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이주일 씨는 왜 숨졌을까. 많은 이들이 흡연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씨는 폐암 가운데서도 선암이라불리는 암으로 숨졌다. 폐암은 현미경으로 바라본 암세포의 형태에 따라 선암과 상피세포암, 대세포암, 소세포암등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이 씨가 걸린 선암은 이 중에서도 흡연 관련성이 가장 적은 폐암이란 사실이다(최근 선암도 간접흡연이나 저타르 담배의 흡연과 관련이 있다는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실제 담배를피우지 않는 여성에게 생기는 폐암은 대부분 선암이다.
나는 담배보다 오히려 그가 겪었을 극심한 마음의 고통에 주목하고 싶다. 이씨는 1991년 애지중지하던 4대 독자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자식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그날 이후 한평생 수염도 깎지 않고 술과 담배로 시름을 잊었다 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토마스 홈스는 일생 동안 사람이 겪는 스트레스의 순위를 비교한 연구결과에서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는 배우자와의 사별이라고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의 평가 방법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순위가 뒤바뀐다. 서구인과 달리 한국인의 경우 자녀를 잃는 것이 배우자와의 사별을 제치고 1위로 올라온다. 오죽하면 ‘부모를 여의면 무덤에 묻지만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 고 했을까.결국 극심한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이 때문에 암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암세포 한 개가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직경 3cm 내외의 암으로 증식하는 데는 평균 10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씨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마음의 평화가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비단 자녀의 죽음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지속되는 작은 스트레스도 오래 반복되면 건강이 나빠진다는 의학적 증거가 많다. 이 때문에 나는 건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주저하지않고 ‘영적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꾸로 말하면 스트레스야말로 건강에 가장 해롭다. 술이나 담배 등 지금까지 건강을 해친다고 알려진 그 어떠한 위험 요인보다 스트레스가 더 나쁘다고 믿는다.
감기나 여드름처럼 가벼운 질환은 물론 암이나 뇌졸중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까지, 대부분의 질환에 스트레스가 관여한다. 마음이 불편하면 몸도 나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몸과 마음은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이때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자율신경이다. 뇌에서 가지를 친 자율신경은 인체 오장육부를 엮듯이 연결한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맥박과 호흡, 체온 등 신진대사를 조율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자율신경의 중요한 축인 부교감신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교감 신경은 알다시피 인체가 편안할 때 작동하는 자율신경이다. 호흡과 맥박, 혈압을 떨어뜨리고 소화를 돕는다. 인체의 고장난 부위를 수선하고 에너지를 저장하며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을 가라앉힌다.또 다른 자율신경인 교감신경이 비상사태 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른바 능률 위주의 자율신경이라면, 부교감신경은 미래를 위해 인체를 쉬게 해주며 뒷심을 쌓는 자율신경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시간에쫓기는 생존경쟁의 와중에서 교감신경이 부교감신경을 압도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감신경 우위의 생활방식은 당장 위기를 모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혈압과 혈당을 올리고 대뇌의 각성도와 근육의 힘은 증강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성적으로 교감신경이 부교감신경을 억누르게 되면 인체는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대인들이 호소하는 대부분의 건강문제도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슬 푸르게 날이 잔뜩 곤두선 교감신경과 만나게 된다.
나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당면한 가장큰 과제가 바로 억눌린 부교감신경을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려놓는 것이라믿는다. 영적 안녕을 통해 건강을 완성하는 첫걸음도 부교감신경의 부활에있다.
글 홍혜걸 의학전문기자