지 못하는 몸으로 바뀌었나 보다.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날 날씨에 대해 쌀쌀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우리는 멀쩡한 데 왜 그러냐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언젠가 해외토픽에서는 하와이의 이상 한파에 몇 명이 동사(凍死)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그때의 온도가 겨우 0도였는데, 거기에 살던 사람들은 그 정도 추위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매년 1월 1일에 개최되는 맨몸마라톤 대회. <사진출처 : 대전맨몸마라톤 홈페이지>

 

내가 다니는 한의원에서는 겨울운동을 “독약이나 다름없다”고 혹평한다. 한의원 원장은 겨울에도 마라톤을 한다고 하면 대놓고 목소리를 높이며 나무란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얼어 죽을 일 있어요?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누가 책임진대요?”

얼른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렇잖아도 기관지가 약한 편인데 차가운 공기를 잘못 쐬었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일 게다. 겨울에 운동을 하면서도 한의원 원장의 잔소리가 늘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최근 한의원 원장이라고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따뜻한 곳에만 내내 있다가 갑자기 찬 공기를 마시는 것은 분명히 몸에 나쁠 게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어느 정도 적응시킨다면 괜찮지 않을까. 실제로 나의 기관지는 10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마음이 몸을 재배하듯 몸도 마음 지배

‘남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를 보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최남단의 마을이 소개되는데 그들은 1년 내내 영하 20~40도에도 거뜬히 견디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사람 몸이란 그만큼 간사하다. 적응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날씨가 정말 추운 날 뛰노라면 아들을 군대 보낼 때도 안 흐르던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다. 하지만 정모 장소인 하늘공원 몇 바퀴를 뛰고 나면 온몸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때로는 땀이 맺히기도 한다. 털모자 밑으로 땀이 맺혀 고드름이 될 때도 있다. 칼바람 속에서 맺히는 땀의 느낌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듯 몸도 마음을 지배한다. 추위를 이기면서 한 바탕 뛰고 나면 복잡한 마음도 저절로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남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 시원하다면서 달릴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당나라의 선승 동산(洞山)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그러자 동산이 소리쳤다.

“이 놈아, 추울 때는 그대를 더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더 덥게 하는 곳이다.”

 

물론 동산스님이 말하는 추위는 단순한 추위는 아닐 것이다. 고통이나 근심이 있을 때 피하고 잊는다고 해서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 추위에도 동산스님의 조언은 도움이 되고도 남는다.

하~ 그러나 추위보다 더 큰 난제가 최근에 생겼다. 바로 미세먼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따뜻할 때만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더니 올해는 추울 때도 미세먼지가 같이 찾아올 때가 많아졌다. 미세먼지의 공습이라니. 영하 20도에서도 달리기를 거르지 않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해질 때는 어쩔 수 없이 쉬어야겠다. 미세먼지 덕분에(?) 한겨울 강제 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